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손 벌릴 일 없는 일흔 다섯의 삶 - 원로택시기사 이인성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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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워 우리 할머니 투석해주고, 새벽 5시면 집을 나서요
눈처럼 흰 와이셔츠에 비단넥타이를 맨다. 먼지 한 톨 없이 광채를 뿜는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선다. 삐까뻔쩍한 차에 올라 핸들을 잡는다. 며칠 전 언약했던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남산으로 해서 창경궁, 종로통으로 빠져나와 청량리로 해서 세검정 한 바퀴 휘이 돌아보면 쌀이 한 가마다. 골목길에 접어들면 구경꾼이 몰리고, 기방(妓房)에 앉으면 판검사보다 인기가 좋다. 그의 직업은 택시운전사, 1913년 경성에서의 일상이다.
그때는 옛날,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이제 택시기사의 수가 30만을 넘는다. 왕년 선배들의 영화는 전설로만 남아 있고, 날이 갈수록 일은 고되고 수입은 보잘것없다. 불황은 길고도 깊어, 공항 승강장엔 겹겹으로 택시가 늘어선 지 오래다. 양평의 택시들이라고 용 뺄 재간이 있나. 승강장마다 꼬리 물고 늘어서 손님 기다리느라 진이 빠질 뿐이다.
36년 동안 양평에서 택시를 몰고 있는 이인성(75세, 양평읍)옹을 만났다. 2012년 6월 2일 오전 10시, YPN 발행인실은 창문을 닫아걸어도 미화원 시위현장에서 날아드는 소음으로 번잡하다. 수인사도 마치기 전에 이인성 옹이 먼저 입을 뗀다.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할 건 하고나서 싸우든지 말든지 할일이지, 원. 벌건 대낮에 드러눕다시피 모여설랑 악다구니만 써대니깐 동네사람들이 죄 등을 돌리고 동조를 안 하지.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저분들도 다 사연이 있어서 그렇죠. 그나저나 빨리 해결이 잘 되어야 할 텐데… </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아, 안 억울한 사람이 어딨어? 억울하다고 일 작파하고 작당해설랑 떠들기만 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 아, 안 그래요?</b>
체구는 자그만 해도 안경 속 눈빛이 매섭고, 일흔을 한참 넘겨도 목소리는 카랑카랑하다. 낯이 익다. 화제도 돌릴 겸 여러 번 얻어 탄 듯싶다 아는 체를 해본다.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양평 살면서 내 차 한두 번 안 타본 사람이 있겠나, 어디? 나도 댁 얼굴이 생판 첨은 아닌 것 같아.</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택시 모신 지가 꽤 되셨죠?</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76년도부터니까, 가만 올해로 서른 여섯 해가 되네. 오래도 하긴 했네. 내가 그때 군청에서 근무를 했는데, 첨에는 출근 전에 잠깐 몰고 퇴근 후에 잠깐 몰면서 낮에는 사람 두고 택시를 굴렸어요.
당시까지도 여주에 진성택신가 하는 데 소속 예닐곱 대가 양평에서 장사를 했지. 가만 들리는 소리가 수입이 꽤 짭짤하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덜컥 택시를 한 대 사 가지고는 영업을 시작했지. 한 2년 시쳇말로 투잡을 하다가 군청을 때려치웠지. 그때만 해도 수입이 아주 좋았거든. 하루벌이로, 서넛쯤은 밤새 색싯집에서 젓가락 두들겨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였어요.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대단했네요. 요즘은 좀 어떠신지?</b>
<b><font color=green>이인성 : </font>좋은 시절은 옛날 옛적에 종쳤지. 80년대 중반까지는 괜찮았어요. 명절 때면 밥 먹으러 들어갈 시간이 없어서는 밥을 내다 먹었지. 어디 감히 혼자서 택시를 타? 개군이다 용문이다 방향 같은 사람 네다섯을 꽉꽉 채우고 다녔지. 그때 돈 좀 벌었어, 그럼.
그렇게 쏠쏠했는데 도대체 뭔 영문인지 가면 갈수록 바닥이야. 새벽 5시에 나와서는 점심때가 되도 집에 안 가고,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 가겟집에서 우유 한통 사다 때우면서, 딴 기사들 밥 먹는 시간에 손님을 하나라도 더 태우려고 기를 써도 하루 7만원 벌기 바쁜데, 하루걸러 가스비가 5만원을 잡아먹어. 감가상각비니 뭐니는 따지지도 못하고 끽해야 한 달 백오십 넘기기가 요행이야.
