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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PN뉴스 2025년 04월 0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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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PN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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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1-11-06 22:46 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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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이 매일매일 어깨에 올라타는 것 같아요”-양평군보건소 방문간호사 -

빛은 그늘을 만든다.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늘은 더욱 짙어진다. 밝은 빛 속에선 그늘 속이 보이지 않고, 그늘 속에선 빛 속이 선명하게 보이는 법이다. 힘드네 죽겠네, 엄살이 입에 붙어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발전은 가히 빛의 속도로 솟구쳐왔다. 그 찬란한 빛에 드리운 그늘, 그 그늘 속에서 바라보는 찬란한 빛의 세계는 잔인하도록 선명하다.

아직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을까싶은, 가난과 질병의 그늘 속에 감금되어 망연히 살아가는 우리 이웃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 그늘 속을 헤치고, 양평의 밝은 빛을 끌어들이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2011년 11월 3일, 양평군보건소에서 방문간호사 7명과 자리를 함께 했다. 방문간호사 제도는 2007년 시작된 보건복지부의 ‘맞춤형 방문건강관리사업’의 일환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노인계층과 기타 소외계층을 직접 방문하여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답변자의 이름은 서비스 대상자의 개인정보 노출 우려와 기타 문제로 꽃이름으로 대신한다. 꽃이름을 붙여도 그리 과하지 않을 사람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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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 </font>어려운 이웃과 매일 함께 생활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 일에 뛰어드신 계기를 첫 질문으로 드리고자 합니다.
<font color=green>진달래 :</font>  예전부터 사회현상 특히 빈곤층 문제에 관심이 있었지만,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결혼한 여자의 일자리로 적당하다고 판단해서입니다.   
<font color=green>들국화 : </font>저 역시 비슷한 이유입니다.</b>

참석자 대부분이 비슷하다. 봉사정신 혹은 박애정신을 들먹이는 참석자는 없다. 조금 실망스러운 답변이지만 시작에서 여태까지의 과정은 가슴이 뭉클한 얘기로 점철돼 있다.

<b><font color=green>제비꽃 : </font>첫날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펑펑 울었어요. 어떻게 그렇게들 살고 있는지 그분들에게 화가 났고, 어떻게 그렇게 살도록 방치해두는지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어요. 그분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제 자신이 너무나 비참했구요. 세상에, 당뇨가 심해 앉아 있기도 힘든 독거노인이 다리 건너 공용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게 말이 되요?

<font color=green>민들레 :</font>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대상자들도 상당히 폐쇄적이었구요. 네들이 해주면 뭘해주겠느냐 귀찮으니까 오지 말라, 이러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분들에겐 건강관리라는 말자체가 사치스러운 소리로밖에는 안 들리는 거 같았어요. 그래도 자꾸 찾아가 뵙고 그러다보니까 요즘엔 거의 가족처럼 지내죠.

<font color=green>나리꽃 :</font> 저희가 만나는 사람들은 아픈 사연이 많고 슬픔에 익숙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처음엔 진짜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얘기만 들어줘도 그분들에는 큰 힘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러고 난 이후에는 많이 좋아졌어요. 이분들을 뭘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로만 여기는 건 엄청나게 잘못된 선입견이에요. 사람과 사람으로 친해지는 게 우선이죠. 아무한테도 못 털어놓는 얘기를 제게 해주는 게 고맙고, 그동안 쌓인 한을 털어놓는 것도 고맙고. 고마워지면 친밀해지고 친밀해지면 제가 해야 할 일이 저절로 생겨나고 그래서 서로 더 친해지고, 이젠 정말 가족 같이 느껴지는 분들이 많아요.

<font color=green>나팔꽃 :</font> 여름에 가면 냉수부터 챙겨주시고, 겨울에 가면 아랫목에 손부터 묻어주시고 그래요. 오히려 저희들 걱정이 더 크세요. 친정부모는 자주 찾아가느냐, 시부모한테 잘해야 쓴다, 얘는 누가 키워주느냐, 좀 여빈 거 같은데 밥맛없어도 잘 챙겨먹어라, 정말 제 어머니 같고 제 아버지 같은 분들이에요, 지금은.

