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할 땐 반말이더니, 칼국수 하고부터는 존댓말이에요.- 양평칼국수 배달직원 김 선 종
페이지 정보
본문
짜장면 할 땐 반말이더니, 칼국수 하고부터는 존댓말이에요.- 양평칼국수 배달직원 김 선 종
전원생활은 도시민의 로망이다. 요즘은 한풀 꺾였지만, 양평의 가팔랐던 인구증가율 역시 전원생활에 기초하고 있다. 도시민이 시골에 새로운 주거지를 선택할 때 여러 가지 판단기준이 있는데, 그 가운데 ‘짜장면이 배달되느냐 안 되느냐’도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한다. 즉 짜장면이 배달될 정도의 거리는 최소한의 편의시설이 가능한 지역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편의시설보다는 때 묻지 않은 자연과 호젓함이 보장되는 지역으로 구분 짓는 게 보통이다.
‘배달’은 그만큼 우리 실생활과 밀접하다. 거리에 나서면, 택배차량에서부터 온갖 종류의 배달용 운송수단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가장 익숙하고 친숙한 풍경은 속칭 ‘철가방’으로 불리는 은색 양철통을 꽁무니에 실은 오토바이다. 몇 십년 눌러 살다보니,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사람들도 대게는 낯익은 얼굴들이다. 특히 10년 넘게, 종종 마주치는 김선종씨(51세 : 양평칼국수 배달직원)는 옆집사람과도 같다. 그런데도, 통성명은 인터뷰 직전에야 나눴다. 만날 급히 왔다가 급히 가서 인사 나눌 시간이 없었다, 는 변명에 불과하다. 그렇게 오래 만나왔으면 적어도 이름 석 자는 서로 알아야 하지 않았던가. 반성할 일만 늘어서 큰일이다. 통성명을 하고나니, 노상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데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부터 찾아든다.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오토바이를 타는 시간이 하루 평균 얼마나 되시는 거 같습니까?</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저녁8시 30분에 퇴근하니까, 종일 오토바이 위에 사는 거 같아요. 아참, 아침 11시 3,40분까지는 식당 앞 청소나 허드렛일을 하니까, 시간으로 따지면 한 11시간쯤 되려나?</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늘 분주하게 도로를 달리실 텐데, 특히 배달주문이 집중되는 시간에는 더 바삐 움직이셔야 할 테고, 그만큼 위험이 뒤따르지 않겠습니까? 그간 큰 사고를 당하시지는 않았는지요?</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조심을 하느라고 하는 데도 자잘한 접촉사고가 가끔 나요. 그렇지만 병원에 입원할 만큼 다친 적은 없어요. 큰돈 든 적도 별로 없고.</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그만하시길 정말 다행이군요. 한 번에 싣고 다니는 분량이 가장 많을 때에는 몇 인분이나 되나요?</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오토바이가 적으니까 많이 싣지는 못 해요. 또 여러 군데 주문을 한꺼번에 배달하다보면 늦게 가는 데는 면발이 불어서 우리 가게에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아주 근처가 아니면 한 군데씩만 다녀요.</b>
은근히 자기네 가게 선전까지 곁들이는 센스 좀 보소. 불은 면발보다 더 정 떨어지는 건 그놈의 플라스틱 1회용 그릇이다. 중상자 붕대 감기듯 칭칭 동여맨 랩도 매한가지다. 목련꽃 그려진 양은접시에 뜨끈뜨끈한 찌게에 무럭무럭 김 오르는 밥사발을 보자기에 덮어 머리에 이고 오던 예전의 밥집 배달이 그리워진다. 어쩌면 배부른 회상일 게다. 사람사이의 정은 사라지고 편리만 남은 게 어디 배달문화 뿐이랴.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배달업종에 종사하신 지가 얼마나 되셨나요?</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버스터미널 그만 둔 지가 10년이니까 그 정도 된 거 같네요. 