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연구 13년 전용환‘哀歡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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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재배연구에 13년을 몸담은 전용환(48), 새벽 5시에 퇴근한 그가 7시가 조금 넘어서자 다시 연구실을 찾았다. 6평 남짓한 그의 연구실은 일반 버섯재배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입구부터 봉쇄돼 에어 소독을 거쳐야만 입실할 수 있고, 내부에는 최첨단 설비들이 가득 차 버섯에 대한 그의 열정과 각오를 읽을 수 있는 공간.
그는 이곳에서 한일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부터 밤12시까지 버섯재배연구에 몰입했고, 새벽 4시까지 백화점과 할인마트의 검품장을 진두지휘했다. 이것이 바로 전용환의 ‘두 시간’ 신화다.
눈을 감는 순간이 2시간을 넘지 않는다는 전씨. 참송이버섯, 횐잎새버섯, 셀레늄노랑꽃버섯, 참송잎표고버섯 재배기술 특허권 4개를 보유한 그는 국내 최고의 버섯박사로 우뚝 서 있다.
또 금송이버섯, 검은비늘버섯, 꾀꼬리버섯, 러시아그물버섯 등도 실험재배에 성공해 특허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전씨의 버섯이 거래되는 매장만도 270곳. 그러나 물량이 달려 40여곳만이 제대로 구성된 버섯을 공급받고 있다.
지난 13년간 그리 녹록하지 못했던 그의 성공신화를 들춰본다.
< 샐러리맨에서 농사꾼으로 거듭나다 >
그는 과거 건설회사 간부급 직원으로 재직하며 생계를 꾸린 평범한 직장인. 87년 회사의 부도로 월급과 퇴직금 한 푼 못 받고 실직자로 전락하면서 어두운 과거는 시작됐다.
일용직을 전전하던 전씨는 90년에야 그의 재능을 인정받아 우성그룹의 간부급 인사로 입사했지만 그 역시도 얼마 못가 부도, 회사가 문을 닫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이듬해 전씨는 낙향을 결심하게 되고, 농사꾼으로의 새 인생을 걷게 된다. 충남 홍성에 고향을 둔 전씨가 첫발을 내딛게 된 사업은 과수원.
그러나 그의 부푼 희망은 그해 태풍을 만나 사과와 함께 모두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이후에도 포도재배를 거듭 실패한 전씨는 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의 권유로 버섯재배에 뛰어들게 된다.
그는 이번이 인생의 마지막 전환점으로 삼고, 버섯재배에 삶과 열정을 모두 바치기로 결심한다.
< 일본버섯재배기술, 3년 7개월의 타향살이 >
7년간 샐러리맨의 종지부를 찍고, 농사꾼으로써 두 차례 실패를 맛본 전씨는 91년 일본의 버섯재배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행을 선택한다.
그러나 일본버섯재배공장의 기술자들은 전씨에게 조직배양에 관련된 어떠한 기술도 알려주지 않았고, 심지어 현지인들의 견제와 텃새에 외로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스팀고압살균, 냉각, 접종, 배양, 발이, 억제, 생육, 수확에 이르기까지 이 많은 공정들을 습득해야 했던 전씨는 모두 잠드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의 외로운 사투를 시작한 전씨는 야간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기계에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는 사고로 봉합수술을 받기도 했다.
특히 버섯이 자라는 과정에서 각 재배실마다 다른 산소량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도 현지 기술자들이 이산화탄소 측정기를 철저하게 숨겨 알아낼 수 없었다.
전씨는 이러한 결정적인 공정을 배우기 위해 맥박측정기를 구입한 뒤 각 재배실에 들어가 며칠 밤을 새며 자신의 맥박수를 세어 산소요구량을 찾아냈다.
또 수분측정기 대신 혼합된 배양기를 손에 넣고 하루에도 수백번씩 짜 보면서 감을 잡고, 겨울에는 손이 얼어 수건과 더운 물을 떠다 놓고 기술을 익혔다.
전씨는 재배실의 춥고 습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온도 편차로 인해 치아 4개가 빠졌고, 6개만이 남아 의치로 의지해야 했다.