<font color=green>초롱꽃 :</font> 마지막 떠나실 때 저희를 찾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그래서 임종을 지켜드리는 일이 가끔 있는데 나중에 유가족에게 자식들보다 저희를 더 보고 싶어했다는 말을 들을 땐 오랫동안 마음이 아파요. 좀 더 잘해드릴걸, 좀 더 자주 찾아가 뵐걸, 이런 후회가 들곤 하죠. 지난 방문 땐 멀쩡했던 분이 돌아가시면서 저희들한테 고마웠다고 유언을 남기셨던 적이 있는데 돌아오는 길 내내 울면서 핸들을 잡으면서도 제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람이랄까 사명이랄까 그런 가슴 벅찬 경험도 했구요.</b>

싫은 사람도 자주 만나게 되면 정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정이라는 건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기 마련이다. 살아가면서 가장 큰 불행은 무엇일까. 정 나눌 사람이 없는 완전한 고립이 아닐까. 사람이 헐벗게 되면 있던 사람도 떨어져나가는 게 세상이치다. 헐벗은 사람에게 다시 정 나눌 사람이 생긴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이며, 헐벗은 사람을 찾아 정을 나누는 발걸음은 얼마나 숭고한 순례인가. 전국의 방문간호사는 현재 2500명 가량이고 양평은 10명의 방문간호사가 1인당 400여 가구를 순례하고 있다. 한 사람의 빛으로 400가구의 그늘을 얼마나 밝힐 수 있을까.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하루에 몇 가구나 방문하시고 계십니까?
<font color=green>진달래 :</font> 특별한 경우엔 대여섯 가구, 보통은 열 가구 정도 됩니다.
<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세세히 챙기기에는 역부족이네요. 관리대상이 400가구인데 자주 찾아가기는 어렵겠네요?
<font color=green>민들레 :</font> 상황에 따라 분류를 합니다. 보통은 3주 간격으로 찾아뵙고, 중점관리 대상은 1주일에 2,3번 방문합니다. 아주 위기상황일 땐 거의 매일 찾아가기도 하구요. 저희 혼자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보건소 소속 의료진과 사회단체의 협조를 받아서 가능한 충실한 서비스를 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font color=green>들국화 :</font> 그나마 2인 1조 방문원칙을 포기하고, 전부 개별적으로 방문하는 덕분에 그나마도 가능한 거죠. 혼자 다니면 정말 어려운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에요. 대낮부터 술이 잔뜩 취해서 자꾸 집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남자분들이 제일 무섭고, 안 묶어놓은 개도 무섭고, 이런저런 돌발상황을 대처하기가 너무 힘들죠. 그렇다고 둘씩 다니면 꼭 가봐야 할 집도 가볼 수가 없으니 다른 도리가 없죠.

<font color=green>제비꽃 :</font> 서류작업이라도 좀 간편하면 저녁 늦도록 몇 집 더 방문할 수 있을 텐데, 저희가 생각할 땐 이런 문서를 왜 작성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작성서류가 굉장히 많아요. 실제 활동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외려 정작 해야 할 일을 방해하는 서류가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요.
<font color=green>나리꽃 :</font> 방문대상가구는 외진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방문 영역이 넓죠. 오가는 시간도 아까운데 서면작업에 시간을 뺏기는 건 정말 인력낭비이고 서비스대상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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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서류는 공직사회의 치명적 복병 가운데 하나임은 이미 옛날 옛적부터 지적돼 왔다. 시시때때로 부상하는 문제이고 늘 개선책이 발표되지만 산더미 같은 서류는 서고에서 디지털저장매체로 이동되었을 뿐이다.  작성자 말고는 아무도 읽지 않을 서류가 오늘도 대한민국 공직자의 시간을 갉아먹고 대한민국 국민의 권익을 갉아먹고 있을 터이다.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듣고 보니 애로사항이 많을 것 같네요. 고충이나 꼭 개선되어야 할 부분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font color=green>나팔꽃 :</font> 방문간호사는 열 명인데, 관용차량은 두 대라서 순번제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개인차량으로 방문을 해야 돼요. 유류비는 지원되지만 차량관리비는 개인지출이구요. 사고라도 나면 순전히 개인책임이에요. 업무특성상 비포장도로나 좁은 길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접촉사고나 고장이 자주 나는 편이라 굉장히 부담이 돼요.  개인차량과 관용차량은 큰 차이가 나요. 아무래도 관용차로 다니면 공신력이 바탕이 되니까 활동하기가 훨씬 낫죠. 