처음에 그린반점, 희래등, 번개반점 그리고 여기 양평칼국수에서 일한 지가 벌써 한참이에요. </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이제 생각이 납니다. 옛날에 버스터미널에서 자주 봤던 기억이 나네요. 거긴 왜 그만 두시고? 배달 일이 더 힘들지 않나요?</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일이야 버스터미널이 더 편하긴 했죠. 근데, 사람들한테 시달리는 게 너무 징그럽더라구요. 버스가 제 시간에 안 오면 안 온다고 난리, 늦게 와놓고 왜 벌써 출발시켰냐고 시비, 어휴, 진짜 피 말라요. 잘못한 것도 없이 남들한테 욕먹는 거요. 것다가 그때 제 직속상관 하나가 무진장 고롭혔어요. 쉬는 날 쉬는 데도 징징징, 출근시간 30분 전에 나와도 늦게 왔다고 징징징, 하여튼 볼 때마다 징징거려서 에라이, 이 짓 말고 먹고 살길이 없겠냐 작심하고 때려 쳤죠. 지금도 거기 그만 둔 거 후회는 안 해요. 사람이 마음이 편해야지... </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지금 하고 계신 직업의 대표적인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들라면?</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나쁜 점은 하나도 없어요. 주방에서 칼국수 나오면 주문한 그릇 수대로 챙겨서 쌩 하니 갖다 주면 아무도 뭐라 그럴 사람 없잖아요? 제가 배달통 들고 사무실이고 당구장이고 들어가면 다들 좋아하세요. 배고팠다가 나만 보면 환하게 웃으면서 반가워하는 거 정말 기분 좋거든요. 그릇 다시 찾아올 때도 기분 좋아요. 그릇이 싹 비워져 있거든요, 그냥 그런 게 다 기분 좋아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요즘은 소비자들의 인식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근무 중에 불쾌한 경우가 간혹 있으실 거 같습니다만.</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거의 드물어요. 옛날에 짜장면 할 때랑은 천지 차이에요. 짜장면 할 때는, 식사 왔습니다, 그러면 대게, 짱께 왔냐? 저기다 놔, 이랬는데, 칼국수는, 식사 왔습니다, 그러면 거의가, 저기다 놓아주세요, 그래요. 먼저 번에 제가 집안에 일이 있어서 후배한테 며칠 일을 대신 해달라고 한 적이 있는데 후배가 그러대요. 형, 칼국수는 할 만해요. 반말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던데요, 그러더라구요. 짜장면하고 칼국수는 사람대접이 달라요.</b>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뜨끔하다. 배고플 때 음식 갖다 준 건 똑같은데, 누구한테는 반말이고 누구한테는 존댓말을 쓰는 이 기묘한 차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저도 모르게 쓰고 있는 색안경 탓인 듯도 싶고, 권력기관을 방문할 때는 입구에서부터 몸가짐을 바로잡는 괜한 주눅과 닮은꼴인 듯싶기도 하다. 어느 것에 가깝든 참 못난 꼴이다. 초면에 반말을 들어도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는 관계는 청산되어야 한다. 갑과 을의 관계개선이라는 게 별건가. 나한테 기분 나쁜 일은 너한테도 기분 나쁜 일이니 서로 그러지 말자, 가 핵심 아니겠는가.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한 달 수입이 궁금합니다. </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쉬는 시간도 많고, 일이 편해요. 주문하는 손님들도 전부 아는 사람들이고, 오토바이 타고 왔다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이고. 한가하면 좀 그래요. 바빠야지, 월급 받는 게 부담스럽지 않잖아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가족 구성이 어떻게 되십니까?</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둘이 나와 살아요. 요즘 장모님이 와 계시는 데, 곧 들어가실 거예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저저번달인가, 여성회관에서 올린 합동결혼식에 저도 갔거든요. 