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PN인터뷰-||할 말은 해야 양평이 바뀝니다. -한국자유총연맹 양평지회장 김 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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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4-03-10 10:03 댓글 7본문
종북세력은 배격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종북세력 스펙트럼’은 지나치게 넓다. 북한정권에 맹종하는 진짜배기 종북에 더해져 단지 현정권에 비판적인 세력까지 종북의 덤터기를 쓰는 경우가 흔하다. 박근혜대통령의 취임1주년을 축하만 하기에는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리 안녕하지 못하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양평시가지에도 기초선거 공당폐지 공약 준수를 촉구하는 현수막 하나 정도는 걸려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현수막 하나 달 세력조차 없는 지역사회가 마치 울타리 없는 양로원처럼 적적하고 씁쓸하다.
지난 금요일 오전 10시, 한국자유총연맹 양평군지회 김수한 지회장(양평경동보일러․경동철강. 농협한삼인 홍삼대표 : 55세)을 지회사무실에서 만났다. 공식적으로는 지역사회의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단체의 단체장 견해와 지론이 궁금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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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한국자유총연맹은 일반국민에게는 대표적 보수단체로,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대표적 관변단체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구체적으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체의 활동과 또 양평지부의 주요활동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b>
<b><font color=green>김수한 :</font> 일부에서 자총(한국자유총연맹)을 백안시하는 풍토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만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역사의 교훈을 망각해서는 안 되죠. 어느 시대든 많은 문제를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지만 역사의 기억이 희미해져가고 있다는 게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불과 60년 전 북한의 전쟁도발로 사망한 사람만 남과 북 합해 최소 300만에서 최대 500만입니다. 당시 인구의 10분 1 내지는 6분의 1이 희생된 거죠. 양평 역시 집중적인 인명피해를 입은 지역이 아닙니까? 이 엄청난 비극을 자초한 북한정권이 반성은커녕 갈수록 훨씬 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지 않습니까? 3대가 적화통일이라는 몽상에 빠져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를 좌시한다는 건 더 큰 비극을 두 손 놓고 기다리는 것과 뭐 다를 게 있겠습니까?
우리 자총은,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여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일조하는 보수애국단체입니다. 이를 위해 양평군지회는 자총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한편으론 특히 6.25 당시 선열에 대한 지역사회의 추모의식을 가다듬는 데에 주력하고 있어요. 선열을 기리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게 민족의 비극을 막는 최상의 국민의식이 아니겠습니까? 그밖에 청소년 종합예술제, 학교폭력 예방, 유치원 대상 뮤지컬 공연, 다문화가정을 위한 조촐하지만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는 사업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북한처럼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독재정권 말고는 세계 어디서나 좌익과 우익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슬기롭게 조화를 이루느냐 극명하게 대립할 것인가가 관건이겠습니다만. 지회장님이 보시기에 우리나라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념적 충돌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b>
<b><font color=green>김수한 :</font> 남북분단의 영향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죠. 이러한 부분은 보수세력도 반성해야겠고, 북한정권과 북한동포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시각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마냥 이상적인 생각만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어리석음은 정말 경계해야 합니다. 시쩍하면 수백만이 굶어죽고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사람이 줄을 잇는데도 아직까지 북한정권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제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이석기 의원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이석기 의원도 지나쳤지만, 실제 국가적 위협에 비해 처벌이 너무 지나치다는 여론이 있는데 이런 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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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김수한 :</font> 저는 좀 더 무거운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대한민국에 얼마나 피해를 줬느냐가 관건이 아니라 그러한 정신상태를 가진 집단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게 개탄스럽고 특히나 국회의원으로 위장해 국가심장부에 침투한 사태는 대단히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봐요. 다른 사안을 두고 대치하는 건 몰라도 국가안보와 북한권력에 대해서는 여야정치인 모두가 합일된 정서를 공유해야 마땅합니다. 그게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원칙 없이 북한정권과의 관계개선만을 목표로 두는 거와, 때에 따라서는 대치국면을 감수하더라고 원칙을 갖고 북한정권을 상대하는 거, 어느 쪽이 진실로 제 2의 6.25를 막는 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젊은 시절 중동의 전장 속에서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전쟁의 비극이 어떤 건지 왜 절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건지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평화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북한정권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을 더욱 납득할 수가 없는 거죠. </b>
2013년 해외여행에 나선 국민이 1,400만명이다. 수치로만 따진다면 전국민이 3년에 1번꼴은 국외로 나선다는 얘기다. 수십 년만 거슬러 오르면 대한민국 국민에게 국경을 벗어나 외국에 간다는 건 한낱 꿈에 불과했다. 외국은 손바닥만한 그림엽서에, 흑백 TV에, 극장 스크린에 펼쳐지는 허상이자 동경의 대상일 뿐. 팔자가 늘어질 대로 늘어진 극히 소수를 제외하곤, 국경 밖 외국은 다만 이 땅에서의 빈곤을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60년대 독일파견 광부와 간호사가 그랬고, 70년 월남파병 군인이 그랬고, 80년대 중동 근로자가 그랬다.
