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PN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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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를 닦으면 마음도 닦입니다.” -양평구두병원 대표: 백승수-
양평인구가 10만을 넘었다. 10만개 넘는 드라마가 양평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얘기다. 어느 누구의 삶인들 드라마 같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 별 풍파 없어 보이는 이들도 소주잔 기울이며 속내를 들어보면 굽이굽이 사연도 많고 곡절도 많은 법이다. 내 삶이 그러하듯.
산을 바라보면 단풍이 곱고 거리를 바라보면 스산해지는 2011년 10월 25일, 양평역전 양평구두병원에서 백승수 대표(48세)를 만났다. 허리 펴면 머리가 닿고 허리 굽히면 엉덩이가 닿는 좁디좁은 곳이라 그야말로 무릎을 맞대고 얘기를 나눴다. 괜히 생업에 방해만 주는 게 아닐까 신경 쓰였지만, 백 대표는 손 따로 입 따로 능숙하게 구두 닦고 뒷굽 갈며 인터뷰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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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안병욱 : 이 자리에서 구두 닦으신 지가 꽤 오래 됐죠?
백승수 : 형, 왜 나한테 존댓말을 하세요?
안병욱 : 오늘은 인터뷰하는 거라니까.
백승수 : 아, 백운신문에서 나오셨어요?
안병욱 : 아니, 와이피엔.
백승수 : 아, 와이피엔. 근데 그 건 어디 있어요?
안병욱 : 군청 정문 맞은편에 보면...
백승수 : 아, 거기 와이피엔? </b>
말은 그랬지만 위치는 물론 YPN 자체를 모르는 듯하다. 서두부터 김이 좀 샌데다 분위기 좀 잡아볼만하면 길 물어보는 사람이 삐죽 머리를 들이밀어 좀처럼 대담이 무르익지 않는다. 한술 더 떠, 대담 당사자는 배달 갈 일 있다고 구두 몇 켤레 집어 들고 자전거에 올라탄다. 우두커니 앉아 가게 내부를 훑어보니 어느 하나 손때가 켜켜이 묻지 않은 것이 없다. 왼편 탁자에는 도르르 말린 고무 손가락 덮개가 수북하고, 오른 편에는 기름때에 쩐 이런저런 공구가 걸려 있고, 필자 앉은 옆으로는 구두가 층층이 쌓여 있다. 이상하기도 해라. 벗어놓은 수십 켤레의 구두를 바라보니 마음이 아주 짠해진다. 자르르 광택은 흐르지만, 굵고 자잘한 주름이 접힌 표면과 닳아서 한쪽이 기우뚱한 뒷굽, 주인의 삶의 무게와 애환이 곱다시 담겨 있는 듯하다. 불쑥 머리 들이밀어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대신 대꾸하며 속절없이 시간을 보낸다. 돌아온 백 대표에게 불이 없어 입에 물고만 있던 담배를 떼고, 라이터 있냐고 물었다. 백 대표는 점퍼 지퍼를 내리고 속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건넨다.
<b>안병욱 : 왜 라이터를 안주머니에 넣어 두세요?
백승수 : 빌려 달라고 그래놓고 그냥 가져가는 사람이 엄청 많아요. 탁자 위에 놔두면 하루에 열개라도 모자 라요.
안병욱 : 길 물어보는 사람도 굉장히 많네요?
백승수 : 어휴, 말도 못해요. 군청이 어디냐, 경찰서는 어디로 가야 하냐? 터미널 가는 버스는 몇 분마다 오냐, 근처에 밥 먹을만한 집은 어디냐, 저번에는 낮에도 색시 끼고 술 먹을 수 있는 데 없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내가 무슨 양평군 문지기도 아니고… 조 앞에 관광안내소 하나 생겼으면 좋겠어요. 구두 닦는 손님은 하나도 없는데 길 묻는 손님만 계속 오면 정말 입만 아파요.
안병욱 : 몇시부터 일해서 몇시에 끝내요?
백승수 : 8시 반쯤 나왔다가 해떨어질랑말랑하면 가요.
안병욱 : 하루에 수입이 얼마나 돼요?