<font color=green>나리꽃 :</font> 장기방문요양 대상자로 선정이 되면 건강관리공단에서 관리를 합니다. 그런데, 실제 방문을 할 전문인력이 공급이 안 돼는 게 현실입니다. 관내에선 해당요건을 갖춘 인력이 드물고, 외부에선 멀다고 기피해서 결국 대상자는 양평군보건소의 서비스도 못 받고 있는 실정이죠. 비슷한 국가복지 혜택을 중복으로 받을 수 없다는 이유인데 당사자 입장에선 정말 억울한 일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저희들이 암암리에 방문하고 있긴 하지만 이 부분도 빨리 개선되어야 합니다.

<font color=green>초롱꽃 :</font> 농촌지역은 도시에 비해 근무여건이 매우 좋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대중교통편은 아예 이용할 수도 없고, 담당지역이 넓은데다 외진 데가 많은데도 근무평가는 방문호수에 집중되니까 힘은 힘대로 더 들고 대상자에 대한 서비스도 상대적으로 미진한 게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해요. 밥 먹을 데가 마땅치 않아서 김밥이나 빵으로 점심 때울 때가 더 많아요. 가족들은 그렇게 힘들면 그만 두라고 말하기도 하고 주변에선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게 어떠냐고 걱정해주기도 하지만 이 일은 한 번 발을 디디면 맥없이 그냥 고만 둘 수 없는 책임감이 저절로 생겨요. 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분들이 하나 둘이 아닌 걸 뻔히 아는데 제 입장만 챙기기가 쉽지 않은 거죠.

<font color=green>진달래 :</font> 제일 큰 문제는 고용안정이에요. 저희 분야는 기간제임명이 원칙이라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늘 불안한 면이 있어요. 다행이 양평군에서는 호봉제를 적용해서 다른 지역보단 그래도 안정적인 편이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과는 하늘과 땅이죠. 몇몇 지자체에선 최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고, 보건복지부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정말 사명감을 갖고 이 일을 하려면, 이 일이 내 천직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 데 지금처럼 불안한 신분으론 그러기가 좀 애매하죠.</b>

차량이나 정규직 문제나 귀결은 예산문제다. 양평군의 사회복지 구현 의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분석과 관련학계에 따르면 5년간의 방문간호사 활동이 빈곤층의 질병악화 차단과 질병예방으로 이어져 공공의료비가 크게 절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합리적인 사회복지 정책은 세금을 소모하는 게 아니라 세금을 절약하는 지름길임을 입증한 것이다. 더욱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방문간호사는 이리 새고 저리 놓치는 지자체의 헐거운 사회복지망을 촘촘하게 엮어줄 수 있는 현장의 눈(眼)이라는 사실이다. 더불어, 생판 모르는 사람의 처지 때문에 펑펑 울 수 있는 마음 없이는 단 하루도 근무하기 어려운 일자리임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b><font color=green>들국화 : </font>저희 고충을 다 말하기는 참 어색해요. 저희가 만나는 분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거든요. 제가 방문하는 어떤 집은 네 가족이 하루 종일 은행알을 까는 게 유일한 수입원이었는데, 한 달에 끽해야 3,4십만원 정도였어요. 요건이 안돼서 어떤 사회복지혜택도 받지 못하는 집인데 사는 게 정말 말이 아니었죠. 제가 여러 번 설득해서 지능장애가 있던 아들은 특수교육기관에서 직업훈련 받고나서 지금은 취업을 했고, 어머니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지금은 잘 살고 있어요. 이렇게 개선할 방법이 있는 집들은 그나마 희망이라도 있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는 집들은 가슴만 막막해질 뿐 어쩔 도리가 없어서 옆에서 지켜보기가 너무 힘들어요.

