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야, 그 소리 듣는 게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양평군새마을지회장 윤 광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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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야, 그 소리 듣는 게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양평군새마을지회장 윤 광 신-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로 시작되는 새마을노래는, 강약강약 쿵짝쿵짝이 계속되는 4분의 2박자다. 경쾌할 수밖에 없는 리듬인데도 악보에는 명랑하고 씩씩하게 부르라고 지정되어 있다. 이제는 거의 들을 기회가 없는데 어쩌다 우연히 듣게 되면 예전의 중독성이 되살아나 저도 모르게 손장단을 두드리기 마련이다. 강약강약 쿵짝쿵짝.
사람이 오른팔 왼팔을 흔들며 걸어가듯이, 새가 오른쪽 날개 왼쪽 날개를 저어 날아가듯이 인간세상은 좌익과 우익이 공존하며 진화해왔다. 오른팔 왼팔 그리고 오른쪽 날개 왼쪽 날개가 균형을 잃으면 넘어지고 추락하듯이 좌익과 우익의 균형이 깨지면 평화도 깨지곤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평화로운가? 좌익과 우익은 사라지고 좌빨과 우꼴만 기세등등한데.
이 시대 ‘새마을노래’의 감상평은 크게 양분될 듯하다.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가난을 극복한 대한민국을 대견하게 또 감사하게 여기는 한 축과, 군사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온갖 사회부조리가 여전한 대한민국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또 다른 한 축으로. ‘새마을운동’ 자체는 대한민국 근대화의 중요한 동력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지난 17일 군민회관에서 양평군새마을지도자대회가 열렸다. 지역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모였다. 지역사회의 그늘진 곳을 늘 챙기며 사는 사람들은 존경해야 마땅하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말이다.
2013년 말미에 윤광신 양평군새마을지회장을 만났다.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2013년 양평군민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때 늦은 질문이지만, 수상소감부터 먼저 듣고자 합니다.</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제게는 노벨상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고향이자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양평의 군민대상보다 더 훌륭하고 큰 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그 만한 자격이 있는가 부끄러운 면도 없지 않지만 솔직히 너무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더 조심하고 노력하면서 살아갈 각오입니다. 그 사람 괜찮아, 윤광신이 괜찮은 사람이야, 그게 꼭 듣고 싶은 말이자 내 인생의 목표입니다.</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군새마을지회장, 양평군문화원이사보다 더 친숙한 이미지가 개군할머니순대국집 주인입니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고생하는 요식업소가 많은데, 수십 년 동안 흔들림 없이 양평 대표 맛집으로 운영하시는 비결을 좀 밝혀주시지요.</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비결이랄 게 뭐 있겠습니까? 내 입에, 내 식구 입에 들어갈 먹거리 만든다, 는 생각만 지키고 장사합니다. 내 입 내 식구 입에 들어갈 거니까 아무래도 식재료구입에서부터 조리과정까지 잡스러운 수작은 부릴 수 없지 않겠어요? 그냥 맨 처음 문 열 때 했던 대로, 누가 자셔도 참 맛있다 그 소리 듣는 재미, 그 초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 아들녀석이 방이동 먹자골목에 분점을 냈으니 어머니부터 저 그러니까 3대에 이어지는 가업이니 제 나름대로는 정성을 다하고 있어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세간에서는 식당운영은 어머니와 부인이 하시고 윤회장님은 그저 팔자 좋은 사람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운영에도 직접 간여하고 계시나요?</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그참, 그게 사실 제일 억울한 부분이긴 해요. 그게 이렇고 저게 저렇다 시시콜콜 얘기하자니 우습고 말이죠. 요식업 하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눈에 보이는 부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성패를 좌우해요. 새벽부터 그날 요리할 식재료 점검부터 그날 끓인 순대국 맛까지 제 손 거치지 않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바깥 일 때문에 하루 종일 밖에서 살고는 있지만 사실 식당 연 밑천에서부터 지금까지 제 손으로 꾸려온 겁니다.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아는 사람한테 윤지회장님 소싯적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중학생 때부터 돈벌이에 나선 지독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너무 어려서부터 돈 버는 맛을 알아버린 게 지독한 사람이라면 뭐 그 말이 맞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땐가, 우리 앞집에 이도영씨라는 분이 살았는데 제가 그집 양계장, 그게 부리에 있었는데 거기서 일을 해줬어요. 학교만 파하면 쪼르르 달려가서 밤이 이슥하도록 잡일을 했는데 처음에는 놀이삼아 했어요. 근데, 전 그게 그렇게 재미있더라구요. 달걀이 병아리가 되고 병아리가 암탉이 돼서 또 알을 낳는 게, 또 그래서 돈이 되는 게 너무 신나더라구요. 6개월을 무보수로 일하다가 병아리는 넘고 닭은 덜 된 놈 100마리를 노임으로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105마리를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열 다섯 나이에 양계장을 꾸렸죠.