그래도 뭐 자식들에게 손은 안 내밀어요. 큰 돈 드는 일이야 자식 놈 셋이 떠맡지만 푼푼이 쓰는 돈이랑 우리 할머니 병원비, 아 그게 두 달마다 가는 데 갈 때마다 40만원이야. 그거 다 내가 벌어서 써요. 손주녀석들도 다 할아버지가 최고다, 그래요. 아직 초등학생이니까 5천원 아래로만 용돈을 주는데 녀석들이, 할아버지 나 천원만 이천원만 그러면 내 한번도 낯 찌푸린 적 없이 척하니 내주곤 하지. 그만하면 이 나이에 됐지 뭐, 안 그래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마나님께서 어디 편찮으신가 봅니다.</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우리 할머니가 신장이 아주 안 좋아요. 매일 투석을 해줘야 하는데, 9시간 꼬박 걸리도록 수발해줘야 해. 평생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해줘야 해요. 안 그러면 석 달도 못 살아, 암. 한 삼사년 됐는데 지금은 엄청 좋아졌어요. 첨에는 지팡이만 안 짚었다 뿐이지 뒷간 갈 때도 휘청휘청했는데, 요즘엔 아침 먹고나면 댓바람에 회관 가서는 하루 죙일 고스돕 쳐도 끄떡이 없어. 아, 그때는 자구나면 퉁퉁 불어서는 동네사람들이 저 할머니 곧 돌아가시겠네, 끌끌 혀를 차곤 그랬었지.
내가 그러구 살아. 밤새 우리 할머니 투석 해주고, 새벽 다섯시면 차 몰고 읍내 나오고, 9시쯤 집에 가설랑 아침 먹고 우리 할머니 기색이 어떤가 살펴도 보고, 당뇨가 있어서 주사도 한방 놔주고, 챙겨먹여야 할 약이 15알이야. 거 다 챙겨주고, 다시 나와 대여섯시까지 장사하다가 회관으로 가서는 우리 할머니 치는 고스돕 판에 껴서 잠시 놀아주다가 집에 와서는 저녁 먹고, 잠시 쉬었다간 우리 할머니 투석해주고 그러구 살아. 딸내미가 사위랑 같이 와서 살아주니까 그나마도 꾸려나가는 거야. 어떤 때 자식보다 사위가 더 고맙고 그래요. </b>
이 옹(翁)은 부인을 우리 할머니라 부른다. ‘우리 자기’ 따위와는 달리 요의를 느끼거나 닭살이 돋지 않는다. 호칭에 담긴 정이 해묵은 장맛을 닮았다. 우리 할머니께서 별 탈 없던 시절 내내 잘도 보필해주셨구나 싶은데 이어지는 말씀을 들어보니 그도 아닌 듯하다.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우리 할머니가 옛날엔 대단했어요. 한때는 나보다 수입이 더 좋았어. 계도 묶고 돈도 이리 저리 굴리기도 하고, 여장부가 따로 없었지. 나야 항시 믿거라 했지. 그게 탈이었지, 뭐. 마음이 약해서는 돈 급한 사람 보면 박절하게 하지를 못했어. 그러다가 내 아는 이에게 왕창 물렸지.
한동안은 내달에 줄게 돌아오는 가을에 줄게 하더니, 나중엔 쌀이나 안 떨어지게 대주겠다 하대. 그 집도 농사가 벌이에 전분데 어쩌겠어. 그러다가 장본인 죽고나니 그것도 땡이야. 그때 한번 크게 휘청하고는 매양 그 타령이지. 나나 우리 할머니나 평생 호의호식 안 하고 살았는데 평생 벌어서 남은 게 지금 사는 집 한 채가 전부야.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택시 하시는 분들도 어렵겠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도 양평은 택시비가 너무 비싸다고들 합니다. </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비싸긴 해요. 한 이십 분 달렸다 하면 만원이 덜컥 넘어가는데 비싸죠. 그런데 참 받는 사람 입장에선 그것 받아 겨우 먹고살 정도니 또 어쩌겠어요? 지금은 타지역에 비해 비싸지도 않아요. 기본요금은 오히려 도시보다 헐할 걸요?
빨리 인구가 늘고 도시화가 되어야지 뭔 해결책이 있겠어. 2천 몇백원 기본요금 찍고 와서는 또 이십분 삼십분 순서 기다리다보면 속이 타요, 타. 희한하게도 기본요금 손님만 걸리는 날은 하루 죙일 그 타령일 때가 많아. 장거리 손님 걸리는 날은 아주 드물지만 또 그렇고. 무슨 조화 속인지, 원.</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특별히 기억에 남는 승객들도 더러 계실 듯합니다. </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저기 삼송리에서 사슴농장 하는 나이 지긋이 잡순 양반인데, 서울서 진로소주
랑 뭔 연관 닿는 일을 하셨다더만. 함자는 잘 모르겠고, 꼭 타고 가면서 좋은 말만 해주고, 잔돈은 한번도 챙겨간 적이 없었어. 콜해서는 삼송리 비포장길 올라가면 수고하셨다고 그렇게 번번이 고마워하시고. 근데,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늘 동부인해서 나들이하셨는데 요즘은 통 그댁 마나님을 못 보겠네. 아직도 근처만 지나가면 그 양반 생각이 나요.