부인이 미인이시던데, 한국여자와 베트남여자의 문화적 차이랄까.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꼽아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뭐, 특별히 딴 나라 사람이란 생각은 안 들어요. 몇 년 같이 지내다보니 서로 대화하는 데 큰 문제도 없고, 아, 돈을 무척 아껴 써요. 물건도 되게 아끼고. 뭐하나 허투루 쓰는 게 없어요. 진짜 알뜰하고 검소해요. 모르겠어요, 못사는 나라에서 커서 그런가, 여하튼 천원짜리 한 장 쓰는 것도 바들바들해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어떻게 인연이 되셨는지?</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친구 중에 하나도 저처럼 가진 거 하나 없는 노총각이었는데, 어느 날 번갯불에 콩 궈먹듯이 장가를 가더라구요. 그 친구한테 물어물어 이래저래 베트남까지 갔죠. 여러 여자들을 봤는데, 솔직히 집사람보다 더 젊고 이쁜 여자도 많았지만, 집사람 딱 보자마자, 이 여자가 내 여자다, 이런 생각이 팍 들더라구요. 집사람도 별로 싫은 티를 내지 않고, 그래서 2010년 8월에 베트남에서 결혼했어요. 집사람은 그 다음 해 3월에 들어오고. 거기서 결혼식 올렸으니까 한국에서 또 할 필요가 있나, 했는데 집사람이 여성회관에 계신 분들과 안면을 트면서 지내다가 합동결혼식까지 하게 된 거죠. </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어때요? 처갓집에는 이따금 가 보시는지 궁금합니다.</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1년에 한 번씩만 가도 좋겠는데, 결혼하고 인사하러 한번 가고, 작년에 한번 가서 보름 묵었고. 장인어른이 안 계세요. 제가 장모님을 모셨으면 좋겠는데, 제 형편도 그저 그렇고, 또 장모님도 거기서 나름대로 살아가시는 방식이 있으니까, 그냥 이렇게 헤어져 사네요. 집사람은 말은 잘 안 해도 장모님 생각을 끔찍이 하는 거 같거든요. 집사람이 지금 어린이집 주방보조로 일하는데 월급이 백오십만원이에요. 사우나 가는 걸 좋아해서 거기 말고는 딴 데 별로 돈 안 쓰고 모으는 눈친데 그냥 모르는 척해요.
근데, 제가 보험을 쓸데없이 많이 들어놨어요. 월급 타면 절반 정도가 빠져나가는 거 같아요. 팍 줄여보려구요. 결혼하기 전에는 괜히 사는 게 너무 불안해서, 누가 말만하면 보험을 들었어요. 그랬는데, 요즘은 사는 게 별로 겁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꼭 있어야 하는 보험 빼고는 다 없애버릴려구요. 더 차근차근 모아서, 저희 어머님도 더 잘 챙기고 장모님도 더 잘 챙기고 제 집사람도 더 잘 챙겨주고 싶거든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강상면에서 태어나셨다고 들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간추려 보신다면?</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뭐, 그냥 남들처럼 살았죠. 화양리에서 3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나서 어릴 때는 노느라 정신 없었고 좀 나이 먹고나서는 먹고사느라 정신 없고 그랬죠, 뭐. 어쩌다 보니까,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어요. 공부에 취미도 없었고. 남들 중학교 들어갈 쯤부터는 양평극장 근처 인쇄소에서 일했죠. 그땐 납을 쓰는 일이 많았거든요. 몸에도 안 좋고 냄새도 싫고... 그래도 몇 년 꾸준히 다녔어요. 그러다가 버스터미널로 갔고... 대충 이래요. 참, 그때 인쇄소 사장님 돌아가셨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어요. 서로 왕래가 없다보니... 참 저한테 잘해주신 분이었는데.</b>
김선종씨는 다른 질문은 따박따박 대꾸도 잘하면서, 수입에 대해서는 딴청만 부린다. 필자가 세무서에서 파견나온 사람도 아닌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풍문으로 듣기에는 까딱하면 업주보다 배달직원 수입이 더 낫기 십상이라고 한다. 하긴, 요즘 같이 금리는 바닥을 기고 사업은 말아먹기 딱 좋은 시절에는 월급쟁이가 제일 신관 편한 듯하다. 필자도 누가 달달이 월급 좀 챙겨주면 소원이 없겠다.
