<칼럼>혼돈의 시대에 문을 연 몽양여운형선생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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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은 우리 민족사의 암흑기에 청년계몽운동가, 언론인, 독립운동가, 체육인, 정치인 등으로 활동하며 사회 각 분야에 걸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해방 이전에 건국동맹을 조직하여 조국의 독립 이후를 대비했고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사회 혼란을 막는 데 최선을 다했다. 신탁통치문제로 좌우가 극심히 분열되자 좌우통합에 매진했지만, 좌우 양측으로부터 10여 차례의 테러를 당하다가 끝내 1947년 7월 19일 암살당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뛰어넘었던 당시 국민의 지지도가 또 다른 암살배후라는 의심은 아직도 역사의 숙제로 남아 있다.
우리민족의 근대사는 비극으로 점철돼 있다. 이념이 다른 사람은 곧 적이 되는 위험한 이분법이 국가전반을 장악한 때문이다. 몽양 여운형은 그 이분법에 저항했으며, 그 이분법에 희생당한 인물이다. 마치 바둑판에서처럼 흑 아니면 백을 쥐어야 하는, 극좌와 극우만이 존재하는, 지극히 단순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흑과 백을 모두 쥐었으며 흑과 백을 모두 버려, 결국 흑과 백으로부터 제거된 것이다. 흑과 백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나라를 살리고 겨레를 위하는 것인지에 집중된 선생의 정치관은 네 색깔 내 색깔 가리는 게 힘의 원천인 세력들에겐 가장 두려운 암세포였으리라.
몽양 서거 64주년을 맞은 2011년 현재,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아직도 지극히 단순하고 위험한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다. 붉은색의 발상이냐 푸른색의 발상이냐가 논쟁의 출발이며, 무엇이 국가와 국민에게 이로운 지보다는 무엇이 우리 편에 이로운 지가 정쟁(政爭)의 귀결이기 일쑤이다. 색깔을 따지지 않고 옳고 그름만 따지는 눈과 입은 여전히 회색분자로 기회주의자로 내몰리기 십상이다. 국론이 분열될 때마다, 돌파구를 제시하는 냉철한 진단은 정보의 홍수 속에 침몰하고 싸움을 부추기는 치졸한 선동만이 굿판의 깃발처럼 나부끼기 마련이다. 치밀한 집단적 이해타산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오로지 감정적 이념싸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극과 극을 치닫는 의견과 견해, 현실분석과 진단, 전망과 해법이, 애국의 탈을 쓰고 혹은 진보의 탈을 쓰고 국민의 눈과 귀 그리고 이성과 감정을 마비시키고 있다.
FTA를 발판 삼으려는 지혜의 소리는 속삭임의 크기로, FTA는 미국의 속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냐 대한민국 번영의 지름길이냐는 다툼의 소리는 천둥의 크기로 들려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복지국가 구현이 이 시대 대한민국 최적의 패러다임이라는 주장과 석유공급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세계금융시스템이 뿌리에서부터 붕괴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에서는 복지국가 구현이란 단지 기적을 바라는 요행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 속에서 헛갈림만 커져갈 뿐이다. 개발에 따른 자연환경 훼손은 과학기술로 감당할 수 있다는 주장과 자연환경의 훼손은 ‘자신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톱으로 베는 행위’라는 주장 속에서 4대강사업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의문만 자라날 뿐이다. 흔히 보고 듣는 ‘보수적 사상’과 ‘안정적’ 담론은 케케묵은 논리의 울타리에 갇혀 있고, ‘진보적’ 사상과 ‘개혁적’ 담론은 거의 예외 없이 근시안적 현실진단과 피상적인 처방에 머물러 있어 어느 쪽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전혀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다. 신뢰가 소멸된 현재와 미래, 과연 그 혼돈 속에서 어떤 삶을 지향하고 어떤 미래를 개척할 수 있겠는가.
혼돈의 시대에서 바라보는 몽양은 더욱 뜻 깊고 새롭다. 해방정국의 혼란 속에서 냉철히 미래를 직시하고, 대립의 혼전 속에서 피아의 가름 없이 오직 진리만을 따랐으며, 세력의 이해득실을 떠나 의연히 국가와 민족을 이끈 선생의 모습이야말로 이 시대 무엇보다 절실한 지도자상(像)이기 때문이다. 진보를 앞세우기 전에 집안의 종문서를 소각하고, 개혁을 앞세우기 전에 가산을 털어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애국을 앞세우기 전에 동경 한 복판에서 일본제국주의 질타에 사자후를 토했던 실천적 삶이야말로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염원하는 정치지도자의 제일덕목이 아니겠는가.
몽양여운형선생 기념관은 문을 열었지만, 과거 권력에 의해 조작된 ‘빨갱이 여운형’의 그림자는 아직도 잔존한다. 반공의 서슬이 시퍼렇던 박정희정권 당시에도 선생의 추모식을 정부에서 주관했던 사실과 현재의 수유리 묘역이 정부소유임에도 등기본상으론 공원묘지로 등재되어 있음이 선생을 둘러싼 역사적 진실과 모함을 상징하고 있다. 1936년 손기정선수의 베를린 올림픽마라톤 우승 시상식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하여, 희미하게 사라져가던 민족정신을 새롭게 일깨웠던 선생의 담대함은 훗날 동아일보의 차지가 되어 버리고 말았으며 현재까지도 동아일보의 제일 큰 자랑거리로 남아 있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몽양기념관 개관은 몽양정립의 새로운 출발이 되어야 한다. 역사의 그늘과 권력의 횡포에 일그러진 선생의 일생을 되살리는 일은 양평의 의무이자 양평의 보람이며 양평의 자랑임을 숙연히 되새겨야 할 일이다.
안병욱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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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의 댓글
독자 작성일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좋은 칼럼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