케이지 살 돈도 아깝고 그럴 돈도 없어서, 친구들하고 버드나무 꺾어다가 닭집을 만들었어요. 물 주는 통, 먹이 통, 또르르 계란 굴러가는 통까지 죄다 남의 양계장 보고 비슷하게 만들어냈죠. 그래도 제깐에는 성심을 다해서 105마리 가운데 딱 2마리만 잃고 103마리를 전부 길러냈죠. 말이 쉽지, 그 시절에 습도 70퍼센트에 온도 32도 이상 35도 이하를 유지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양계장 옆에 움막 같은 관리사 짓고 촛불 켜고 양계서적 닳도록 보면서 살았습니다.
근데, 이게 또 가만 보니 닭 키우는 일이 사료장사 배불려주는 일이더군요. 당시에는 영육사료 한 가지밖에 없었는데 가격이 엄청났어요. 양계서적을 보니 개구리가 그렇게 닭에게 좋답디다. 그때는 발에 채이는 게 개구리였지 않아요? 동네친구들 싹 풀었죠. 한 깡통에 200원씩 쳐주니 다들 신이 났죠. 거기다가 아카시아 칡넝쿨이며 이런 저런 좋다는 거 다 넣어서 모이를 만들어 먹이니 근방에선 저희 집 달걀이 굵고 실하기로는 최고였어요. 매부 좋고, 누이 좋고, 닭도 좋고, 저도 좋았죠.
당시 개군우체국장이 신영철선생이셨는데, 거기 통장에다 매일 돈 갖다 넣는 재미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그때, 장리쌀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거 아시죠? 한 가마 꾸어 가면 다음 추수 때 한 가마 반으로 갚던 거.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돈놀이지만 그땐 그게 없는 사람 도와주는 처신쯤으로 여겨지던 시절이라, 어머니가 권유하는대로 따랐죠. 솔직히 그렇게 돈 불린 게 지금 생각하면 좀 껄적지근합니다. </b>
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화폐보다 귀한 보물이었다. 보리 섞는 양이 곧 그 집안의 경제지표였다. 그랬는데 지금은 남아도는 게 쌀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미국에서 배 타고 온, 베트남에서 삼모작한 쌀 등등이 그득하다. 많다는 게 꼭 풍요로운 건 아닌 듯싶다. 남아도는 쌀 때문에 애끓는 농민이 어디 하나둘이랴.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돈도 크게 하셨다면서요?</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사람 욕심이 그렇더라구요. 처음에는 달걀 파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는데 점점 양에 차지를 않습디다. 지금처럼 자동화시스템으로 대량사육이 가능한 시절도 아니라 한계가 있었죠. 그래 궁리 끝에 돼지를 치자, 작심을 하게 됐어요. 이번에도 동네 또래들이 총출동했죠.
저기 파출소 뒤에 땅을 세내서는 거기다 블로크 돈사를 지었어요. 그때 블로크가 좀 비쌌습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제 손으로 직접 만들 요량을 냈죠. 책 사다 보면 다 방법이 나와 있어요. 한두 번 실패하고는 재료만 사다가 척척 블로크를 찍어냈죠.
모돈(母豚) 2마리로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움막 같은 관리사 하나 지어서는 거기서 먹고 자고 했죠. 밤이면 촛불 켜고 양돈서적 보면서 말이죠. 사료도 직접 만들었어요. 횡성 가서 떨이용 옥수수 사고, 인천 가서 어분 사고, 그때 군청에서 밀기울이 나왔는데 나중에 옥천면장을 하셨던 정춘모 선생이 많이 도와 주셨죠. 그때 도움 받은 분들 존함이 지금도 생생해요. 대동화물 하셨던 함영식 선생, 밀가루 방아 찧어주셨던 김학동 선생, 가축병원 하셨던 김희섭 선생. 전부 제겐 은인이시죠.
이런 은인들 덕분에 110마리까지 키워냈습니다. 제가 뜨거운 데에 손닿으면 찌찌직 살은 타도 아프지는 않아요. 그때 손에 밴 굳은 살 때문이죠. 물론 저도 죽자 살자 덤벼들었지만, 주변의 은인들 없었으면 택도 없는 일 아니겠어요? 세상이치가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거 아닙니까?</b>
어떤 사람의 것이든, 일대기를 직접 듣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빈손으로 악전고투 속에서 우뚝 일어서는 경험담은 사뭇 감동적이기도 하다. 윤지회장의 경험담 속에서는 모든 인물이 살아 있다. 이리 저리 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이름 석 자가 당사자의 머릿속에 콱 박혀 있어서다.
달걀을 받아내던 소년이 이문에 눈을 떠 닭을 키우고 돼지를 키우고 세상이치를 깨닫는다. 집안 형편이 유별나게 어렵지 않았음에도 한푼 두푼 여투어 목돈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버린다. 스스로가 성심을 다하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은인과도 같은 인연을 맺게 됨을 어린 나이에 체득하게 된다. 한편으론 이마빡에 피도 안 마른 나이에 지역사회의 지도층이 된다. 열여덟 나이에 양평축협 이사로 선임된다. 이사마다 목돈을 갹출해 다 기울어가던 축협을 살려낸다. 장년층도 힘에 겨웠던 목돈을, 짚 꾸러미에서 달걀 하나 꺼내듯 제 통장에서 빼내 희사한다.