<font color=green>민들레 :</font> 힘든 사람들 도와주기는커녕 쪽박을 깨는 사람들도 많아요. 제가 친하게 지내는 언니뻘이 한 분 계시는데, 서울에서 친하게 지내던 분의 권유로 이사 온 케이스에요. 이사 오라고, 이사 와서 텃밭이나 가꾸면서 편히 살라고 자꾸자꾸 권유하던 사람네 소유 집에 3천만원을 전세금조로 주고 자식도 없이 부부끼리만 살던 분인데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져서 몇 년 동안이나 죽을 고생 다 하셨는데 결국 남편을 먼저 보내셨어요. 남편 없이 시골 생활이 너무 힘드시니까 읍내로 나오려고 집주인에게 전세금 빼 달라 요청했더니 그렇게 다정했던 사람들이, 당신네들 살라고 집고치는 데 그 돈 다 들어갔으니 돌려줄 돈이 없다고 우기고 있어서 보통 힘든 게 아니에요. 소송을 내긴 냈지만 변호사 말로는 승산이 반반이래요. 그것 말고는 손에 쥔 게 하나도 없는 언닌데 마음이 오죽하겠어요.

<font color=green>제비꽃 : </font>주거환경이 너무 열악한 분들은 저희가 라이온스 클럽이나 여러 사회단체에 조력을 받아서 집수리를 해주곤 하는데요. 비새는 지붕 갈고, 벽지랑 장판이랑 새로 깔고, 싱크대 바꾸고 새집처럼 고쳐놓으면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본인이 들어와 살 욕심 아니면 지금보다 돈 더 받고 세를 놓을 욕심에서 그러는 거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요. 요즘은 본인 소유 주택이나 집주인의 약속을 받고나서 집수리를 하는데 수리 끝나고 나면 딴소리하는 집주인들도 더러 있어서 참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난감해요.

<font color=green>나팔꽃 :</font>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더 무서운 경우가 많아요. 특히 가족이 외면하는 경우는 속수무책이에요. 자식이 있으니 기초생활수급자도 될 수 없는데 자식들은 나 몰라라 하고, 본인은 전혀 노동능력은 없고, 딱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죠. 한번은 그런 처지에다 걷기도 힘든 분을 어렵게 민간병원의 도움을 구해 디스크 수술을 해드렸는데 나중에 자식들이 거세게 항의를 해서 아주 곤욕을 치렀어요. 그 수술은 완치되는 동안까지는 평소보다 동작이 더 어려워지는 건데, 우리 어머니 말도 없이 데려가 병신 만들어 왔다고 길길이 뛰고 난리가 아니었어요. 지금이야 다 나아서 그 분이야 뵐 때마다 고맙다고 하지만, 자식들은 여태 코빼기도 본 적이 없어요.

<font color=green>나리꽃 :</font> 가족의 냉대가 제일 안타까워요. 제가 가는 집 가운데 아들하고 아버지만 사는 집이 있는데, 아버지는 거동이 많이 불편하셔요. 아들이 스물이 넘었는데, 방안에 들어가보면 아들 이불은 깨끗한데 아버지 이불은 새까매요. 저만 깨끗한 이불에 쏙 들어가서 자는 아들이니 오죽하겠어요? 벌어서 저 혼자만 쓰지 생전 아버지를 돌보지 않아요. 제가 중뿔나게 나서서 아들을 타이를 수도 없고 타이른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고, 아버지는 자기가 예전에 잘못한 게 많아서 그런 거지 아들이 절대 나쁜 얘가 아니라고 두둔만 하시고. 그런 사정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게 되니까… 하지만 고충도 크지만 보람도 커요. 지난 일요일에는 베트남 신부한테 전화가 왔어요. 달려가보니까 애를 이불로 꽁꽁 싸놨더라구요. 아이가 먹지도 않고 열은 오르고 추워하는 거 같아서 그랬다고 하는데 까딱 잘못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제가 부랴부랴 수습해서 별 탈 없이 넘기긴 했지만 다문화가족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급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제가 저렇게 기댈 곳 없는 사람들에게 비빌 언덕이 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뿌듯하기도 하구요.