김선종씨는 시선이 약간 불안정하다. 주저하다가 이유를 물으니 어려서 약을 잘못 먹어서란다. 돌배기도 안됐을 때 감기가 심하게 걸렸는데, 주변에 누가 어른 먹는 약을 먹여서란다. 순간의 부주의가 한 사람의 인생 내내 흠집으로 남아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얼마나 살얼음판 같은가.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을 떠나는 시간동안 살얼음판 같은 일을 얼마나 많이 겪게 되는가. 성당에 성모마리아든, 교회에 예수님이든, 절간에 부처님이든 아무나 붙들고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한편으론 못된 버르장머리가 슬며시 고개를 쳐든다. 불란서의 어느 철학자의 “인간은 수많은 신을 만들어냈지만, 수많은 신들은 단 한명의 인간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싸가지 없는 말귀가 떠오른다.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요즘 지역경제가 어렵다고들 입을 모으는데, 현장에서 보는 요식업의 형편은 좀 어떤가요?</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손님이 많이 줄었어요. 우리 가게만 그런 게 아니고 딴 집들도 다 그런가 봐요. 얼마 전까지 만해도 점심시간 근방으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요즘은 끽해야 심심찮을 정도에요. 왔다갔다 하면서 보면, 도시락 싸오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고, 군청 구내식당 가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어요. 접때 보니까, 일반인은 12시 20분 이후에만 들어오라고 군청 구내식당에 써 붙여놨더라구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지금 양평읍에서 배달 직종에 종사하고 계신 분이 몇 분이나 되나요?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대략 짐작은 하실 듯도 한데?</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한 20명 정도? 아니다, 15명에서 18명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거 같아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친목회나 모임 같은 게 있나요? </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아뇨, 서로 바쁜 데 따로 시간 내서 만날 게 뭐 있나요? 그냥 오다가다 마주치면 손 흔들어주고 웃어주고 그러면 되는 거죠.</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고객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한 마디 해주시죠.</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따른 집도 많은데 우리 가게에다 주문해줘서 고마운데, 더 뭘 바라겠어요? 뭐,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 그런 거 없어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얘나 하나 빨리 생겼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b>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종 친 지 오래다. 한 달에 몇 백 하는 영어유치원에 3살배기 아이 못 집어넣어서 안달하는 부류와 제집아이 끼니 챙기는 일도 버거운 부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줄어드는 건, 얘들 학원비에 허리띠 졸라매는 중산층뿐이다. 중산층이 많아야 나라가 평화로운 건 국가와 시대가 따로 없다. 가진 자는 더욱 탐욕스러워지고 없는 자는 점점 쪼그라드는 세월이다. 둘 다 꿈을 잃어버린 건 마찬가지다.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꿈을 지닐 수 있는 삶’을 되찾는 일이다. 주경야독과 자수성가가 가능했던 세상을 되찾는 일이다. 김선종씨와 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과 계획을 지닐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어떤 방법을 쓰든, 애저녁에 희망의 싹을 잘라버리는 지금 이 시대, ‘꿈의 불임시대’ 만큼은 기필코 마감해야 한다.
‘배달’은 그만큼 우리 실생활과 밀접하다. 거리에 나서면, 택배차량에서부터 온갖 종류의 배달용 운송수단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가장 익숙하고 친숙한 풍경은 속칭 ‘철가방’으로 불리는 은색 양철통을 꽁무니에 실은 오토바이다. 몇 십년 눌러 살다보니,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사람들도 대게는 낯익은 얼굴들이다. 특히 10년 넘게, 종종 마주치는 김선종씨(51세 : 양평칼국수 배달직원)는 옆집사람과도 같다. 그런데도, 통성명은 인터뷰 직전에야 나눴다. 만날 급히 왔다가 급히 가서 인사 나눌 시간이 없었다, 는 변명에 불과하다. 그렇게 오래 만나왔으면 적어도 이름 석 자는 서로 알아야 하지 않았던가. 반성할 일만 늘어서 큰일이다. 통성명을 하고나니, 노상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데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부터 찾아든다.