미리 챙겨두었던, 새마을지회장 혹은 문화원이사 혹은 지역사회지도층인사를 겨냥한 질문은 뒷전으로 밀리고 자꾸 인간 윤광신에 대한 호기심이 앞선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돼 자퇴를 하고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는 대목에선 약간 고개가 갸우뚱했다. 그 나이에 너무 돈만 밝히는, 너무 되바라진 성장기가 아닌가 말이다.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그래도 그렇지 학교 작파하고 돈벌이에만 매달린 건 좀 그렇네요. 후회되지 않으세요?</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철이 없었던 거죠. 근데 다 또 그렇게 뚫어나갈 길이 나타나대요. 제가, 집 한 채 사고, 땅 좀 사고, 그리고 250만원 든 통장 어머니께 드리고 입대를 했습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더라고 제가 차트 글씨를 잘 썼거든요. 그래서 행정병으로 차출이 됐어요. 행정반에 가니까 전부 대졸이대요. 그래도 뭐 기 죽지 않고 제 할 일이 다했습니다.
짬밥 좀 먹고 나니 조수가 따라붙더라구요. 제가 그때 반장으로 있었는데, 그게 말이죠, 주로 하사병만 맡고 끽 해야 2,3개월이 고작이었는데, 저는 병(兵)이면서도 8개월을 맡았어요. 여튼, 그때 조수가 강명철이라고 서울대생이었어요. 그래 하루는 제가 툭 깨놓고 물어봤죠.
내가 이만저만해서 공부할 때를 놓쳤다,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 물었더니, 뭘 그런 걸 갖고 고민을 하느냐, 내가 사다주는 책만 파면 다 된다, 이러더니 다음 외출 때 책 수십 권을 구해들고 옵디다. 근 1년을 꼬박 팠습니다. 후다닥 밥 먹고 책 펼치고, 잠 잘 시간 줄여가며 책 펼치고 그랬습니다. 거기다, 서울대학교 학생을 개인가정교사로 뒀으니 그냥 뭐 책 속의 내용이 쏙쏙 머리에 들어옵디다.
그래서 스물일곱에 대입검정을 봤는데, 그땐 장가를 들고나서거든요, 집사람 대동하고 발표장에 갔죠. 수만 명에서 1300명 골라내는 시험이었는데 자신이 있었거든요. 적어도 500등 안에 들겠다싶어 집사람에게 자랑도 할겸해서 갔는데, 아 글쎄 58등으로 합격이 돼 있더라구요. 제 자랑은 아닙니다만.</b>
제 자랑이 아니긴, 제 자랑도 매우 심한 제 자랑이구만. 그래도 그리 오골거리지는 않는다. 때를 놓친 공부를 아주 늦기 전에 파고드는 모습이 가히 기특하지 않은가. 것보다 더 기특한 것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죽어라 파고드는 성실함이다. 필자의 아들녀석도 반만 닮았으면 좋겠다 부러워하다가 퍼뜩 정신이 든다. 나는 그 나이에 그리고 소년기에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던가.
윤광신지회장은 검정고시 9과목을 한 번에 합격한다.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하고, 형편 될 때마다 이런저런 대학원최고위과정을 수료한다. 정식학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여러 과정을 수료했지만, 방통대는 아직 졸업을 못했다. 왜 졸업 못했나 묻지는 않았다. 먹고사는 일이, 세상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지는 피차가 마차 아닌가.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지역사회활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새마을지회의 회장, 양평문화원의 이사를 맡고 계십니다. 두 단체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요약하신다면?</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다른 점부터 요약하자면, 문화원은 우리 양평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고, 새마을지회는 구습을 버리고 늘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통점은 두 단체 다 지역사회의 발전을 꾀하면서 지역주민의 삶을 좀 더 밝고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박근혜정부에서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주요국정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반면, 이러한 움직임을 과거로의 회귀, 직설적으로는 유신시대로의 복귀라고 평가절하 하는 여론도 있습니다. 이 시대에 새마을운동이 왜 새삼스럽게 부각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과거 군사시대가 일정부분 연계될 수는 있으나, 용어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새마을운동 관련 건수만 2만 2천 건입니다. 그간 6,70개국의 정상들이나 장관들이, 또 103개국 5만여명의 세계인이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왔습니다. 자기 나라에 접목해서 괄목할 성과를 얻은 나라가 한둘이 아닙니다. 외국에서는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의 토대로 분석평가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없지 않아서 새마을인의 한사람으로써 대단히 유감스럽고 섭섭합니다.