<font color=green>진달래 : </font>관절염이 굉장히 심한 어른이 한 분 계세요. 그게 통증이 엄청난 병이잖아요. 하루는 혈압 재고 나오려는데 머리카락 속이 이상하더라구요. 머리칼을 헤집고 봤더니 500원짜리 동전만한 상처가 깊이 나 있었어요. 노랗게 두개골이 보일 정도로요. 깜짝 놀라서 왜 이러냐고 여쭸더니 거기다 뜸을 뜬 거래요. 그러고나서 관절염 아픈 걸 잘 모르겠다고 그러시더라구요. 제가 보기엔 그 정도 상처면 머리부위가 아파서 관절염 아픈 건 느낄 틈도 없겠던대요. 어렵게 병원을 물색해서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조금만 더 지체했으면 손쓸 방책이 없었을 거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퇴원하시고 난 뒤 거의 하루건너 찾아뵙고 그랬죠. 너무 걱정이 돼서 퇴근길에 차를 돌려서 간 게 한두 번이 아네요. 몇 달 동안 머리도 못 감고 고생도 많으셨지만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뵐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와요. 버르장머리 없는 소리겠지만 가끔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제 아이처럼 느껴질 때도 없지 않아요.

<font color=green>들국화 : </font>이해할 수 없는 건 기초생활보장법이 개선되면서 정작 꼭 대상이 되어야 할 분들이 탈락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거예요. 그 혜택으로 겨우겨우 연명하던 분들이 하루아침에 생명줄이 끊어져서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면 저도 견딜 수 없이 괴로워져요. 제가 찾아뵙는 어느 할머니는 무상으로 지원 받던 약을 가뜩이나 없는 돈을 주고 사야하는 현실에 크게 분노하고 계세요. 뵐 때마다 이번 달 약 떨어질 때까지만 살고 콱 죽어버리겠다는 소리를 습관처럼 내뱉으세요.</b> 

설상가상, 어려운 사람은 왜 어려운 일이 자꾸 겹치는 걸까. 사람을 만나도 왜 철면피하고만 인연이 맺어지는 걸까. 제도는 개선된다는데 왜 억울한 사람은 더 느는 걸까. 그래서 팔자타령이 나오는 거겠지. 그래서 타고난 복이 무서운 거겠지.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의 팔자라는 것과 타고난 복이라는 게 무겁게 또 무섭게 가슴에 얹힌다. 직접 그분들을 내 눈으로 봬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커진다. 값싼 동정심인지 경망한 호기심인지 따져보지도 않고 동석한 사람들과 동반할 약속을 해버린다. 이튿날, 간호사 두 분과 동행을 했다. 한적한 마을 어귀에 차를 세우고 몇 걸음 떼지 않았는데 여기저기에서 인사를 건넨다. 대문 앞 쪽의자에 앉아 있던 어르신(남승원 :93세) 한분이 반색을 하고 마중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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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민들레 : </font>할아버지, 오늘은 여러 사람이 같이 왔어요. 할아버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같이 오신 거예요. 괜찮죠?
<font color=green>남승원 : </font>그럼그럼, 괜찮고 말고. 그나저나 이게 얼마 만에 온 거야? 두 달이 넘었잖아. 내가 군청에다 전화도 여러 번 했어. 왜 우리 집에 안 오냐구.
<font color=green>민들레 : </font>갈 데가 많아서 그래요. 이제 자주 올게요. 혈압부터 잴게요.</b>