백승수 : 없으면 한 5만원, 좀 있다 싶으면 6만원, 좀 바쁘다 싶으면 7만원, 재수 터진 날은 10만원도 올라요. 한 달에 150만원은 모아요. 아침은 먹고나오고 점심은 복지회관에 가서 2,500원주고 먹고요. 화요일하고 토요일은 교회에서 저기다가 공짜 식당 여니까 거기 가서 먹고요. 저녁은 집에 가서 먹어요. 구두약 사고, 담배 사는 거 말고는 다 모아요. 근데, 형이 자꾸 존댓말하니까 기분이 진짜 이상하네.</b>
초장보다는 대꾸가 길다. 하루 수입만 물었는데 하루 지출까지 밝힌다. 한 달에 150만원 모으는 사람이 양평에 몇이나 될까. 제법이네 싶으면서도 점심 한 끼 같이 한 적이 없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새털 같이 많았던 점심자리, 왜 나는 이 친구와 점심 나눌 생각을 못했을까. 아주 남도 아니고 드문드문 거리에서 인사도 나누는 사인데. 뭐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들하고만 점심을 먹어온 듯싶다. 부끄러운 일이다. 백대표의 큰형은 필자와 국민학교 동기동창이다. 그래서 집안내력도 대략 알고 있다. 부친께서는 농촌지도소 소장을 역임하셨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바 있다. 재력가라 부르기는 뭐해도 먹고살 걱정이 크지 않았던 집안에서 태어나 어쩌다 여기에 둥지를 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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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백승수 :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가려고 했는데 집에서 가지 말래요. 제가 정신장애가 있거든요. 졸업장 받은 다음다음날 동네 연탄배달 집에 취직했는데요. 와, 너무 힘들대요. 보름하다 그만두고 또 다음다음날 대림전자에 들어갔어요. 근데, 몇 달 안 돼 부도가 나서 또 며칠 쉬다가 용문에 있던 영신전자에 들어갔어요. 근데 또 부도가 나대요. 그래서 한참 놀다 장애인 작업장에 들어갔어요. 우리 엄마 살아계실 적인데, 출퇴근 버스하고 퇴직금도 해준다더니 4년 일하고 그만뒀는데 출퇴근도 안 시켜주고 퇴직금도 안주고 그래서 제가 막 뭐라고 떠들고 그랬는데도 결국 안 주고 노동청 가서도 막 떠들었는데 뭐라더라 무슨 정식직원으로 안 돼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그래서 참내… 그래서 2005년도부터 극장 사거리에서 구두닦이 시작했는데 근처에서 구두 닦던 사람이 하두 못살게 굴어서 개군농협 앞에서도 닦아보고 군청에서도 닦아보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우리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여기 역전 앞에 왔어요. 우리 엄마가 여기 양평역에서 14년 동안 근무했거든요. </b>
간략하게 과거를 짚으면서 백대표는 자주 어머니를 언급했다. 백대표의 시간개념은 어머니 생전 이전과 생전 이후가 분수령인 듯하다. 필자가 문상 간 게 3년 전이니, 대략 전철 개통 무렵 백대표는 어머니를 잃었고 이 비좁은 삶터를 얻은 것이다.
<b>안병욱 : 전철개통하고 매일 지켜봤는데 여기 풍경도 많이 변했죠?
백승수 : 그럼요, 사람이 무지하게 많이 와요. 점점 많아져요. 전엔 맨 양평사람만 왔다갔다했는데 갈수록 서울사람이 많이 와요. 5일장 때도 많이 오고, 등산가는 사람도 많이 오고 요즘에 자전거 끌고 오는 사람도 되게 많아요.
안병욱 : 그러면 장사도 더 잘 되겠네요?
백승수 : 에이, 아네요. 전부 등산화 아니면 운동화만 신고 와요. 그래도 좀 나졌긴 하지만, 뭐 큰 차이 없어요. 제가 불 대서 광내지 않으니까, 와서 닦으라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요. 겨울 말고 불 대서 구두 닦으면 가죽 다 버리거든요. 나만 물광으로 닦으니까 아는 사람은 다 알아서 오라고 그래요. 형도 절대 불광으로 구두 닦지 말아요. 그리고 가정용 구두약 그거 있자나요? 파스처럼 생겨서 문지르는 거. 그거 쓰면 가죽이 뻣뻣해져서 못 써요.
안병욱 : 점점 손님도 늘고 괜찮네요. 가게가 너무 좁은 거 같으니까 좀 넓혀요. 그래야 장사도 더 잘 되지. 너무 좁은 데에서 일하시는 게 좀 고생스러워 보이네요.
백승수 : 전 아무렇지도 않은데 손님들이 불편해 하시니까 좀 크게 짓긴 해야 하는데… 돈이 있어야지요. 이 나이 먹도록 해놓은 게 하나도 없어요, 나는.</b>
이 나이 먹도록 해놓은 거 하나 없기는 피장이 파장이다. 집 평수 좀 넓히고 자동차 배기량 좀 늘어난 것도 해놓은 것의 범주에 속한다면야 해놓은 게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뭐 하나 자신하고 내가 이루었노라 세상에 내밀 게 없기야 대다수 우리의 결산표가 아닌가. 남의 가정사 소상히 밝히기는 좀 거시기하고, 백대표네 요즘 근황은 우환이 가득하다. 여든 셋 되신 아버님은 치매에 대장암이 겹쳤다. 쇄약해서 수술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의사의 견해이다. 형제들이 모여 앉아 궁리를 해봐야 뚜렷한 방책이 서지 않는단다.