김수한지회장 역시 동일한 목적으로 중동의 일자리를 희망했다. 국내직장생활보다 평균 서너 배의 임금은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여러 번의 취업실패 끝에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스스로가 말하기를 “하도 전쟁이 치열해지니까 중동현장에서 귀국하려는 사람은 많아지고 가겠다는 사람은 줄어들어 실력이 모자라는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고 했다. 중동파견이 결정되고 송별회를 가졌다. 송별회를 총 8번이나 치렀다. 출국날짜 잡아놓으면 비행기가 결항되고 또 결항되는 일이 수개월간 지속됐다. 전황이 그만큼 위태로웠던 것이다.
김지회장이 입국한 83년 이라크는 한창 전쟁 중이었다. 1980년 9월 22일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하면서 발생한 이라크-이란전은 프랑스가 이라크에 자국의 전폭기와 미사일을 수출하면서 더욱 치열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라크는 UN 안보리의 휴전명령에도 불구하고 1988년 8월 20일까지 백만여 명의 희생자를 내며 전쟁을 계속했지만 결국 이란에 무릎을 꿇었다. 현대전쟁의 대부분이 그렇듯 전쟁의 배후에는 구미열강의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었다.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전장의 위험도 위험이지만 문화적 충격이 상당하셨을 텐데, 당시 경험을 요약해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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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김수한 :</font> 사실은 업무 익히느라 부임초기에는 위험한 건지 아닌지 정신도 없었고 업무현장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관심이 가질 않았어요. 전쟁터라 따로 번듯한 사무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군인벙커에서 일하고 생활하고 그랬습니다. 아, 참 덥더라구요. 한낮에는 53도까지 올라가는데 종일 사우나 안에서 뛰어다니는 기분이더군요.
그러다가 바스라 지역 근무가 정해졌죠. 바그다드가 서울이라면 바스라는 부산 정도인데, 버스로 이동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지금 와 있는 땅의 현실이 실감나더군요. 파괴된 거리와 붕괴된 건물, 중무기를 동반한 군대행렬 따위를 보면서 그제야 내가 참 위태위태한 처지라는 걸 실감했어요.
그런데 정작 아직도 선명한 기억은 고속도로휴게소 양꼬치구이예요. 멀리서 봤을 땐 너무 익혀서 까맣게 탔나 싶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까 파리 떼가 새까맣게 들어붙어 있더라구요. 현지인들은 그걸 아무 거리낌 없이 사서 몇 번 흔들어 파리 떼를 쫓고는 입에 넣더군요. 사실은 그게 제일 큰 충격이었어요.
그래도 뭐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비슷비슷해요. 전쟁터라도 말이죠. 현지음식 맘 놓고 먹기 시작한 건 한참 뒤의 일이지만 공식적으론 금지된 술 구하기도 쉬웠고 심지어 이슬람국가인데도 공창지대가 있었어요. 그것도 경찰서 바로 옆에. 전쟁이, 히잡으로 얼굴 가리고 사는 여성들마저 몸을 파는 비극을 낳은 거죠.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월급이라든가 대우는 어땠나요? </b>
<b><font color=green>김수한 :</font> 봉급 53만원, 당시 국내에서 저랑 비슷한 경우가 한 20만원 받았을 때니 큰돈이었죠. 위험수당이 매월 300백불 정도됐구요. 거의 다 모았습니다, 3년 동안. 생필품은 보급되었으니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저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았죠.