![]() |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오토바이를 타는 시간이 하루 평균 얼마나 되시는 거 같습니까?</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저녁8시 30분에 퇴근하니까, 종일 오토바이 위에 사는 거 같아요. 아참, 아침 11시 3,40분까지는 식당 앞 청소나 허드렛일을 하니까, 시간으로 따지면 한 11시간쯤 되려나?</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늘 분주하게 도로를 달리실 텐데, 특히 배달주문이 집중되는 시간에는 더 바삐 움직이셔야 할 테고, 그만큼 위험이 뒤따르지 않겠습니까? 그간 큰 사고를 당하시지는 않았는지요?</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조심을 하느라고 하는 데도 자잘한 접촉사고가 가끔 나요. 그렇지만 병원에 입원할 만큼 다친 적은 없어요. 큰돈 든 적도 별로 없고.</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그만하시길 정말 다행이군요. 한 번에 싣고 다니는 분량이 가장 많을 때에는 몇 인분이나 되나요?</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오토바이가 적으니까 많이 싣지는 못 해요. 또 여러 군데 주문을 한꺼번에 배달하다보면 늦게 가는 데는 면발이 불어서 우리 가게에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아주 근처가 아니면 한 군데씩만 다녀요.</b>
은근히 자기네 가게 선전까지 곁들이는 센스 좀 보소. 불은 면발보다 더 정 떨어지는 건 그놈의 플라스틱 1회용 그릇이다. 중상자 붕대 감기듯 칭칭 동여맨 랩도 매한가지다. 목련꽃 그려진 양은접시에 뜨끈뜨끈한 찌게에 무럭무럭 김 오르는 밥사발을 보자기에 덮어 머리에 이고 오던 예전의 밥집 배달이 그리워진다. 어쩌면 배부른 회상일 게다. 사람사이의 정은 사라지고 편리만 남은 게 어디 배달문화 뿐이랴.
![]() |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버스터미널 그만 둔 지가 10년이니까 그 정도 된 거 같네요. 처음에 그린반점, 희래등, 번개반점 그리고 여기 양평칼국수에서 일한 지가 벌써 한참이에요. </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이제 생각이 납니다. 옛날에 버스터미널에서 자주 봤던 기억이 나네요. 거긴 왜 그만 두시고? 배달 일이 더 힘들지 않나요?</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일이야 버스터미널이 더 편하긴 했죠. 근데, 사람들한테 시달리는 게 너무 징그럽더라구요. 버스가 제 시간에 안 오면 안 온다고 난리, 늦게 와놓고 왜 벌써 출발시켰냐고 시비, 어휴, 진짜 피 말라요. 잘못한 것도 없이 남들한테 욕먹는 거요. 것다가 그때 제 직속상관 하나가 무진장 고롭혔어요. 쉬는 날 쉬는 데도 징징징, 출근시간 30분 전에 나와도 늦게 왔다고 징징징, 하여튼 볼 때마다 징징거려서 에라이, 이 짓 말고 먹고 살길이 없겠냐 작심하고 때려 쳤죠. 지금도 거기 그만 둔 거 후회는 안 해요. 사람이 마음이 편해야지... </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지금 하고 계신 직업의 대표적인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들라면?</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나쁜 점은 하나도 없어요. 주방에서 칼국수 나오면 주문한 그릇 수대로 챙겨서 쌩 하니 갖다 주면 아무도 뭐라 그럴 사람 없잖아요? 제가 배달통 들고 사무실이고 당구장이고 들어가면 다들 좋아하세요. 배고팠다가 나만 보면 환하게 웃으면서 반가워하는 거 정말 기분 좋거든요. 그릇 다시 찾아올 때도 기분 좋아요. 그릇이 싹 비워져 있거든요, 그냥 그런 게 다 기분 좋아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요즘은 소비자들의 인식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근무 중에 불쾌한 경우가 간혹 있으실 거 같습니다만.</b>
![]() |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뜨끔하다. 배고플 때 음식 갖다 준 건 똑같은데, 누구한테는 반말이고 누구한테는 존댓말을 쓰는 이 기묘한 차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저도 모르게 쓰고 있는 색안경 탓인 듯도 싶고, 권력기관을 방문할 때는 입구에서부터 몸가짐을 바로잡는 괜한 주눅과 닮은꼴인 듯싶기도 하다. 어느 것에 가깝든 참 못난 꼴이다. 초면에 반말을 들어도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는 관계는 청산되어야 한다. 갑과 을의 관계개선이라는 게 별건가. 나한테 기분 나쁜 일은 너한테도 기분 나쁜 일이니 서로 그러지 말자, 가 핵심 아니겠는가.