<b>백승수 : 그래도 바로 위에 형은 고등학생 딸 하나에 대학생 아들이 하나에요. 바로 밑에 동생은 중장비하고요. 근데, 동생이 제일 무서워요. 그래서 동생이 하라는대로 해요. 큰형도 그래요. 아버지, 큰형이랑 형수, 동생이랑 나랑 이렇게 사는데, 전부 동생이 하라는대로 해요. 근데 큰형만 장가를 갔어요. 전에, 우리 옆집 사는 아줌마가, 이 아줌마가 우리 어머니랑 친했거든요. 이 아줌마가 어머니 돌아 가시고 나서도 우리 집에 자주 오시는데 하루는 색시를 소개 시켜줬어요. 근데 오십이 넘은 여자였어요. 근데 나는 그때 마흔 조금 지났을 때였거든요. 그래서 내가 이랬어요, 싫다구요, 왜 내가 큰 누나뻘한테 장가 드냐구요. 동생도 가지 말라 그랬구요. 그래서 갈뻔 했다가 안 갔어요. 장가를 가 야 하나 안 가야 하나 고민이에요.
안병욱 : 어떤 여자면 좋겠어요?
백승수 : 너무 똑똑한 여자는 싫어요. 나처럼 좀 모자라는 데가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제가요, 정신장애가 있어서요. 머리에서는 이 생각인데 말은 다른 말이 나오고 그래요. 오늘은 그래도 말이 좀 되는데 급하게 말하려면 말이 어버버해지고 엉뚱한 소리가 나오고 그래요. 그냥 좀 모자란 데가 있는 여자가 편해요. 나이는 삼십대면 돼요.</b>
이런, 잘나가다 옆길로 샌다. 본인은 내일모레가 쉰이면서 배우자는 삼십줄을 찾는다. 남자는 다 도적놈이라는 소리가 괜한 말이 아니다. 필자의 아내는 필자 또래이다. 필자는 전혀 불만이 없다. 필자의 아내는 YPN 애독자 가운데 한 명이다.
<b>안병욱 : 나이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요? 다른 부부처럼 서로 도와가며 열심히 모아서 나중에 편하게 살면 되는 거지. 안 그래요?
백승수 :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떤 여자가 나한테 시집온다고 하겠어요? 그래도 우리 엄마가 그 동안 내가 벌어서 갖다 준 돈, 하나도 안 쓰고 통장에 모아두었다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만 살짝 돌려줬어요. 전셋집 얻을 돈은 돼요. 좀 모자라도 착하고 그런 여자한테 장가들면 집 얻을 돈은 있어요.
안병욱 : 나도 여기저기 알아봐야겠네. 승수씨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지.
백승수 : 그런 말 하는 사람은 많이 봤는데 진짜로 여자 소개해준 사람은 하나도 못 봤어요.</b>
계면쩍기도 해라. 담배가 당기는데 빈 갑이다. 커피 두 잔에 담배 한 갑을 시킨다. 출출하기도 하고 점심 한 번 못한 게 마음에 걸려 토스트를 부탁했지만 곤란하단다. 득달같이 커피쟁반을 들고 동년배로 보이는 여자가 비집고 들어와 보자기를 펼친다. 커피 잔과 종이컵이 같이 놓여 있다. 종이컵을 선택한다. 종이컵에 커피 타준 게 미안한지 다음에는 토스트를 해다주겠노라 연변 말투로 다소곳 말한다. 걸맞지 않은 짧은 치마차림의 뒷모습을 보며 저 사람 역시 필자처럼 또 여기 백승수대표처럼 구구절절 사연도 많으리라 짧은 상념이 스쳐 지난다. 따듯한 커피 한 모금 하면서 바라본 가로수에서 바람도 없는데 잎사귀 하나가 툭 떨어진다. 구두방 앉은뱅이 의자에 걸터앉아 늦가을을 보는 맛, 괜찮다.
<b>안병욱 : 재수 없는 손님도 가끔 있죠?
백승수 : 아뇨, 그런 사람 없어요. 다 뭐 괜찮아요.
안병욱 : 그럼 특별히 기분 좋은 손님은 있나요?
백승수 : 뭐 특별히 그런 손님도 없어요. 다 이만저만해요.
안병욱 : 말 함부로 하거나 친절하게 하는 손님은 좀 차이가 나지 않아요?
백승수 : 그거야 뭐 그 사람 마음이고 나야 구두 닦는 값만 받으면 되고, 아직 구두 닦고 돈 없다고 배째라는 사람은 못 봤어요. 그럼 된 거죠, 뭐.