군소리 안하고 요금 정확하게 내는 사람이 제일 좋은 승객이지, 뭐. 콜비 갖고 시비 거는 사람 많아요. 콜 해놓고는 아는 사람 차 보이면 그냥 타고 사라지기 일쑤고. 차 불러놓고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전화해서 물어보면 급해서 딴 차 타고 나왔다, 손해본 차비는 내 지나는 길에 갖다주마 하고는 끝이에요. 그돈 갖다주는 사람 열에 하나도 없어.
엉뚱한 소리하는 사람도 많아요. 길병원 네거리에서 신호 걸리면 이삼백원 더 나오는 게 당연한데, 왜 전에는 2천 7백원 나왔는데 3천원이 놔왔나, 인상 팍 쓰고 따지면, 예 예 알았어요 하고 넘어가고 말아요. 작정하고 덤벼드는 사람한텐 아예 오백원 동전 하나 옛다 먹어라 거슬러주구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에서만 36년 택시를 모셨습니다. 문자 그대로 거리에서, 또 삶의 현장에서 양평의 변화를 목격해오셨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어떤 건지요?</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글쎄, 두드러지게 바뀐 건 모르겠어요. 건물만 몇 개 더 늘어난 정도? 아파트 좀 늘어난 정도? 시내 길은 맨날 똑같고, 뚜렷하게 변한 건 못 느끼겠네. 내가 돈을 못 벌어서 그런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 같아요.
아니, 지금이 더 어려워 보여요. 예전에는 인심이 좋아서 없어도 살 수 있었는데, 요즘은 내거 없으면 먹고 살기 진짜 힘들어. 아, 예전에는 무슨 좋은 일 있으면 떡이라도 해서 동네 곳곳에 돌렸는데 요즘에 그러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이참에 말해둘 게 있는데 그게 뭔고 하니, 우리나라 개인택시는 순전히 양평택시 덕분이라는 거예요. 양평택시 고난 많았어요. 70년대 중후반쯤 일인데, 정부시책이 회사를 꾸며라, 뭐 그런 거였어요. 양평도 회사를 꾸려서는 직영을 해라 해서, 백운택신가 먼가 간판 내걸고는 로보트 사장 하나 놔두고, 하던 사람들이 하던 방식으로 택시해서 먹고살았는데 어떤 사람이 도청에다 신고를 해버렸어요. 껍데기만 회사고 실상은 다 개인끼리 해먹는다 이렇게.
도에서 내려와서 확인해보니까 그게 맞는 소리지, 뭐. 로보트사장 족치니까 꼼짝달싹을 못하고는 도장을 찍으라니까 데꺽 사실확인서에다 도장을 찍어버렸어요. 바로 넘버를 떼어가더라구. 내가 날짜도 안 잊어먹어, 그해 10월 10일이었어요. 황당하지, 경고도 없이 번호판을 떼어가버리니까, 모두 안방에 붙박이로 굶어죽게 생겼지.
그래, 당시 기사들이 집구석에 돈 되는 거 갖다 잽히고 제 엄마 금반지도 내다팔면서 소송 걸었죠. 도적질해먹는 것도 아니고 법 좀 어겼다고 단박에 번호판 떼 가는 처사가 도대체 뭐냐, 길길이 뛰었죠. 그해 12월 28일 판결이 났어, 원상복귀해줘라 이렇게 말이요.
그 바람에 대한민국에서 한시택시가 생긴 거야. 그래서 5년 넘은 차량으로 무사고 3년이면 개인택시를 빼주게 된 거야. 양평사태로 인해서 지금의 개인택시가 생긴 턱이란 말이지. 그때 당시엔 도에다 찌른 사람을 두고 죽일 놈 살릴 놈 했지만 뒤에 보니까 그 사람이 은인이란 말이지.</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한 달에 며칠이나 핸들을 잡으십니까? </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우리 할머니 병원 데리고 가는 날만 쉬어요. 놀면 뭐해? 사내란 그저 새벽밥 먹고 나서서는 저녁밥 먹을 무렵쯤에 들어와야 구실을 해도 하는 거야. 나 말이지, 여든이고 아흔이고 건강만 허락한다면 핸들을 잡고 싶어요. 우리 할머니 죽을 때까지 또 나 죽을 때까지 자식들에게 손 안 내밀고 사는 게 내 소원이다 이 말이지.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 택시 업계 현황이나 사정이 어떻습니까? </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안 좋아요. 택시도 많고, 경기도 불황이고, 차 없는 사람이 없으니. 읍에만 택시가 100대가 넘는데 손님은 가뭄에 콩 나기니 원… </b>
택시기사 체험은 정치인의 단골메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체험의 경지를 넘어 여가생활 수준이다. 도지사 취임 후 모두 35차례 택시운전을 통해 3,991km를 운행, 총 2,256,040원을 벌어 사납금으로 2,157,000원을 납부했다. 순수입은 10만원이 안되는 9만 9,040원인 셈이다. 실력이 형편없거나 준법으로 운행하면 일당이 제로에 가깝다는 소리다.