< 버섯재배 결실을 맺다 >
온갖 설움과 고독을 곱씹으며 버섯재배기술과 조직배양, 고체종균 액체종균 배양전 공정을 익히고 93년 귀국한 전씨는 본격적인 버섯연구에 몰입한다.
밤에는 연구에 몰두하고 낮에는 전씨와 마음에 맞는 9곳의 버섯 농가를 돌며 터득한 기술을 전수하고, 수확한 팽이버섯으로 국내 시장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A백화점 구매부. 전씨는 직접 재배한 버섯을 들고 바이어들과 상담했으나 영세하다는 이유로 입점에 실패했고, 상담 차 가져갔던 버섯 2박스는 그곳에 그대로 내버려 둔 채 포기해야 했다.
그후 한달이 지나자 백화점 측에서 구매계약을 하자는 연락이 왔는데 이유인 즉, 당시 두고 온 버섯 2박스를 나눠 가졌던 바이어들의 부인들이 다른 버섯은 일주일이면 시드는데 전씨의 버섯은 한달이 지나도 싱싱함이 유지되더라는 것.
빠른 입소문은 급기야 전씨의 전화를 먹통으로 만들었고, 전씨의 기술을 흡수한 9곳의 농가는 쾌재를 불렀다.
< 성공은 또 다른 고뇌를 낳고 >
전씨는 버섯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복병을 만난다. 백화점과 할인마트 등에 납품한 버섯에서 농약성분이 검출된 것.
주변 일반 농가에서 사용하던 농약이 바람을 타고 재배하고 있던 버섯에 까지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전씨는 새로운 환경을 물색하게 된다.
2001년 전씨는 유기농 친환경으로 유명한 양평을 선택했고, 형제들의 도움에 힘입어 꿈에 그리던 ‘하나버섯연구소’를 짓기 시작한다.
5천평 규모에 80억원이 투입되는 동안 집과 땅을 팔고, 형제들의 퇴직금까지 밀어 넣으며 산속에 텐트를 치고 버섯연구에만 몰두한다.
공사과정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건물을 짓기로 한 업체가 7억원을 떼고 달아나 다시 한 번 위기와 맞닥뜨린 전씨.
교통비가 없어 버스를 갈아타지 못하고 걸어 다니며 눈물을 토해야 했던 그는 수차례 죽을 결심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다. 의연 다리를 건널 때면 뛰어내릴 생각에 걸음이 멈춰지기도 수십번.
가족들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2002년 연구소를 완공하고 버섯재배와 연구를 거듭하던 전씨는 확고한 신념과 의지 속에 서서히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 내가 아닌 우리가 사는 길 >
하나버섯연구소를 짓고도 버섯을 구경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는 전씨는 연이어 개발된 신제품들이 각 매장의 히트상품으로 기록, 물량 달려 공급을 못하고 있다.
셀레늄이란 항암성분을 버섯에 혼합해 면역력 강화, 암예방 및 치료에 탁월한 기능성 ‘셀레늄노랑꽃버섯’과 다이어트 식품으로 체지방 분해 효과가 탁월한 ‘참잎새버섯’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이 효능이 일본과 미국까지 알려지면서 연간 22t이 팔려나가고 있다. 하루 4t을 생산 중이지만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 전씨는 고민이다.
이처럼 성공신화의 중심에 있는 전씨가 최근까지 자신의 공장에 마련된 컨테이너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혹독한 추위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버섯연구에 대한 강한 의지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개척한 버섯재배기술에 대해 독식하겠다는 뜻이 없다. 현재 양평에 4곳의 버섯재배농가에 기술을 전수하고 있고, 성공적인 농가소득을 위해 지원하며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내 자신이 농사꾼의 자식이고, 농촌에 살고 있으니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나만이 잘 사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YPN/황대웅 기자
YPN뉴스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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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운님의 댓글
박수운 작성일진작 다른 신문에서도 알았습니다
좋은 결실 맺으니부럽기도 하고 양평인으로써 긍지를 느끼니 기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