안병욱 : 쉬는 날은 뭐하고 지내세요?
백승수 : 교회 갔다가, 자전거 타고 가는 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래요.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많이 놀았어요. 비 맞으면서 자전거 타는 거 시원해서 좋아요. 근데 뭐, 힘든 건 없는데 사는 게 귀찮아요. </b>
누군들 사는 게 귀찮은 날이 없을까. 매일 마음 추스르며 다시 힘을 내는 거지. 어렵지만 내일의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인터뷰하겠노라는 필자의 의도는 김칫국에 불과하다. 타인의 삶을 멋대로 간주하는 버릇을 고쳐야겠다.
<b>안병욱 : 그래도 차곡차곡 돈도 모이고 좋아지잖아요? 구두 닦는 일이 별로 힘들지 않다니까 다행이네요.
백승수 : 구두 닦는 거 보기보다 재미있어요. 더러운 구두 깨끗이 닦아서 광이 번쩍번쩍 나면 기분도 좋아져요. 저기 안 찾아가서 놔둔 구두, 어떤 건 1년도 넘은 것도 있는데 일 없을 때 저 구두들도 내려놓고 다시 닦아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져요. 구두에 쌓인 먼지 닦으면 마음에 낀 먼지도 닦아지는 거 같아요. 휴, 그래도 사는 게 귀찮아요.</b>
귀찮다더니 그 다음부턴 이런저런 말을 물어도 단답형의 답변뿐이다. 다음에 점심이나 같이 하자 인사하고 자리를 턴다.
November,
비도 없고 눈도 없고 나뭇잎도 없고 그저 허허로워서 서양에선 이름을 그리 붙였다는 11월이다.
YPN뉴스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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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동창회장님의 댓글
동창회장 작성일우리동창입니다 없어서는 안 될친구입니다 동창회 모임.양평64연합회 등 한번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굿은일에도 적극 참여하는 친구입니다 ypn 에서 사랑과 관심으로 인터뷰 하여주신것을 친구를 대표하여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부모님을 잘 섬기는 보기드문 효자 입니다
백승수 친구가 좋은 신부를 만나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것이 친구들의 기도입니다
양평님의 댓글
양평 작성일보면 알 것 같네요.
친구 동생 맞을 듯 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기사 감사드립니다.
엉클조님의 댓글
엉클조 작성일안병욱 대표님의 글솜씨가 구수하니 인간적인게 참 좋네요.
우리 주변의 사람들 살아가는 얘기 좋네요. 정겹고...
가끔 들어오는데 글 자주 올려 주세요~~~~~
구두병원 사장님 좋은 신부 맞으셨으면 좋겠네요
소나무님의 댓글
소나무 작성일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열심히 진실된 삶을 사는 백대표님의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
안대표님의 훈훈한 인터뷰 god .
지역주민님의 댓글
지역주민 작성일우리 선배 인데 참으로 착하지요. 법없서도 살수있는분 입니다. 어느선베보다 존경하지요. 저도 어쩌다 몇번씩은 선배 한데 구두을 딱고 있지요.
mookim님의 댓글
mookim 작성일깔끔하게 삶의 애환을 이렇게 군더더기 없이 정리 하시다니...
글솜씨에 찬사를 보냅니다.
매번 느끼는 생각이지만 글에서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이 ....
글을 너무 잘 쓰십니다.
칼럼애독자 입니다.
...
인터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하는군요.
훈훈한 인터뷰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YPN이 있어서 살만한 양평인것 같군요 ^.^
백구두님의 댓글
백구두 작성일백승수대표 장가보내기 추진위원회를 발족합시다.
의영호님의 댓글
의영호 작성일"도움이 되는 사람들하고만 점심을 먹어온 듯싶다. 부끄러운 일이다"
누구도 쉽사리 다가가지 않는 서민의 애환을 살펴보는 필자의 따뜻한
마음에 다가오는 추운 겨울 우리 서민 마음만은 춥지 않을겁니다...
안병욱대표님!! 사랑합니다 ^^
양평사랑님의 댓글
양평사랑 작성일백승수 바로 위의 형이 내 친구랍니다.
이 녀석 제살기 바빠서 그런지는 몰라도 집안에 신경을 덜 쓰는 것 같아
친구로써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답니다.
군장교로 직업군인 생활을 오래 하다가 지금은 공기업인
정부투자기관 중간관리자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말이죠...
아름다운 이야기
민초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담긴
따듯함이 뭍어나는 이런 기획취재 인터뷰 기사를
앞으로도 많이 부탁드립니다...
양평님의 댓글
양평 작성일진정한 언론사로 ypn 양평에서 성장하시길바라며 양평에 모든 현안을 진실되게 알려주시는 언론의 메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무분별한 광고 및 악성댓글을 차단하기위한 방침이오니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