김 지사는 지난 5월 26일 서울에서 8시간 동안 택시 운전을 마친 뒤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연휴라 그런지 강남역인데도 손님이 너무 없네요, 야간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는 젊은 손님 모셨습니다. 저도 야간 교대 근무를 3년 이상 해봤지만 힘들죠. 남들 잘 때 못자고 일하는 분들 기억하는 우리나라 됐으면 좋겠어요^^”라는 트윗을 남겼다.
높은 사람이 지금 이 나라 택시기사의 현실을 잘 파악해도 나아지는 건 별로 없다.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좀 달라지려나? 아니면, 쇼는 쇼로 마감을 하려나?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정부나 양평군에서 택시기사들을 위해 지원을 해줬으면 하는 부분은 없으신가요?</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가스값 좀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 거 말고는 별거 없어요. 세상살이라는 게 제가 알아서 하는 거지, 나라가 또 남이 대신해줄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요? 양평군에서지원을 해주려고 많이 노력들을 하는 편인데, 올 12월이면 그간의 유류보조비도 폐지된다고 그럽디다. 그래, 몇몇이 군수님 찾아가서 청원을 했는데, 김군수가 원래 없는 사람 하는 소리에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기다려 봐야지.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택시 이용객들이 이런 점은 꼭 좀 고쳤으면 좋겠다 싶은 것도 없지 않으시죠?</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갈수록 건방진 행동들을 많이 해요. 새파란 사람들이 반말 비슷하게 내뱉는 것을 무슨 멋으로 알고 있는 것 같고. 차 돌릴 데도 없는데, 굳이 문앞에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종종 보이고. 그린아파트 같은 데는 10번에 5번은 돌려나오기가 골탕이에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연배가 높으실수록 추억도 많으시다던데, 가장 그리운 추억을 하나 꼽으라면?</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옛날 생각이죠, 꿈틀꿈틀하면 돈 생기던 시절. 만원 한장이면 두둑했죠. 요즘 돈이 어디 돈이에요? 만원짜리 한장 풀어놔봐야 쓸 게 없지. 원, 돈이라고 만원짜리에서 오만원짜리로 이름만 커졌지, 나 이 일 처음하던 시절 천원짜리 한장보다도 못한 걸.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건강은 특별한 문제가 없으시죠?</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겉으론 멀쩡해도, 풀어헤치면 맨 수술흉터에요. 흉부 들어내고 심장혈관 떼어내 이어 붙여서는 목숨 구한 게 3년 전이에요. 담석이라고 해서 앰블런스 타고 응급실에서 매트 깔고 기다렸더니, 뭘 찍네 뭘 재네 밤새 북새통을 치르더니 당장에 수술실로 끌고 갔어.
담석은 아픈 거 말고는 별 문제가 아닌데 그냥 놔뒀으면 수삼일 내 저승사자 만나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던 형편이었다고 의사가 그러더만요. 담석 때문에 살은 거지. 세상이치가 다 그런 건가봐요. 나쁜 일이 꼭 나쁜 일이 아니고 좋은 일이 꼭 좋은 일이 아니고 그런 건가봐. 다른 건 몰라도 길게 보고 살아야겠다 싶어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직업을 떠나, 양평의 노년층으로써 또 지역사회의 원로로써 양평군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을 마지막 질문으로 드립니다.</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난 뭐 생각이 짧아서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아침에 나와서는 어디 손님 없나 살펴보고 저녁에 들어갈 때는 아, 오늘 돈 잘 벌었다 못 벌었다, 그거만 챙기며 살아요. 다른 거 생각해봐야 골치만 아프고, 내가 잘 모르는 일을 두고 이러니저러니 따지는 것두 우습고…</b>
입 가진 사람은 다 떠들고 사는 세상이다. 잘 몰라도 아는 체해야 어디 한 구석 낄 자리가 생긴다. 고찰은커녕 제 생각조차 가다듬지 않은 채 주워들은 풍월로 세상사를 난도질해야 어깨가 펴진다. 필자 역시 입으로는 천생 애국자에, 날카로운 비평가에, 해박한 이론가 노릇하느라 침 마를 새가 없다. 해서, 자기 삶에 투철한 사람을 보면 절로 존경이 솟고 절로 낯이 뜨거워진다.
대담 간간이 짚어보니 이옹은 생판 남이 아니었다. 잘 아는 이의 부친이며, 가까운 이의 장인이며, 주변사람의 선배이며, 필자의 부친과 공직생활을 같이 했던 어른이다. 양평에서 길가는 사람끼리 서로 낯은 몰라도 붙들고 앉아 잠시 따져보면 생판 남이 아닐 확률이 지극히 높다. 지역사회에서는 지갑은 두고 다녀도, 예의범절만큼은 필히 챙겨서 다닐 일이다.