그 돈이 어떤 돈이겠습니까? 말 그대로 목숨 내놓은 대가 아니겠어요? 매일 전투상황 속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때 제가 맡은 일이 텔렉스 통신이었는데, 군사통신망을 사용했어요. 근데 그게 전부 통신선으로 이어진 겁니다. 당시에 무선 따위가 있었겠어요? 툭하면 선이 끊어지곤 했는데 사막을 기고 기어서 죄다 손으로 이어서 쓰곤 했죠. 허리 펴고 걸어가다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를 총알에 목숨을 잃을 수는 없었거든요.
게다가 현지 인력들은 별 도움이 안 됐어요. 기온이 높아서 그런지 참 게을렀고 들에만 나가면 일단 먹을 거, 바나나 같은 게 저절로 달려 있어서 그런지 우리처럼 악착같이 잘 살아보겠다 하는 의욕 같은 게 전혀 없어 보였어요. 당시의 기억 때문에 동남아 여행은 가능한 피합니다. 게으르고 의욕 없는 사람들을 보면 저까지 기분이 나빠져요.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 는 저뿐만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기본신념이 아니겠어요?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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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김수한 :</font> 가보고 싶죠. 그 나라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도 늘 갖고 있죠. 동료 중에 하나가 이라크현지인과 결혼해서 살고 있어요, 이라크에서. 소식이 끊어진 지는 오래됐지만 자주 생각이 나요. 별 탈 없는지 뭘 해먹고 사는지 다 궁금하고 걱정이 되죠. 제가 그때 그랬거든요. 아무리 좋아도 남의 나라가 아니냐, 우리는 우리 땅에 가서 살아야 되지 않느냐, 수없이 설득했거든요. 어쩌겠어요? 다 자기 인생이 있는 걸...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왜 퇴사하시고 인천에다 보일러대리점을 차리셨는지요? 사업은 순탄하셨나요?</b>
<b><font color=green>김수한 :</font> 이라크현장의 원청사는 독일회사였는데, 그때 책임자 부인이 한국사람이었어요.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남편을 만난 거죠. 그분 도움으로 독일 본사에 취업할 기회가 생겼는데 체류기간이 문제가 돼서 잠시 귀국해서 머리 싸매고 학원에서 독일어 공부를 했어요. 하루는 그 학원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던 동년배가 솔깃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인천에 큰 공단이 생겨서 공장건물이 속속 들어차는데 전부 보일러를 놓아야 한다, 근데 내가 그 루트를 잘 아니 떼돈 벌 수 있다, 근데 내가 가진 돈이 없다, 그러니까 동업을 하자, 그런 소리였는데 꽤 구미가 당겼어요. 사기성의 제의는 아니었고 정말 당시 인천이 그랬습니다. 또 하나, 인천은 고향 양평이랑 한참 떨어져 있는 데고 부두에 나가면 막일은 쌔고 쌨으니 쪽박 차면 노가다해서 다시 밑천 만들 수 있다는 제 나름대로의 배수진을 치기도 괜찮았구요.
사업초기에는 그 친구 말대로 주변이 착착 돌아가더라구요. 그랬는데 공단자체가 계획보다 입주가 지지부진했어요. 그간 모은 돈 몽땅 투자해놓고는 개점휴업상태로 버텼죠. 동업을 제의했던 친구는 슬며시 떨어져나가고 저 혼자 고생 무지 했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가니까 이럭저럭 사업이 궤도에 오르더군요.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사업을 양평으로 옮기신 게 언제였나요? 인천에서 옮겨온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는지?</b>
<b><font color=green>김수한 :</font> 이제 돈 좀 만져보게 되나보나 하다가 된통 당했습니다. 남동공단이 활성화되면서 납품을 많이 했는데, 그 무렵 갑자기 경제불황이 불어닥쳐서 분양자체가 안 되더군요. 결국은 건설업체들이 줄도산하고, 저 역시 만정이 떨어져버렸어요.