새마을운동은 특별난 누군가나 어느 계층만을 위한 게 아니거든요. 국민 모두가 더 발전하고 더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의식개혁 운동이며 또 몸으로 실천하는 운동입니다. 더욱이 박근혜정부가 주창한 제2새마을운동은 기존의 근면, 자조, 협동에서 나눔, 봉사, 배려가 더해졌습니다. 저는 이러한 새마을운동이야 말로 지금 이렇게 복잡하고 혼탁한 시대에 꼭 필요한 범군민적 운동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일 수 있겠으나 그간 새마을회원들의 선도적 역할이나 봉사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합니다. 특히 양평에서는 새마을지회회원들이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인적자원입니다.</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그 부분은 저도 적극 동의합니다. 그간 양평의 새마을지회는 이웃을 챙기는 ‘나눔과 봉사’를 꾸준히 실천하고 확산해오셨습니다. 나눔과 봉사의 의의랄까, 이러한 활동이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보십니까?</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제가 주변분들한테 늘 드리는 말씀이 있어요.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된장국처럼 구수하고 훈훈한 정이 넘치는 세상이다, 이렇게 당부합니다. 100퍼센트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회원이나 임원들은 양평 안에서 만큼은 남의 일을 남의 일로만은 보지 않아요. 어떡하든 힘닿는 한은 딱한 사람에게 온정을 전하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남을 생각하는 게 곧 나를 더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만큼이라도 사람 구실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뤄진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주변에 누군가 딱한 입장에 놓였을 때 내 일처럼 다가가면 그 사람 또한 어려운 고비를 벗어나면 또 주변에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따뜻한 마음씨가 돌고 돌면 그게 다 지역사회를 더 살기 좋은 데로 만들어내는 비결이 아니겠습니까?
지역의 문제점을 보는 눈도 좀 더 따뜻해져야 합니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물어뜯는 거만이 능사는 아니죠. 가령, 예를 들어 지방공사를 봅시다. 물론 잘못된 게 많죠. 그래도 없애버리자,하는 식의 접근은 곤란합니다. 무엇이 문제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부터 차근차근 살펴봐야죠.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지방선거 때만 되면, 자의반 타의반 선출직후보 물망에 오르내리고 계십니다. 내년 선거에 나설 계획이신지요?</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선출직이라는 게 내가 하고 싶다고 다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솔직히 요즘 생각 많이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마음을 먹고 내가 경기도의원직에 나서려고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고 있습니다. 예전에 군의원 할 때하고는 생각이 많이 달라요. 그때는 어깨에 힘 좀 넣어보고 싶은 욕심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되풀이되는 얘기지만 제 인생은 남의 도움으로 이어져 온 겁니다. 건방진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뒀고, 공부한 만큼 세상이치를 배웠고,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챙기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 정도면 분에 넘치는 삶이 아니겠어요?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 두 사람보다는 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더 나아가 양평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제 욕심의 전부입니다. 나만을 위해서 더 갖고 싶은 것도 이젠 없고, 내 식구들만 위해서 열심을 떨어야 할 형편도 이제는 벗어났습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 사람 괜찮아, 윤광신이 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야, 이 소리 듣는 게 제 목표의 전부입니다. </b>
거짓 없이, 말 그대로, 참 괜찮은 사람으로 세간의 평가 받는 일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만큼 괜찮은 사람이 또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모든 선거에서 ‘괜찮아 보이는 사람’에게 투표했지만 ‘괜찮은 선출직’은 참 보기 드문 게 현실이다. 윤광신지회장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대충 알고 있으나 보기 드문 ‘괜찮은 선출직’으로 평가 받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직 출마여부도 결정되지 않았을뿐더러, 어느 직종보다 뒷간 다녀오기 전후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직종이 선출직종이니까. 다만, 열심히 살아오고 주변을 살피는 눈을 지니고 있음은 선출직의 덕목 가운데 가장 근본임은 분명해 보인다.
올해도 연말 분위기는 초장부터 글러먹었다. 제 고모부를 며칠 간 줘패다가 불쑥 처형하는 북녘 땅 정권이 섬뜩하고, 기관총으로 갈기고 화염방사기로 불태웠다고 마치 처형장을 방청이나 한 것처럼 나발을 부는 남녘 땅 언론이 섬뜩하다. 청량리 오가는 전철과 기차의 배차간격이 점점 벌어져서 언짢고, 지지도는 바닥을 기는데 벌써부터 대권가도에 나서는 정치풍토가 심란하다.
이제 겨울로 접어들었으니 어느 세월에 봄이 오려나.
사람이 오른팔 왼팔을 흔들며 걸어가듯이, 새가 오른쪽 날개 왼쪽 날개를 저어 날아가듯이 인간세상은 좌익과 우익이 공존하며 진화해왔다. 오른팔 왼팔 그리고 오른쪽 날개 왼쪽 날개가 균형을 잃으면 넘어지고 추락하듯이 좌익과 우익의 균형이 깨지면 평화도 깨지곤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평화로운가? 좌익과 우익은 사라지고 좌빨과 우꼴만 기세등등한데.