그때는 옛날,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이제 택시기사의 수가 30만을 넘는다. 왕년 선배들의 영화는 전설로만 남아 있고, 날이 갈수록 일은 고되고 수입은 보잘것없다. 불황은 길고도 깊어, 공항 승강장엔 겹겹으로 택시가 늘어선 지 오래다. 양평의 택시들이라고 용 뺄 재간이 있나. 승강장마다 꼬리 물고 늘어서 손님 기다리느라 진이 빠질 뿐이다.
36년 동안 양평에서 택시를 몰고 있는 이인성(75세, 양평읍)옹을 만났다. 2012년 6월 2일 오전 10시, YPN 발행인실은 창문을 닫아걸어도 미화원 시위현장에서 날아드는 소음으로 번잡하다. 수인사도 마치기 전에 이인성 옹이 먼저 입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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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할 건 하고나서 싸우든지 말든지 할일이지, 원. 벌건 대낮에 드러눕다시피 모여설랑 악다구니만 써대니깐 동네사람들이 죄 등을 돌리고 동조를 안 하지.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저분들도 다 사연이 있어서 그렇죠. 그나저나 빨리 해결이 잘 되어야 할 텐데… </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아, 안 억울한 사람이 어딨어? 억울하다고 일 작파하고 작당해설랑 떠들기만 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 아, 안 그래요?</b>
체구는 자그만 해도 안경 속 눈빛이 매섭고, 일흔을 한참 넘겨도 목소리는 카랑카랑하다. 낯이 익다. 화제도 돌릴 겸 여러 번 얻어 탄 듯싶다 아는 체를 해본다.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양평 살면서 내 차 한두 번 안 타본 사람이 있겠나, 어디? 나도 댁 얼굴이 생판 첨은 아닌 것 같아.</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택시 모신 지가 꽤 되셨죠?</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76년도부터니까, 가만 올해로 서른 여섯 해가 되네. 오래도 하긴 했네. 내가 그때 군청에서 근무를 했는데, 첨에는 출근 전에 잠깐 몰고 퇴근 후에 잠깐 몰면서 낮에는 사람 두고 택시를 굴렸어요.
당시까지도 여주에 진성택신가 하는 데 소속 예닐곱 대가 양평에서 장사를 했지. 가만 들리는 소리가 수입이 꽤 짭짤하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덜컥 택시를 한 대 사 가지고는 영업을 시작했지. 한 2년 시쳇말로 투잡을 하다가 군청을 때려치웠지. 그때만 해도 수입이 아주 좋았거든. 하루벌이로, 서넛쯤은 밤새 색싯집에서 젓가락 두들겨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였어요.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대단했네요. 요즘은 좀 어떠신지?</b>
<b><font color=green>이인성 : </font>좋은 시절은 옛날 옛적에 종쳤지. 80년대 중반까지는 괜찮았어요. 명절 때면 밥 먹으러 들어갈 시간이 없어서는 밥을 내다 먹었지. 어디 감히 혼자서 택시를 타? 개군이다 용문이다 방향 같은 사람 네다섯을 꽉꽉 채우고 다녔지. 그때 돈 좀 벌었어, 그럼.
그렇게 쏠쏠했는데 도대체 뭔 영문인지 가면 갈수록 바닥이야. 새벽 5시에 나와서는 점심때가 되도 집에 안 가고,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 가겟집에서 우유 한통 사다 때우면서, 딴 기사들 밥 먹는 시간에 손님을 하나라도 더 태우려고 기를 써도 하루 7만원 벌기 바쁜데, 하루걸러 가스비가 5만원을 잡아먹어. 감가상각비니 뭐니는 따지지도 못하고 끽해야 한 달 백오십 넘기기가 요행이야.
그래도 뭐 자식들에게 손은 안 내밀어요. 큰 돈 드는 일이야 자식 놈 셋이 떠맡지만 푼푼이 쓰는 돈이랑 우리 할머니 병원비, 아 그게 두 달마다 가는 데 갈 때마다 40만원이야. 그거 다 내가 벌어서 써요. 손주녀석들도 다 할아버지가 최고다, 그래요. 아직 초등학생이니까 5천원 아래로만 용돈을 주는데 녀석들이, 할아버지 나 천원만 이천원만 그러면 내 한번도 낯 찌푸린 적 없이 척하니 내주곤 하지. 그만하면 이 나이에 됐지 뭐, 안 그래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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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마나님께서 어디 편찮으신가 봅니다.</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우리 할머니가 신장이 아주 안 좋아요. 매일 투석을 해줘야 하는데, 9시간 꼬박 걸리도록 수발해줘야 해. 평생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해줘야 해요. 안 그러면 석 달도 못 살아, 암. 한 삼사년 됐는데 지금은 엄청 좋아졌어요. 첨에는 지팡이만 안 짚었다 뿐이지 뒷간 갈 때도 휘청휘청했는데, 요즘엔 아침 먹고나면 댓바람에 회관 가서는 하루 죙일 고스돕 쳐도 끄떡이 없어. 아, 그때는 자구나면 퉁퉁 불어서는 동네사람들이 저 할머니 곧 돌아가시겠네, 끌끌 혀를 차곤 그랬었지.