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한 달 수입이 궁금합니다. </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쉬는 시간도 많고, 일이 편해요. 주문하는 손님들도 전부 아는 사람들이고, 오토바이 타고 왔다갔다 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이고. 한가하면 좀 그래요. 바빠야지, 월급 받는 게 부담스럽지 않잖아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가족 구성이 어떻게 되십니까?</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둘이 나와 살아요. 요즘 장모님이 와 계시는 데, 곧 들어가실 거예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저저번달인가, 여성회관에서 올린 합동결혼식에 저도 갔거든요. 부인이 미인이시던데, 한국여자와 베트남여자의 문화적 차이랄까.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꼽아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b>
![]() |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어떻게 인연이 되셨는지?</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친구 중에 하나도 저처럼 가진 거 하나 없는 노총각이었는데, 어느 날 번갯불에 콩 궈먹듯이 장가를 가더라구요. 그 친구한테 물어물어 이래저래 베트남까지 갔죠. 여러 여자들을 봤는데, 솔직히 집사람보다 더 젊고 이쁜 여자도 많았지만, 집사람 딱 보자마자, 이 여자가 내 여자다, 이런 생각이 팍 들더라구요. 집사람도 별로 싫은 티를 내지 않고, 그래서 2010년 8월에 베트남에서 결혼했어요. 집사람은 그 다음 해 3월에 들어오고. 거기서 결혼식 올렸으니까 한국에서 또 할 필요가 있나, 했는데 집사람이 여성회관에 계신 분들과 안면을 트면서 지내다가 합동결혼식까지 하게 된 거죠. </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어때요? 처갓집에는 이따금 가 보시는지 궁금합니다.</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1년에 한 번씩만 가도 좋겠는데, 결혼하고 인사하러 한번 가고, 작년에 한번 가서 보름 묵었고. 장인어른이 안 계세요. 제가 장모님을 모셨으면 좋겠는데, 제 형편도 그저 그렇고, 또 장모님도 거기서 나름대로 살아가시는 방식이 있으니까, 그냥 이렇게 헤어져 사네요. 집사람은 말은 잘 안 해도 장모님 생각을 끔찍이 하는 거 같거든요. 집사람이 지금 어린이집 주방보조로 일하는데 월급이 백오십만원이에요. 사우나 가는 걸 좋아해서 거기 말고는 딴 데 별로 돈 안 쓰고 모으는 눈친데 그냥 모르는 척해요.
근데, 제가 보험을 쓸데없이 많이 들어놨어요. 월급 타면 절반 정도가 빠져나가는 거 같아요. 팍 줄여보려구요. 결혼하기 전에는 괜히 사는 게 너무 불안해서, 누가 말만하면 보험을 들었어요. 그랬는데, 요즘은 사는 게 별로 겁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꼭 있어야 하는 보험 빼고는 다 없애버릴려구요. 더 차근차근 모아서, 저희 어머님도 더 잘 챙기고 장모님도 더 잘 챙기고 제 집사람도 더 잘 챙겨주고 싶거든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강상면에서 태어나셨다고 들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간추려 보신다면?</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뭐, 그냥 남들처럼 살았죠. 화양리에서 3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나서 어릴 때는 노느라 정신 없었고 좀 나이 먹고나서는 먹고사느라 정신 없고 그랬죠, 뭐. 어쩌다 보니까,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어요. 공부에 취미도 없었고. 남들 중학교 들어갈 쯤부터는 양평극장 근처 인쇄소에서 일했죠. 그땐 납을 쓰는 일이 많았거든요. 몸에도 안 좋고 냄새도 싫고... 그래도 몇 년 꾸준히 다녔어요. 그러다가 버스터미널로 갔고... 대충 이래요. 참, 그때 인쇄소 사장님 돌아가셨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어요. 서로 왕래가 없다보니... 참 저한테 잘해주신 분이었는데.</b>
김선종씨는 다른 질문은 따박따박 대꾸도 잘하면서, 수입에 대해서는 딴청만 부린다. 필자가 세무서에서 파견나온 사람도 아닌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풍문으로 듣기에는 까딱하면 업주보다 배달직원 수입이 더 낫기 십상이라고 한다. 하긴, 요즘 같이 금리는 바닥을 기고 사업은 말아먹기 딱 좋은 시절에는 월급쟁이가 제일 신관 편한 듯하다. 필자도 누가 달달이 월급 좀 챙겨주면 소원이 없겠다.