이 시대 ‘새마을노래’의 감상평은 크게 양분될 듯하다.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가난을 극복한 대한민국을 대견하게 또 감사하게 여기는 한 축과, 군사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온갖 사회부조리가 여전한 대한민국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또 다른 한 축으로. ‘새마을운동’ 자체는 대한민국 근대화의 중요한 동력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지난 17일 군민회관에서 양평군새마을지도자대회가 열렸다. 지역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모였다. 지역사회의 그늘진 곳을 늘 챙기며 사는 사람들은 존경해야 마땅하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말이다.
2013년 말미에 윤광신 양평군새마을지회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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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2013년 양평군민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때 늦은 질문이지만, 수상소감부터 먼저 듣고자 합니다.</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제게는 노벨상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고향이자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양평의 군민대상보다 더 훌륭하고 큰 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그 만한 자격이 있는가 부끄러운 면도 없지 않지만 솔직히 너무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더 조심하고 노력하면서 살아갈 각오입니다. 그 사람 괜찮아, 윤광신이 괜찮은 사람이야, 그게 꼭 듣고 싶은 말이자 내 인생의 목표입니다.</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군새마을지회장, 양평군문화원이사보다 더 친숙한 이미지가 개군할머니순대국집 주인입니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고생하는 요식업소가 많은데, 수십 년 동안 흔들림 없이 양평 대표 맛집으로 운영하시는 비결을 좀 밝혀주시지요.</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비결이랄 게 뭐 있겠습니까? 내 입에, 내 식구 입에 들어갈 먹거리 만든다, 는 생각만 지키고 장사합니다. 내 입 내 식구 입에 들어갈 거니까 아무래도 식재료구입에서부터 조리과정까지 잡스러운 수작은 부릴 수 없지 않겠어요? 그냥 맨 처음 문 열 때 했던 대로, 누가 자셔도 참 맛있다 그 소리 듣는 재미, 그 초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 아들녀석이 방이동 먹자골목에 분점을 냈으니 어머니부터 저 그러니까 3대에 이어지는 가업이니 제 나름대로는 정성을 다하고 있어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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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세간에서는 식당운영은 어머니와 부인이 하시고 윤회장님은 그저 팔자 좋은 사람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운영에도 직접 간여하고 계시나요?</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그참, 그게 사실 제일 억울한 부분이긴 해요. 그게 이렇고 저게 저렇다 시시콜콜 얘기하자니 우습고 말이죠. 요식업 하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눈에 보이는 부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성패를 좌우해요. 새벽부터 그날 요리할 식재료 점검부터 그날 끓인 순대국 맛까지 제 손 거치지 않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바깥 일 때문에 하루 종일 밖에서 살고는 있지만 사실 식당 연 밑천에서부터 지금까지 제 손으로 꾸려온 겁니다.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아는 사람한테 윤지회장님 소싯적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중학생 때부터 돈벌이에 나선 지독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너무 어려서부터 돈 버는 맛을 알아버린 게 지독한 사람이라면 뭐 그 말이 맞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땐가, 우리 앞집에 이도영씨라는 분이 살았는데 제가 그집 양계장, 그게 부리에 있었는데 거기서 일을 해줬어요. 학교만 파하면 쪼르르 달려가서 밤이 이슥하도록 잡일을 했는데 처음에는 놀이삼아 했어요. 근데, 전 그게 그렇게 재미있더라구요. 달걀이 병아리가 되고 병아리가 암탉이 돼서 또 알을 낳는 게, 또 그래서 돈이 되는 게 너무 신나더라구요. 6개월을 무보수로 일하다가 병아리는 넘고 닭은 덜 된 놈 100마리를 노임으로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105마리를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열 다섯 나이에 양계장을 꾸렸죠.
케이지 살 돈도 아깝고 그럴 돈도 없어서, 친구들하고 버드나무 꺾어다가 닭집을 만들었어요. 물 주는 통, 먹이 통, 또르르 계란 굴러가는 통까지 죄다 남의 양계장 보고 비슷하게 만들어냈죠. 그래도 제깐에는 성심을 다해서 105마리 가운데 딱 2마리만 잃고 103마리를 전부 길러냈죠. 말이 쉽지, 그 시절에 습도 70퍼센트에 온도 32도 이상 35도 이하를 유지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양계장 옆에 움막 같은 관리사 짓고 촛불 켜고 양계서적 닳도록 보면서 살았습니다.
근데, 이게 또 가만 보니 닭 키우는 일이 사료장사 배불려주는 일이더군요. 당시에는 영육사료 한 가지밖에 없었는데 가격이 엄청났어요. 양계서적을 보니 개구리가 그렇게 닭에게 좋답디다. 그때는 발에 채이는 게 개구리였지 않아요? 동네친구들 싹 풀었죠. 한 깡통에 200원씩 쳐주니 다들 신이 났죠. 거기다가 아카시아 칡넝쿨이며 이런 저런 좋다는 거 다 넣어서 모이를 만들어 먹이니 근방에선 저희 집 달걀이 굵고 실하기로는 최고였어요. 매부 좋고, 누이 좋고, 닭도 좋고, 저도 좋았죠.