내가 그러구 살아. 밤새 우리 할머니 투석 해주고, 새벽 다섯시면 차 몰고 읍내 나오고, 9시쯤 집에 가설랑 아침 먹고 우리 할머니 기색이 어떤가 살펴도 보고, 당뇨가 있어서 주사도 한방 놔주고, 챙겨먹여야 할 약이 15알이야. 거 다 챙겨주고, 다시 나와 대여섯시까지 장사하다가 회관으로 가서는 우리 할머니 치는 고스돕 판에 껴서 잠시 놀아주다가 집에 와서는 저녁 먹고, 잠시 쉬었다간 우리 할머니 투석해주고 그러구 살아. 딸내미가 사위랑 같이 와서 살아주니까 그나마도 꾸려나가는 거야. 어떤 때 자식보다 사위가 더 고맙고 그래요. </b>
이 옹(翁)은 부인을 우리 할머니라 부른다. ‘우리 자기’ 따위와는 달리 요의를 느끼거나 닭살이 돋지 않는다. 호칭에 담긴 정이 해묵은 장맛을 닮았다. 우리 할머니께서 별 탈 없던 시절 내내 잘도 보필해주셨구나 싶은데 이어지는 말씀을 들어보니 그도 아닌 듯하다.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우리 할머니가 옛날엔 대단했어요. 한때는 나보다 수입이 더 좋았어. 계도 묶고 돈도 이리 저리 굴리기도 하고, 여장부가 따로 없었지. 나야 항시 믿거라 했지. 그게 탈이었지, 뭐. 마음이 약해서는 돈 급한 사람 보면 박절하게 하지를 못했어. 그러다가 내 아는 이에게 왕창 물렸지.
한동안은 내달에 줄게 돌아오는 가을에 줄게 하더니, 나중엔 쌀이나 안 떨어지게 대주겠다 하대. 그 집도 농사가 벌이에 전분데 어쩌겠어. 그러다가 장본인 죽고나니 그것도 땡이야. 그때 한번 크게 휘청하고는 매양 그 타령이지. 나나 우리 할머니나 평생 호의호식 안 하고 살았는데 평생 벌어서 남은 게 지금 사는 집 한 채가 전부야.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택시 하시는 분들도 어렵겠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도 양평은 택시비가 너무 비싸다고들 합니다. </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비싸긴 해요. 한 이십 분 달렸다 하면 만원이 덜컥 넘어가는데 비싸죠. 그런데 참 받는 사람 입장에선 그것 받아 겨우 먹고살 정도니 또 어쩌겠어요? 지금은 타지역에 비해 비싸지도 않아요. 기본요금은 오히려 도시보다 헐할 걸요?
빨리 인구가 늘고 도시화가 되어야지 뭔 해결책이 있겠어. 2천 몇백원 기본요금 찍고 와서는 또 이십분 삼십분 순서 기다리다보면 속이 타요, 타. 희한하게도 기본요금 손님만 걸리는 날은 하루 죙일 그 타령일 때가 많아. 장거리 손님 걸리는 날은 아주 드물지만 또 그렇고. 무슨 조화 속인지, 원.</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특별히 기억에 남는 승객들도 더러 계실 듯합니다. </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저기 삼송리에서 사슴농장 하는 나이 지긋이 잡순 양반인데, 서울서 진로소주
랑 뭔 연관 닿는 일을 하셨다더만. 함자는 잘 모르겠고, 꼭 타고 가면서 좋은 말만 해주고, 잔돈은 한번도 챙겨간 적이 없었어. 콜해서는 삼송리 비포장길 올라가면 수고하셨다고 그렇게 번번이 고마워하시고. 근데,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늘 동부인해서 나들이하셨는데 요즘은 통 그댁 마나님을 못 보겠네. 아직도 근처만 지나가면 그 양반 생각이 나요.
군소리 안하고 요금 정확하게 내는 사람이 제일 좋은 승객이지, 뭐. 콜비 갖고 시비 거는 사람 많아요. 콜 해놓고는 아는 사람 차 보이면 그냥 타고 사라지기 일쑤고. 차 불러놓고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전화해서 물어보면 급해서 딴 차 타고 나왔다, 손해본 차비는 내 지나는 길에 갖다주마 하고는 끝이에요. 그돈 갖다주는 사람 열에 하나도 없어.
