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PN칼럼>초등학생의 댓글 7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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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안에서의 자살사건을 접하게 되면 참으로 난감해진다. 매번 지역사회의 관심과 관청의 대책마련을 촉구하기에는 발생이 너무 잦고, 원인을 분석해보면 볼수록 묵직한 좌절감만 만나게 된다. 마치 도저히 제거할 수 없는, 지하의 거대한 암석바위의 뿔이 지표면에 작은 돌멩이로 솟아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이 불행한 사건들을 가능하면 짤막한 사실관계로만 보도하고 있다. 뚜렷한 대안도 없이 지역사회에 우울증만 확산시킬 지도 모를 우려와, 타인의 비극을 다만 흥미위주의 호기심으로 바라볼 지도 모를 폐단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유족의 아픔과 지역사회의 충격이 빨리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얼마 전 젊은 여교사의 투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착잡해진다. 기사에 달리는 댓글이 하나하나 늘어갈수록 가슴이 점점 더 옥죄어간다. 77개의 댓글 거의 모두가 깊은 슬픔에 빠진 초등학생들이 남긴 것들이라 머릿속에서도 가슴속에서도 지워지지가 않는다.
업무능력 뛰어나고, 반듯한 성품이고, 좋은 선생님이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정말 안타깝다는 게 동료교사와 지인들의 일치된 반응이다. 조심스레 그나마 추정할 수 있는 이유로 꼽은 게, 육아문제이다. 세 살배기 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학대를 받은 사실을 알고부터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전언이다. 새삼 우울증이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가를 깨닫는 한편, 내 어린자식은 마음 놓고 맡길 데 없이 출근해서 어린 학생들에게 정성을 쏟았던 고인의 심정이 아프게 짐작된다.
이러한 짐작은 고인에게만 멈춰지지가 않는다. 일 하는 엄마 모두에게, 어린 자녀를 두고 맞벌이를 해야 하는 모든 가정에 해당되는 짐작이여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소중하면서도 유리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내 어린자식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어디에 맡겨도 불안하고 그나마 맡길 곳 자체도 마땅하지 않는 모든 부모에 해당되는 짐작이여서다.
양평군을 포함한 많은 농어촌지역 지자체가 출산장려금을 지원하고 있다. 둘째는 얼마 셋째는 얼마 다섯째는 얼마 식이다. 과연 이러한 정책이 효과가 있는 것일까, 의문이 클 수밖에 없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이면 낳지 말라도 더 낳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로 이사 가고 싶은 건 맹자시대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양평의 대다수 워킹맘들은 특히 영유아를 둔 엄마들은 고충이 커도 어디 호소할 데도 마땅치 않다. 도시에 비해 태부족한 관련시설을, 서울이 아니라 양평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마는 경우가 흔하다. 속절없이 가슴속에 멍을 키우거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하는 마음으로 참을 뿐이다.
양평은 급속히 노령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그에 따른 대책마련도 시급하지만 노령화사회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청년층의 이탈방지와 신규유입 대책마련도 중요하고 시급하다. 아이 키우기 좋은 지역, 청년층에게 이보다 매력적인 조건이 따로 있겠는가.
양평에는 많은 은퇴자와 노년층이 살고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풍부한 육아경험과 관련지식을 지닌 사람도, 무언가 노년의 보람을 소원하는 사람도 많다. 봉사절반 직업절반쯤 성격의 양평군 공공일자리창출개념으로 접근해보면 어떨까. 소정의 교육과정을 거쳐, 관내 어린이집의 보충인력으로 또는 소규모 자택유아위탁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봄직 하지 않을는지. 양평군과 지역사회가, 관련전문인과 부모들이 머리를 맞대면 무언가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는지.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자살하는 이의 나약함을 탓하기 전에, 자살은 사회에 대한 무엇보다 처절한 최후의 저항수단임을 숙연한 마음으로 주목해야 한다. 자살에 이르게 한 이유를 하나하나 제거하는 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지름길이다. 대한민국 정부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무슨 수로 힘없는 시골에서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하는 체념을 물리치고, 대한민국 정부가 못하면 우리라도 해보겠다는 의지가 더 나은 양평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양평의 육아문제에 경종을 울린 고인에게 깊은 애도와 명복을 빈다. 고인을 따랐던 많은 어린이들의 아픔과 충격을 지역사회차원에서 보듬어주기를 소망한다.
안병욱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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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워킹맘한숨님의 댓글
워킹맘한숨 작성일워킹맘들의 비애를 보는군요,공공일자리방안등 좋은지적입니다.반드시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몫은 정치인들이제도적장치를 해야하는데 제밥그릇싸움질만하니큰일입니다.
학부모님의 댓글
학부모 작성일당장 급한건 아이들이다
그 초등학교 학생들은 아직도 멘붕상태다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심리치료라도 하고 있나 걱정
참생각님의 댓글
참생각 작성일어린이집의 학대가 시작이라면 시작점부터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얼마나 억울하면 자살을 선택했을까요? 문제의 초점을 바로잡아 엄벌해야 합니다
무분별한 광고 및 악성댓글을 차단하기위한 방침이오니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