어르신이 소매를 걷고 혈압측정 받을 차례를 한다. 오른 손의 동작이 매우 부자연스럽다. 원래 장애가 있는 건지 아니면 언제 어떻게 다치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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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손이 좀 불편해 보이시네요.
<font color=green>남승원 :</font> 아, 이거. 돌팔이 의사한테 당해서 이런 거예요.
<font color=green>안병욱 : </font>어허, 안 그래도 불편하신 데 그런 일까지 있었네요.
<font color=green>남승원 : </font>팔뚝에 작은 혹이 생겨서 읍내 병원에 갔는데, 아따, 마취도 안하고 진통제도 안 주고 그냥 생살을 건드리대. 내가 아프다고 펄쩍 뛰니까 지들끼리 뭐라뭐라 그러더니 치료를 하더라구. 그러구나서 퇴원했는데 그때부터 여기 손가락 세 개가 꼼짝도 않지 뭐예요? 큰 병원에 갔더니 도대체 어떤 의사가 이렇게 치료를 해놨냐구 되러 나한테 화를 내면서 이젠 어떻게든 고칠 방법이 없다고 그러더만요. 잘못 되면 손목을 잘라내야 하니까 손 안 다치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내가 그래서 읍내 그 병원을 찾아갔지. 첨에는 지들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우기더니 내가 고발하겠다고 나섰더니 그제서야 방법을 찾아보자 그러더만. 그게 또 말만 그랬지 하나도 책임을 안 지려고만 들대요. 그래서 고소장 써서 찾아가서 네들 맘대로 해라, 나는 이 길로 법원에 가겠다 해놓고는 집에 왔죠. 그 다음부턴 전화에 불이 나대요. 그래서 자전거 끌고 또 찾아갔죠. 그랬더니, 담당의사가 울면서 싹싹 빌고 원장도 무릎 꿇고 싹싹 빌더만요. 에이, 어차피 병신된 거 이 사람들말대로 좋게 타협을 하자 마음먹고 도대체 합의금은 얼마나 줄 생각이냐 물었더니, 기가 막혀서 글쎄 50만원을 주겠다는 거예요. 내가 뒤도 안보고 집에 오니까 이번에는 문턱이 닳도록 쫓아오더만요. 한참 뜸 들이고 오만 잡스러운 짓을 다하다가 결국 2천만원에 합의를 보자고 나오더만요. 10년 전에 그 돈 받아서 여태 파먹고 사는 겁니다.
<font color=green>나리꽃 :</font>  요즘도 양파 자주 드시죠? 그게 고혈압에는 아주 좋은 거니까 꼭 챙겨 드세요.
<font color=green>남승원 :</font>  그럼그럼, 내가 팔자가 늘어진 놈 하나를 친구로 두고 있는데 그놈한테 말했더니 양파즙을 잔뜩 사다줬어. 그래서 매일 먹고 있지. 여보, 기자 양반. 여기 간호사들 좀 자주 오게 높은 데 말 좀 해주고 신문에도 크게 나오게 해주오. 내가 기도할 때마다 여기 간호사들 우리 집에 자주 오게 해달라고 빌고 그래. 내가 사는 낙이라곤 여기 이 사람들 보는 거밖에 없어. 올 때마다 한 번도 그냥 온 적이 없어. 뭐래도 한 봉다리 사들고 오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딸내미 같은데 원 자주 볼 수가 있어야지.</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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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이 울음반 웃음반이다. 민들레와 나리꽃은 손도 바쁘고 입도 바쁘게 어르신의 육신을 챙기고 어르신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헤어지는 데 마치 이산가족 같다. 인근에 사는 유춘화 할머니(85세)는 사정이 더 딱했다. 2남 1녀를 슬하에 두었으나 모두 생활이 말이 아니란다. 부모 봉양은 기대도 할 수 없는데, 같이 사는 막내아들은 고지혈증과 허리디스크로 일을 할 수가 없다. 노구를 이끌고 살림을 도맡는데 최근에는 천식이 심해져 입원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고도 다시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집근처에 맹지를 소유하고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도 안 되고, 헐값으로 땅 내놓은 지 오래지만 거저 먹으러드는 작자들 말고는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단다. 주머니 톡톡 털어 손에 쥐어드렸더니 필자 얼굴 한번 보고 하늘 한번 올려보기를 여러 번 하시더니 끝내 굵은 눈물을 떨구고 만다. 세전 월급은 150만원 가량인데 뭐라도 한 봉다리 사들고 찾아야 하는 집은 지천인 방문간호사의 입장이 능히 짐작이 된다. 