엉뚱한 소리하는 사람도 많아요. 길병원 네거리에서 신호 걸리면 이삼백원 더 나오는 게 당연한데, 왜 전에는 2천 7백원 나왔는데 3천원이 놔왔나, 인상 팍 쓰고 따지면, 예 예 알았어요 하고 넘어가고 말아요. 작정하고 덤벼드는 사람한텐 아예 오백원 동전 하나 옛다 먹어라 거슬러주구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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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에서만 36년 택시를 모셨습니다. 문자 그대로 거리에서, 또 삶의 현장에서 양평의 변화를 목격해오셨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어떤 건지요?</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글쎄, 두드러지게 바뀐 건 모르겠어요. 건물만 몇 개 더 늘어난 정도? 아파트 좀 늘어난 정도? 시내 길은 맨날 똑같고, 뚜렷하게 변한 건 못 느끼겠네. 내가 돈을 못 벌어서 그런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 같아요.
아니, 지금이 더 어려워 보여요. 예전에는 인심이 좋아서 없어도 살 수 있었는데, 요즘은 내거 없으면 먹고 살기 진짜 힘들어. 아, 예전에는 무슨 좋은 일 있으면 떡이라도 해서 동네 곳곳에 돌렸는데 요즘에 그러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이참에 말해둘 게 있는데 그게 뭔고 하니, 우리나라 개인택시는 순전히 양평택시 덕분이라는 거예요. 양평택시 고난 많았어요. 70년대 중후반쯤 일인데, 정부시책이 회사를 꾸며라, 뭐 그런 거였어요. 양평도 회사를 꾸려서는 직영을 해라 해서, 백운택신가 먼가 간판 내걸고는 로보트 사장 하나 놔두고, 하던 사람들이 하던 방식으로 택시해서 먹고살았는데 어떤 사람이 도청에다 신고를 해버렸어요. 껍데기만 회사고 실상은 다 개인끼리 해먹는다 이렇게.
도에서 내려와서 확인해보니까 그게 맞는 소리지, 뭐. 로보트사장 족치니까 꼼짝달싹을 못하고는 도장을 찍으라니까 데꺽 사실확인서에다 도장을 찍어버렸어요. 바로 넘버를 떼어가더라구. 내가 날짜도 안 잊어먹어, 그해 10월 10일이었어요. 황당하지, 경고도 없이 번호판을 떼어가버리니까, 모두 안방에 붙박이로 굶어죽게 생겼지.
그래, 당시 기사들이 집구석에 돈 되는 거 갖다 잽히고 제 엄마 금반지도 내다팔면서 소송 걸었죠. 도적질해먹는 것도 아니고 법 좀 어겼다고 단박에 번호판 떼 가는 처사가 도대체 뭐냐, 길길이 뛰었죠. 그해 12월 28일 판결이 났어, 원상복귀해줘라 이렇게 말이요.
그 바람에 대한민국에서 한시택시가 생긴 거야. 그래서 5년 넘은 차량으로 무사고 3년이면 개인택시를 빼주게 된 거야. 양평사태로 인해서 지금의 개인택시가 생긴 턱이란 말이지. 그때 당시엔 도에다 찌른 사람을 두고 죽일 놈 살릴 놈 했지만 뒤에 보니까 그 사람이 은인이란 말이지.</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한 달에 며칠이나 핸들을 잡으십니까? </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우리 할머니 병원 데리고 가는 날만 쉬어요. 놀면 뭐해? 사내란 그저 새벽밥 먹고 나서서는 저녁밥 먹을 무렵쯤에 들어와야 구실을 해도 하는 거야. 나 말이지, 여든이고 아흔이고 건강만 허락한다면 핸들을 잡고 싶어요. 우리 할머니 죽을 때까지 또 나 죽을 때까지 자식들에게 손 안 내밀고 사는 게 내 소원이다 이 말이지.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 택시 업계 현황이나 사정이 어떻습니까? </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안 좋아요. 택시도 많고, 경기도 불황이고, 차 없는 사람이 없으니. 읍에만 택시가 100대가 넘는데 손님은 가뭄에 콩 나기니 원… </b>
택시기사 체험은 정치인의 단골메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체험의 경지를 넘어 여가생활 수준이다. 도지사 취임 후 모두 35차례 택시운전을 통해 3,991km를 운행, 총 2,256,040원을 벌어 사납금으로 2,157,000원을 납부했다. 순수입은 10만원이 안되는 9만 9,040원인 셈이다. 실력이 형편없거나 준법으로 운행하면 일당이 제로에 가깝다는 소리다.
김 지사는 지난 5월 26일 서울에서 8시간 동안 택시 운전을 마친 뒤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연휴라 그런지 강남역인데도 손님이 너무 없네요, 야간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는 젊은 손님 모셨습니다. 저도 야간 교대 근무를 3년 이상 해봤지만 힘들죠. 남들 잘 때 못자고 일하는 분들 기억하는 우리나라 됐으면 좋겠어요^^”라는 트윗을 남겼다.