인천에서 더 이상 머물고 싶지가 않더군요. 고향 생각이 났습니다. 고향에서라면 누구한테 속을 일도 없을 거고, 규모는 작아지겠지만 나만 열심히 하면 우리 가족 먹고사는 거야 무슨 문제가 있겠나 싶었습니다. 94년도 남은 거 탈탈 털어서 양평에 보일러대리점을 냈죠.</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풍토이긴 하지만 지역사회의 폐쇄성이랄까 텃세랄까 하는 게 심한 편입니다. 밖에 오래 머물다 오셨으니 그런 불편도 적잖이 겪었을 듯싶은데요?</b>
<b><font color=green>김수한 :</font> 사실 상당히 심했습니다. 지금은 재미난 추억거리가 됐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고향에 대한 선망이 컸었는데, 진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 데 혼자 김칫국 마신 꼴이었어요. 막상 와보니 반겨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대요. 서너 살 후배들도 존칭을 생략하고 호칭하더군요. 김사장, 뭐 이런 식으로. 굉장히 실망했었습니다. 속으로 이를 악 물고 고개 안 들고 일만 했습니다. 5,6년 일만 했습니다. 주변을 살피지도 않았고 그저 내 식구 내 일터만 챙겼습니다.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지금은 지역사회단체장으로 계십니다. 그것도 3년 임기를 연임하면서까지,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나 보죠?</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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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김수한 :</font>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사람이 혼자 살 수는 없더군요, 정말. 한 사람 한 사람 다시 안면을 트고 지내다보니 서로서로 경조사도 챙기게 되고, 이런 저런 지역일을 거들게도 되고. 또 귀향해서 초기의 제가 겪었던 섭섭함이나 소외감이 자격지심에서 온 것도 적잖고. 자총지회장 연임은 꼭 임기 3년을 채우겠다는 생각은 아니고, 그 안에라도 적임자가 나타나면 물러나겠노라고 회원들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사실 제가 자총을 6년씩이나 이끌 만한 능력이나 자격은 한참 모자랍니다.</b>
겸손이 지나치다. 김지회장은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30가구에 무료로 보일러를 설치했고, 10여 년째 매년 장학금을 기탁하고, 지회장을 맡은 4년 동안 매년 2천만원을 사무국 기금으로 내놓고 있다. 사업이 잘 되나보다 혹은 나도 돈만 잘 벌면 그 정도쯤이야로 치부하면 오산이다. 주식배당금만 수천 수백억에 이르는 재벌총수가 어디 하나 둘이며, 재벌총수 가운데 개인적 기부에 인색하지 않은 인물은 몇이나 되는가. 사업 잘되고 돈 많이 번 사람들이 저마다 깜냥껏 기부하는 세상이라면 밀린 공과금과 월세금을 봉투에 고이 담고 이승을 하직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하시는 사업은 요즘 어떻습니까? 사방에서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밖에 안 나오는데?</b>
<b><font color=green>김수한 :</font> 매출은 조금씩 느는데, 갈수록 미수금이 누적돼서 영 죽을 맛입니다. 경기가 안 좋다, 자금회전이 어렵다, 는 소리가 외상값 대신인 경우가 흔해요. 가까운 사람, 선후배 관계에서 이런 일이 많습니다. 생판 남이었으면 수금관련한 안전장치를 다 하는데, 잘 아는 사이니까 믿거니 하다가 이래버리면 정말 대책이 없어요.
몇년 전만해도 형편이 어려워도 어떻게든 외상값을 갚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안 어려워도 안 주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거 같아요. 한 마디로 남의 돈 떼먹고도 미안해하지 않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점점 서로서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사라지고 있는 풍토가 참 섬뜩합니다.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자총 차원에서 혹은 지회장님 개인 입장에서 볼 때, 양평이 시급히 개선해야 될 부분이나 지역발전을 위해 꼭 해야 할일은 무엇이라고 판단하십니까?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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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김수한 :</font> 양평의 폐쇄성은 이제 거의 고질병입니다. 국내고 국외고 좋은 사례나 제도가 굉장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시늉 자체도 안하고 있습니다. 관이나 개인이나 공통사항 아닙니까? 아예 문을 닫고 있어요. 하루바삐 이런 부분도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해야 바뀝니다. 할 말은 해야 지역사회고 지자체고 바뀔 수 있습니다. 뒷전에서가 아니라 면전에서 서로의 의견을 활발히 개진하고 또 반영하고 실천하는 사회적논의구조가 시급합니다. 또 하나, 서로서로 바빴으면 좋겠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앞세워 자기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남 열심히 일해서 얻은 정당한 대가를 두고 시기하고 시비 거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를 위해서도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야 하는데 이 부분은 좀체 나아질 기미가 없어 보여 가슴이 답답합니다. </b>
옛말치고 틀린 말 하나 없다. 곳간에서 인심난다, 는 말 역시 요즘 대한민국을 또 양평을 꿰뚫는 말이다. 빚 없는 삶은 극락이 되었고, 장사는 문만 열고 있어도 성공사례가 되었고, 일자리는 늘어날 기미조차 없다. 청년실업 구제한다는 장담은 요란한데 허리 졸라매 대학졸업시킨 자식들은 아르바이트가 직업이 되었고, 복지정책강화한다는 소리는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인데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줄고 있고, 경제민주화는 구호에서조차 탈락했다.