반나절 동행이지만 자신하고 말할 수 있다. 양평의 방문간호사들은 양평의 헐벗은 사람들의 애틋한 자식이고, 든든한 보호자고, 참된 벗이다. 헐벗은 사람들이 애틋한 자식 든든한 보호자 참된 벗을 잃지 않도록, 방문간호사가 애틋한 자식 든든한 보호자 참된 벗의 역할을 마음껏 행할 수 있도록 양평의 이름으로 보장해야한다. 이들이 원하는 건 지극히 소박하다. 내 집에 찾아오는 방문간호사가 낯선 이로 바뀌지 않는 것과 내가 열심히 하는 동안에는 내 직업이 유지될 수 있는 게 전부다. 양평의 심장이 얼어붙지 않았다면, 양평에 정의가 살아 있다면, 양평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의당 이 소박한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말 한 마디가 길게 남는다.
<b>“우리가 찾아가는 집집마다 슬픔이 고여 있긴 하지만 가슴 벅찬 보람도 같이 숨어 있어요. 매일매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어깨에 올려놓는 분들이지만 매일매일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보람을 선물하는 것도 그 분들이에요.” 
 

YPN뉴스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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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 하네님의 댓글

찡! 하네 작성일

열악한 근무조건임에도 우리 모두의 짐을 대신해 덜어주고 계신 간호사님들에게 진정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평소 모든 봉사활동이 형식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저 자신이 부끄럽게도 생각되는군요.. 간호사님들이야말로 이 사회를 밝혀주는 진정한 빛과 소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도 마음이나마 항상 감사하며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간호사님들 꼭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주민님의 댓글

주민 작성일

잔잔한 마음입니다
저도 이웃에 오셔서 어려운 분들에게 가족보다 더 소중하게 모든것
관리해주시는것 보았고 들었습니다.
우리지역에는 이렇게 헌신적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도 나누고,희망을 주시고 계시는 방문간호사님들 !
양평군민의 한사람으로 존경합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시는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우리주변에 어렵고 힘든 분들을 위해서 계속해서 좋은일 많이 해주시기를 빕니다
사랑합니다.^^^

눈물님의 댓글

눈물 작성일

아이 눈물나네요
마음도 찡하고....
안병욱대표님!
인터뷰를 이렇게 길게 쓰신건 처음인것 같네요
좋은일 .우리가 모르는일 앞으로도 찾아서 많이 올려주세요!
목소리만  크게 내는 우리사회에서
이렇게 소리없이 좋은일 하시는 분들을 많이 많이 찾아서
글로 올려주세요!

정의님의 댓글

정의 작성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라면 그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더욱 소중할것이다.  그렇다면 그 들에 대한 처우가 대폭 개선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그 들이 비정규직!이라니 말도 안된다.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자식들도 돌보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그 분들에게 자식이 되고  친구가 되고 보호자 역할을 한다는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그 들이 안심하고 일에만 전념할수 있는 근무여건을 만들어 조야한다. 많은 외롭고 헐벗은 이들이 따뜻한 정을 이어가며 살수있도록 무엇보다 우선해서 간호사분들을 정규직화 해야한다. 문제가 예산문제라면 핑게로 받아들일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명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거늘.....

김상정님의 댓글

김상정 작성일

좋은 기사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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