당시 개군우체국장이 신영철선생이셨는데, 거기 통장에다 매일 돈 갖다 넣는 재미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그때, 장리쌀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거 아시죠? 한 가마 꾸어 가면 다음 추수 때 한 가마 반으로 갚던 거.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돈놀이지만 그땐 그게 없는 사람 도와주는 처신쯤으로 여겨지던 시절이라, 어머니가 권유하는대로 따랐죠. 솔직히 그렇게 돈 불린 게 지금 생각하면 좀 껄적지근합니다. </b>
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화폐보다 귀한 보물이었다. 보리 섞는 양이 곧 그 집안의 경제지표였다. 그랬는데 지금은 남아도는 게 쌀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미국에서 배 타고 온, 베트남에서 삼모작한 쌀 등등이 그득하다. 많다는 게 꼭 풍요로운 건 아닌 듯싶다. 남아도는 쌀 때문에 애끓는 농민이 어디 하나둘이랴.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돈도 크게 하셨다면서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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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사람 욕심이 그렇더라구요. 처음에는 달걀 파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는데 점점 양에 차지를 않습디다. 지금처럼 자동화시스템으로 대량사육이 가능한 시절도 아니라 한계가 있었죠. 그래 궁리 끝에 돼지를 치자, 작심을 하게 됐어요. 이번에도 동네 또래들이 총출동했죠.
저기 파출소 뒤에 땅을 세내서는 거기다 블로크 돈사를 지었어요. 그때 블로크가 좀 비쌌습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제 손으로 직접 만들 요량을 냈죠. 책 사다 보면 다 방법이 나와 있어요. 한두 번 실패하고는 재료만 사다가 척척 블로크를 찍어냈죠.
모돈(母豚) 2마리로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움막 같은 관리사 하나 지어서는 거기서 먹고 자고 했죠. 밤이면 촛불 켜고 양돈서적 보면서 말이죠. 사료도 직접 만들었어요. 횡성 가서 떨이용 옥수수 사고, 인천 가서 어분 사고, 그때 군청에서 밀기울이 나왔는데 나중에 옥천면장을 하셨던 정춘모 선생이 많이 도와 주셨죠. 그때 도움 받은 분들 존함이 지금도 생생해요. 대동화물 하셨던 함영식 선생, 밀가루 방아 찧어주셨던 김학동 선생, 가축병원 하셨던 김희섭 선생. 전부 제겐 은인이시죠.
이런 은인들 덕분에 110마리까지 키워냈습니다. 제가 뜨거운 데에 손닿으면 찌찌직 살은 타도 아프지는 않아요. 그때 손에 밴 굳은 살 때문이죠. 물론 저도 죽자 살자 덤벼들었지만, 주변의 은인들 없었으면 택도 없는 일 아니겠어요? 세상이치가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거 아닙니까?</b>
어떤 사람의 것이든, 일대기를 직접 듣는 일은 흥미진진하다. 빈손으로 악전고투 속에서 우뚝 일어서는 경험담은 사뭇 감동적이기도 하다. 윤지회장의 경험담 속에서는 모든 인물이 살아 있다. 이리 저리 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이름 석 자가 당사자의 머릿속에 콱 박혀 있어서다.
달걀을 받아내던 소년이 이문에 눈을 떠 닭을 키우고 돼지를 키우고 세상이치를 깨닫는다. 집안 형편이 유별나게 어렵지 않았음에도 한푼 두푼 여투어 목돈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버린다. 스스로가 성심을 다하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은인과도 같은 인연을 맺게 됨을 어린 나이에 체득하게 된다. 한편으론 이마빡에 피도 안 마른 나이에 지역사회의 지도층이 된다. 열여덟 나이에 양평축협 이사로 선임된다. 이사마다 목돈을 갹출해 다 기울어가던 축협을 살려낸다. 장년층도 힘에 겨웠던 목돈을, 짚 꾸러미에서 달걀 하나 꺼내듯 제 통장에서 빼내 희사한다.
미리 챙겨두었던, 새마을지회장 혹은 문화원이사 혹은 지역사회지도층인사를 겨냥한 질문은 뒷전으로 밀리고 자꾸 인간 윤광신에 대한 호기심이 앞선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돼 자퇴를 하고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는 대목에선 약간 고개가 갸우뚱했다. 그 나이에 너무 돈만 밝히는, 너무 되바라진 성장기가 아닌가 말이다.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그래도 그렇지 학교 작파하고 돈벌이에만 매달린 건 좀 그렇네요. 후회되지 않으세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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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철이 없었던 거죠. 근데 다 또 그렇게 뚫어나갈 길이 나타나대요. 제가, 집 한 채 사고, 땅 좀 사고, 그리고 250만원 든 통장 어머니께 드리고 입대를 했습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더라고 제가 차트 글씨를 잘 썼거든요. 그래서 행정병으로 차출이 됐어요. 행정반에 가니까 전부 대졸이대요. 그래도 뭐 기 죽지 않고 제 할 일이 다했습니다.