![]() |
김선종씨는 시선이 약간 불안정하다. 주저하다가 이유를 물으니 어려서 약을 잘못 먹어서란다. 돌배기도 안됐을 때 감기가 심하게 걸렸는데, 주변에 누가 어른 먹는 약을 먹여서란다. 순간의 부주의가 한 사람의 인생 내내 흠집으로 남아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얼마나 살얼음판 같은가.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을 떠나는 시간동안 살얼음판 같은 일을 얼마나 많이 겪게 되는가. 성당에 성모마리아든, 교회에 예수님이든, 절간에 부처님이든 아무나 붙들고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한편으론 못된 버르장머리가 슬며시 고개를 쳐든다. 불란서의 어느 철학자의 “인간은 수많은 신을 만들어냈지만, 수많은 신들은 단 한명의 인간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싸가지 없는 말귀가 떠오른다.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요즘 지역경제가 어렵다고들 입을 모으는데, 현장에서 보는 요식업의 형편은 좀 어떤가요?</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손님이 많이 줄었어요. 우리 가게만 그런 게 아니고 딴 집들도 다 그런가 봐요. 얼마 전까지 만해도 점심시간 근방으론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요즘은 끽해야 심심찮을 정도에요. 왔다갔다 하면서 보면, 도시락 싸오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고, 군청 구내식당 가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어요. 접때 보니까, 일반인은 12시 20분 이후에만 들어오라고 군청 구내식당에 써 붙여놨더라구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지금 양평읍에서 배달 직종에 종사하고 계신 분이 몇 분이나 되나요?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대략 짐작은 하실 듯도 한데?</b>
![]() |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한 20명 정도? 아니다, 15명에서 18명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거 같아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친목회나 모임 같은 게 있나요? </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아뇨, 서로 바쁜 데 따로 시간 내서 만날 게 뭐 있나요? 그냥 오다가다 마주치면 손 흔들어주고 웃어주고 그러면 되는 거죠.</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고객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한 마디 해주시죠.</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따른 집도 많은데 우리 가게에다 주문해줘서 고마운데, 더 뭘 바라겠어요? 뭐,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 그런 거 없어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b>
<b><font color=green>김선종:</font>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얘나 하나 빨리 생겼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b>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종 친 지 오래다. 한 달에 몇 백 하는 영어유치원에 3살배기 아이 못 집어넣어서 안달하는 부류와 제집아이 끼니 챙기는 일도 버거운 부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줄어드는 건, 얘들 학원비에 허리띠 졸라매는 중산층뿐이다. 중산층이 많아야 나라가 평화로운 건 국가와 시대가 따로 없다. 가진 자는 더욱 탐욕스러워지고 없는 자는 점점 쪼그라드는 세월이다. 둘 다 꿈을 잃어버린 건 마찬가지다.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꿈을 지닐 수 있는 삶’을 되찾는 일이다. 주경야독과 자수성가가 가능했던 세상을 되찾는 일이다. 김선종씨와 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과 계획을 지닐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어떤 방법을 쓰든, 애저녁에 희망의 싹을 잘라버리는 지금 이 시대, ‘꿈의 불임시대’ 만큼은 기필코 마감해야 한다.
YPN뉴스 (ypnnews@naver.com)
- 이전글“자식 넷의 태를 묻은 양평이지만 나는 아직도 이방인”-양평문화원장 장재찬 - 13.07.22
- 다음글봉사하는 날은 소풍가는 날 - 코레일 청룡봉사대 이신교 회장 13.04.08
![]() |
댓글목록
야생마님의 댓글
야생마 작성일극성스러이 더운 2013년의 여름이 김선종씨를 더 힘들게 하겠네요. 열심히 일해서 희망의 싹을 점점 키워 가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일하는 자가 희망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 분의 사랑도 잘 결실 맺어 이쁜 아가 재롱 보는 그 시간이 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박수박수님의 댓글
박수박수 작성일이 아저씨께서 우리 사무실에 자주 오십니다
ypn에서 만나뵈니까 진짜 반갑네요
참고로 전 한번도 반말한적 없어요^^;
김선종님도 양평에서 땀흘려 일하시는 전체 배달원님도
모두모두 화이링~!!
무분별한 광고 및 악성댓글을 차단하기위한 방침이오니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