지방선거는 코앞인데 북녘에서는 또 미사일을 발사한다. 그놈의 김씨왕조는 왜 그렇게 기막힌 타이밍마다 이 지랄을 해대는 건지 도통 알 길이 없다. 국가안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정권의 임무다. 그러나 불행히도, 못난 정권일수록 국가안보를 팔아 정권을 유지해온 게 대한민국의 근대사다. 간첩이 서울시청 안에 근무했다는 소식에 놀랐던 마음이 증거조작이라는 소식에 허탈해지는 요즘이다. 국가안보 대신 종북을 팔아먹는 게 아닌가 싶어 더욱 울적해진다. 투철한 안보의식 못잖게 냉정한 시각으로, 다가오는 6.4 지방선거를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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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7
지회장님 응원합니다님의 댓글
지회장님 응원합니다 작성일
지금은 정든 양평을 떠나 있지만 양평에 지회장님 같으신 분들이 있다는것에 기분이 좋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지는 일 잘되시길 기원합니다.
양평가면 찾아뵙겠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지회장님을 응원하는 젊은이 올림
송만기님의 댓글
송만기 작성일
김수한 회장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할 말은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닫혀있고 통행이 안되는 암울한 양평입니다.
열심히 일한다고 하는데 군민들이 느끼는 경제지표는 최하위 바닥입니다.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가보십시요. 말도 안되는 경제적 어려움을 보게 됩니다.
물론 타지역은 더 말할 것도 없는 것 아주 잘압니다.
기득권 세력들은 본인들이야 잘먹고 잘지내고 속으론 미소짓고 있겠지만 대다수 군민들의 삶은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학연 지연에 의한 지도자 선출이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양평의 문제는 바로 無思 無能한 군민들이 문제이지 뽑혀진 사람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라고 뽑아놓고 그렇게 하는데 못 사는 것을 남 탓하고 모르니 참 웃깁니다.
훌률한 사람을제대로 알고 뽑는 시대가 되어야 양평의 발전이 앞당겨 집니다.
김수한회장님은 참으로 훌륭한 인품을 가진분인데 여러가지로 어려움에 있군요? ㅎㅎ 이해가 갑니다. 외상으로 철근 가지고 가신분들 빨리 외상값 갚아주세요~~ ㅎㅎ
김수한 안병욱 두분 건강 하십시요. 민초 송만기올림
종북타도님의 댓글
종북타도 작성일
김수한 지회장님 수고 많고 감사합니다.
좌파 종북세력들의 삐뚤어진 국가관 잡아 족쳐야 합니다.
그 역할을 잘해주시고 있어 감사합니다.
미래군수 송만기님의 글에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기득권 세력은 어려운 군민편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누가뭐라해도 양평의 그늘진곳은 정치인들이 해결 해줘야 합니다.
공무원 출신들이 선출직 직책을 가지면 안되는 것이 "가재는 게편"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잘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비리 부정을 눈감아 주고 추궁을 하지못합니다.
양평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공무원 출신들 평생 연금 나오는데 욕심좀 버리길 바랍니다.
군민들 바보외에 거의 욕한다고 보면 됩니다.
김수한 지회장님 화이팅 하세요.
군민님의 댓글
군민 작성일종북타도님의 글에 박수를 보냅나다
삼국장님의 댓글
삼국장 작성일
자유총연맹양평군지회의 수장으로
김수한지회장님을 모시게된것을 늘 감사히 생각합니다.
건강하시고, 사업번창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콩순이엄니님의 댓글
콩순이엄니 작성일
항상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시는 지회장님
언제나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하시고자 하는일
잘되시길 바라며~~
옆에서 항상응원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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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님의 댓글
종북? 작성일그렇게 빨갱이로 몰아 붙였던 분들이 2대에 걸쳐 대통령을 해도 대한민국은 굳건하거늘~~~~~대한민국 국민 알기를 자유도 못 누리는 철딱서니 없는 인간들로 채워졌다는 착각들 하시는 분들이 이제는 좀 변화해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