짬밥 좀 먹고 나니 조수가 따라붙더라구요. 제가 그때 반장으로 있었는데, 그게 말이죠, 주로 하사병만 맡고 끽 해야 2,3개월이 고작이었는데, 저는 병(兵)이면서도 8개월을 맡았어요. 여튼, 그때 조수가 강명철이라고 서울대생이었어요. 그래 하루는 제가 툭 깨놓고 물어봤죠.
내가 이만저만해서 공부할 때를 놓쳤다,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 물었더니, 뭘 그런 걸 갖고 고민을 하느냐, 내가 사다주는 책만 파면 다 된다, 이러더니 다음 외출 때 책 수십 권을 구해들고 옵디다. 근 1년을 꼬박 팠습니다. 후다닥 밥 먹고 책 펼치고, 잠 잘 시간 줄여가며 책 펼치고 그랬습니다. 거기다, 서울대학교 학생을 개인가정교사로 뒀으니 그냥 뭐 책 속의 내용이 쏙쏙 머리에 들어옵디다.
그래서 스물일곱에 대입검정을 봤는데, 그땐 장가를 들고나서거든요, 집사람 대동하고 발표장에 갔죠. 수만 명에서 1300명 골라내는 시험이었는데 자신이 있었거든요. 적어도 500등 안에 들겠다싶어 집사람에게 자랑도 할겸해서 갔는데, 아 글쎄 58등으로 합격이 돼 있더라구요. 제 자랑은 아닙니다만.</b>
제 자랑이 아니긴, 제 자랑도 매우 심한 제 자랑이구만. 그래도 그리 오골거리지는 않는다. 때를 놓친 공부를 아주 늦기 전에 파고드는 모습이 가히 기특하지 않은가. 것보다 더 기특한 것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죽어라 파고드는 성실함이다. 필자의 아들녀석도 반만 닮았으면 좋겠다 부러워하다가 퍼뜩 정신이 든다. 나는 그 나이에 그리고 소년기에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던가.
윤광신지회장은 검정고시 9과목을 한 번에 합격한다.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하고, 형편 될 때마다 이런저런 대학원최고위과정을 수료한다. 정식학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여러 과정을 수료했지만, 방통대는 아직 졸업을 못했다. 왜 졸업 못했나 묻지는 않았다. 먹고사는 일이, 세상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지는 피차가 마차 아닌가.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지역사회활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새마을지회의 회장, 양평문화원의 이사를 맡고 계십니다. 두 단체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요약하신다면?</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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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다른 점부터 요약하자면, 문화원은 우리 양평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고, 새마을지회는 구습을 버리고 늘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통점은 두 단체 다 지역사회의 발전을 꾀하면서 지역주민의 삶을 좀 더 밝고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박근혜정부에서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주요국정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반면, 이러한 움직임을 과거로의 회귀, 직설적으로는 유신시대로의 복귀라고 평가절하 하는 여론도 있습니다. 이 시대에 새마을운동이 왜 새삼스럽게 부각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과거 군사시대가 일정부분 연계될 수는 있으나, 용어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새마을운동 관련 건수만 2만 2천 건입니다. 그간 6,70개국의 정상들이나 장관들이, 또 103개국 5만여명의 세계인이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왔습니다. 자기 나라에 접목해서 괄목할 성과를 얻은 나라가 한둘이 아닙니다. 외국에서는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의 토대로 분석평가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없지 않아서 새마을인의 한사람으로써 대단히 유감스럽고 섭섭합니다.
새마을운동은 특별난 누군가나 어느 계층만을 위한 게 아니거든요. 국민 모두가 더 발전하고 더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의식개혁 운동이며 또 몸으로 실천하는 운동입니다. 더욱이 박근혜정부가 주창한 제2새마을운동은 기존의 근면, 자조, 협동에서 나눔, 봉사, 배려가 더해졌습니다. 저는 이러한 새마을운동이야 말로 지금 이렇게 복잡하고 혼탁한 시대에 꼭 필요한 범군민적 운동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일 수 있겠으나 그간 새마을회원들의 선도적 역할이나 봉사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합니다. 특히 양평에서는 새마을지회회원들이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인적자원입니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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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그 부분은 저도 적극 동의합니다. 그간 양평의 새마을지회는 이웃을 챙기는 ‘나눔과 봉사’를 꾸준히 실천하고 확산해오셨습니다. 나눔과 봉사의 의의랄까, 이러한 활동이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보십니까?</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제가 주변분들한테 늘 드리는 말씀이 있어요.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된장국처럼 구수하고 훈훈한 정이 넘치는 세상이다, 이렇게 당부합니다. 100퍼센트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회원이나 임원들은 양평 안에서 만큼은 남의 일을 남의 일로만은 보지 않아요. 어떡하든 힘닿는 한은 딱한 사람에게 온정을 전하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남을 생각하는 게 곧 나를 더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만큼이라도 사람 구실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뤄진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주변에 누군가 딱한 입장에 놓였을 때 내 일처럼 다가가면 그 사람 또한 어려운 고비를 벗어나면 또 주변에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따뜻한 마음씨가 돌고 돌면 그게 다 지역사회를 더 살기 좋은 데로 만들어내는 비결이 아니겠습니까?