높은 사람이 지금 이 나라 택시기사의 현실을 잘 파악해도 나아지는 건 별로 없다.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좀 달라지려나? 아니면, 쇼는 쇼로 마감을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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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정부나 양평군에서 택시기사들을 위해 지원을 해줬으면 하는 부분은 없으신가요?</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가스값 좀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 거 말고는 별거 없어요. 세상살이라는 게 제가 알아서 하는 거지, 나라가 또 남이 대신해줄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요? 양평군에서지원을 해주려고 많이 노력들을 하는 편인데, 올 12월이면 그간의 유류보조비도 폐지된다고 그럽디다. 그래, 몇몇이 군수님 찾아가서 청원을 했는데, 김군수가 원래 없는 사람 하는 소리에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기다려 봐야지.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택시 이용객들이 이런 점은 꼭 좀 고쳤으면 좋겠다 싶은 것도 없지 않으시죠?</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갈수록 건방진 행동들을 많이 해요. 새파란 사람들이 반말 비슷하게 내뱉는 것을 무슨 멋으로 알고 있는 것 같고. 차 돌릴 데도 없는데, 굳이 문앞에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종종 보이고. 그린아파트 같은 데는 10번에 5번은 돌려나오기가 골탕이에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연배가 높으실수록 추억도 많으시다던데, 가장 그리운 추억을 하나 꼽으라면?</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옛날 생각이죠, 꿈틀꿈틀하면 돈 생기던 시절. 만원 한장이면 두둑했죠. 요즘 돈이 어디 돈이에요? 만원짜리 한장 풀어놔봐야 쓸 게 없지. 원, 돈이라고 만원짜리에서 오만원짜리로 이름만 커졌지, 나 이 일 처음하던 시절 천원짜리 한장보다도 못한 걸.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건강은 특별한 문제가 없으시죠?</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겉으론 멀쩡해도, 풀어헤치면 맨 수술흉터에요. 흉부 들어내고 심장혈관 떼어내 이어 붙여서는 목숨 구한 게 3년 전이에요. 담석이라고 해서 앰블런스 타고 응급실에서 매트 깔고 기다렸더니, 뭘 찍네 뭘 재네 밤새 북새통을 치르더니 당장에 수술실로 끌고 갔어.
담석은 아픈 거 말고는 별 문제가 아닌데 그냥 놔뒀으면 수삼일 내 저승사자 만나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던 형편이었다고 의사가 그러더만요. 담석 때문에 살은 거지. 세상이치가 다 그런 건가봐요. 나쁜 일이 꼭 나쁜 일이 아니고 좋은 일이 꼭 좋은 일이 아니고 그런 건가봐. 다른 건 몰라도 길게 보고 살아야겠다 싶어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직업을 떠나, 양평의 노년층으로써 또 지역사회의 원로로써 양평군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을 마지막 질문으로 드립니다.</b>
<b><font color=green>이인성 :</font> 난 뭐 생각이 짧아서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아침에 나와서는 어디 손님 없나 살펴보고 저녁에 들어갈 때는 아, 오늘 돈 잘 벌었다 못 벌었다, 그거만 챙기며 살아요. 다른 거 생각해봐야 골치만 아프고, 내가 잘 모르는 일을 두고 이러니저러니 따지는 것두 우습고…</b>
입 가진 사람은 다 떠들고 사는 세상이다. 잘 몰라도 아는 체해야 어디 한 구석 낄 자리가 생긴다. 고찰은커녕 제 생각조차 가다듬지 않은 채 주워들은 풍월로 세상사를 난도질해야 어깨가 펴진다. 필자 역시 입으로는 천생 애국자에, 날카로운 비평가에, 해박한 이론가 노릇하느라 침 마를 새가 없다. 해서, 자기 삶에 투철한 사람을 보면 절로 존경이 솟고 절로 낯이 뜨거워진다.
대담 간간이 짚어보니 이옹은 생판 남이 아니었다. 잘 아는 이의 부친이며, 가까운 이의 장인이며, 주변사람의 선배이며, 필자의 부친과 공직생활을 같이 했던 어른이다. 양평에서 길가는 사람끼리 서로 낯은 몰라도 붙들고 앉아 잠시 따져보면 생판 남이 아닐 확률이 지극히 높다. 지역사회에서는 지갑은 두고 다녀도, 예의범절만큼은 필히 챙겨서 다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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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PN뉴스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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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마님의 댓글
야생마 작성일젊은 사람들은 고난으로 알고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이 분은 무덤덤한 일상이시네요~~고통을 일상으로 받아 들이고 달관할 수 있는 것이 원로분들께 배울 점 아닐가합니다. 작은 어려움이 있어도 이를 즐길 수 있는 여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친구아버님님의 댓글
친구아버님 작성일항상 건강하시구 오래사세요
용문면민님의 댓글
용문면민 작성일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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