지역의 문제점을 보는 눈도 좀 더 따뜻해져야 합니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물어뜯는 거만이 능사는 아니죠. 가령, 예를 들어 지방공사를 봅시다. 물론 잘못된 게 많죠. 그래도 없애버리자,하는 식의 접근은 곤란합니다. 무엇이 문제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부터 차근차근 살펴봐야죠.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지방선거 때만 되면, 자의반 타의반 선출직후보 물망에 오르내리고 계십니다. 내년 선거에 나설 계획이신지요?</b>
<b><font color=green>윤광신 :</font> 선출직이라는 게 내가 하고 싶다고 다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솔직히 요즘 생각 많이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마음을 먹고 내가 경기도의원직에 나서려고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고 있습니다. 예전에 군의원 할 때하고는 생각이 많이 달라요. 그때는 어깨에 힘 좀 넣어보고 싶은 욕심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되풀이되는 얘기지만 제 인생은 남의 도움으로 이어져 온 겁니다. 건방진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뒀고, 공부한 만큼 세상이치를 배웠고,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챙기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 정도면 분에 넘치는 삶이 아니겠어요?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 두 사람보다는 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더 나아가 양평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제 욕심의 전부입니다. 나만을 위해서 더 갖고 싶은 것도 이젠 없고, 내 식구들만 위해서 열심을 떨어야 할 형편도 이제는 벗어났습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 사람 괜찮아, 윤광신이 그 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야, 이 소리 듣는 게 제 목표의 전부입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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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없이, 말 그대로, 참 괜찮은 사람으로 세간의 평가 받는 일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만큼 괜찮은 사람이 또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모든 선거에서 ‘괜찮아 보이는 사람’에게 투표했지만 ‘괜찮은 선출직’은 참 보기 드문 게 현실이다. 윤광신지회장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대충 알고 있으나 보기 드문 ‘괜찮은 선출직’으로 평가 받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직 출마여부도 결정되지 않았을뿐더러, 어느 직종보다 뒷간 다녀오기 전후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직종이 선출직종이니까. 다만, 열심히 살아오고 주변을 살피는 눈을 지니고 있음은 선출직의 덕목 가운데 가장 근본임은 분명해 보인다.
올해도 연말 분위기는 초장부터 글러먹었다. 제 고모부를 며칠 간 줘패다가 불쑥 처형하는 북녘 땅 정권이 섬뜩하고, 기관총으로 갈기고 화염방사기로 불태웠다고 마치 처형장을 방청이나 한 것처럼 나발을 부는 남녘 땅 언론이 섬뜩하다. 청량리 오가는 전철과 기차의 배차간격이 점점 벌어져서 언짢고, 지지도는 바닥을 기는데 벌써부터 대권가도에 나서는 정치풍토가 심란하다.
이제 겨울로 접어들었으니 어느 세월에 봄이 오려나.
YPN뉴스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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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양민님의 댓글
양민 작성일회장님 언제나 현장에서 지역민과 함께 고생이 많으시네요
전 군의원으로 계실적에 지역과 주민을 위해 애쓰셨는데
또 새마을에서 지회장님으로 지역과 주민을 위해서 고생이 많으시네요
허허허님의 댓글
허허허 작성일"새마을 노래의 감상평은 크게 양분될 듯하다"
윗글의 내용처럼
이분께서도 새마을 노래의 내용을 공유하시는분 같읍니다.
군민1인님의 댓글
군민1인 작성일알고보면 양평에도 좋은사람들이 많네요
동내 왔다갔다하는 사람정도로 생각했는데 사회단체장 자격이 있네요
새마을회 회원 여러분 존경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우쒸~~님의 댓글
우쒸~~ 작성일회장님 칭찬도 좋치만, 회원님들!
혈액암 투병중인 현준이에게 따듯한 위로의 말이라도 남겨주세요.
궁금증님의 댓글
궁금증 작성일"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하고, 형편 될 때마다 이런저런 대학원과정을 수료한다. 정식학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여러 과정을 수료했지만, 방통대는 아직 졸업을 못했다."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대학원과정을 수료를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겁니다.
"6개월 과정의 ~~최고위 과정"과 혼동하신 것은 아닌지요?
대학교 졸업 후에 대학원을 가는 것이 상식인데 기사내용이 이상해서 질문을 드립니다.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궁금증님.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적하신 부분은 수정하였으며 앞으로 좀 더 유의하겠습니다
무분별한 광고 및 악성댓글을 차단하기위한 방침이오니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