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현배, 그는 양평군 친환경농업 최고의 개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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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주민의 식수원인 팔당호로 인해 상수원 지역의 청정화를 유지하기 위한 많은 법과 제도로 둘러쌓인 양평군은 각종 개발행위가 원천적으로 규제받고 있어 그 어떤 발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지역이다.
이러한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불투명한 양평군의 현실을 기회로 삼아 지역발전을 이끌어낸 농업직공무원 故 창현배 담당. 그가 남기고 간 친환경 역사를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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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길은 오직 친환경농업”-
수많은 개발여건의 제한으로 줄어드는 인구와 ‘개발왕따’인 양평군 현실은 군민 누구나 뼈저리게 느끼는 좌절감, 그 자체였다.
이러한 가운데 당시 농업직공무원이었던 창현배 담당은 규제혁파만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지난 1997년 양평군 주요 산업인 농·축산업의 장점을 부각시켜 청정 환경을 모토로 ‘친환경농업’의 선두주자로 뛰기 시작한다.
미래의 경쟁력은 ‘친환경 안전 먹거리’임을 일찌감치 인식한 것이다.
또 그것이 양평군이 살 수 있는 유일한 지역경제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8년, 창 담당은 친환경농업으로 승부하기 위해 농업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를 시작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농민들을 만나가며 농민이 원하는 농업, 그들의 애로사항, 그리고 농업중에서도 으뜸 되는 농업이란 것이 무엇인가에 전력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특히 농민 스스로가 자신의 농업경영에 맞는 친환경 농업을 실천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먼저 1,2차에 나눠 제1차 8개년계획 수립3단계 목표를 세우고 1998년부터 2005년까지 3단계별 사업을 구성, 친환경농업의 준비부터 보급, 정착단계까지의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사업구성을 마련했다.
뒤이어 2006년 ‘양평환경농업-21’ 제2차 5개년 계획을 선포, 현재까지 3가지 하기 3가지 안하기 운동 등 6개 분야 107개 사업을 추진한다.
이러한 노력이 바탕이되 군은 ‘ISO14001 친환경농업경영시스템인증’을 세계최초로 획득하는 영예까지 받으면서 군의 친환경농업은 세계에서도 모델이 되어 갔다.
또한 2007년 기준 3,124농가가 친환경농업에 동참하기에까지 이르면서 쌀, 채소, 장류, 육류 등 ‘물 맑은 양평’이란 브랜드가 적힌 양평만의 친환경 농·특산물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無에서 有’를 만들어 낸 셈이다.
창 담당은 전 민병채 군수의 환경마인드를 온몸으로 실천했고 이들의 의지는 농민들을 서서히 감동시켜면서 미흡하나마 작은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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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현배 계장이 만든 친환경농업이란-
전 민병채 군수와 창현배 담당은 먼저 ‘3가지 하기, 3가지 안하기’ 운동을 선포했다.
메뚜기, 반딧불이, 허수아비가 있는 3가지 하기 운동을 통해 흙을 살리고 맑은 물을 만들어 상수원을 보전해 메뚜기와 반딧불이가 사는 군 농업기반을 구축하도록 이끌었다.
또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만든 3가지 안하기 운동을 추진함에 따라 무분별한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억제하고 전국 어디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제초제의 사용을 최대한 억제해 순수 자연이 만든 농산물을 가꾸기에 모든 힘을 쏟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07년 기준 ‘97년 대비 농약사용량이 77%가 감소, 화학비료 사용량이 99.9%가 감소한 반면 유기질비료 사용량은 29%가 증가해 가을들녘에는 메뚜기가 뛰놀고 허수아비가 춤추는 정겨운 친환경적인 자연경관 조성 등 지속가능한 농업기반 구축은 물론 수질오염원을 차단하는 성과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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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든 양평군 친환경농업은 대한민국 최고의 친환경농업특구란 명예로 남았다-
이러한 성과의 결과는 대한민국 최고의 친환경농업특구라는 큰 명예를 안겨줬다.
그 어느 지역보다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으며 청정자체의 농산물을 가꾸어 만들어내는 고장으로서 사실적인 ‘국가공인’을 인정받은 셈이다.
또 2005년 농림부와 환경부로부터 친환경농업 대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2007년 재정경제부에서 마련한 모범지역특구 대상을 수상하면서 친환경농업의 메카임을 대·내외에 천명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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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것을 어떻게 상품화 시키는가가 더 중요했다-
창 담당은 친환경농업으로 일궈낸 농민들의 땀과 피를 어떻게 상품화 시킬것인가에 더 파고들었다.
당시 김선대 군 유통담당의 ‘전투적 마케팅’이 빛을 발하면서 유통시스템도 획기적으로 변화됐다.
이로 인해 ‘농가는 생산에만 전념하고 유통은 군이 책임진다’는 역할분담 체계를 구축해 산지유통센터를 중심으로 2005년부터 현재까지 학교급식 352개교, 대형 및 전문매장 128개 등 판로대책을 적극 확대해 2007년 82억 친환경농산물 매출신장을 통해 농가소득을 이끌어냈다.
또 2005년 4월 물맑은양평통합브랜드를 개발해 현재까지 85농가 400품목에 대해 사용권을 반품 및 리콜제 등 철저한 사후관리와 지속적인 농가교육을 통해 물 맑은 양평통합브랜드 신뢰성 제고에도 만전을 기해왔다.
친환경적인 자연경관을 자원으로 (사)물맑은양평나드리를 설립해 당시 산재돼 있던 녹색농촌마을, 전통테마마을, 산촌마을, 슬로푸드마을 등 19개 마을대표를 연합해 홈페이지를 구축, 인터넷 홍보와 책자제작 등 양평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방문객을 유치하고 관광지역의 상품으로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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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원 연꽃단지 탄생의 주역-
창 담당의 빼놓을 수 없는 업적 중 하나가 세미원 연꽃단지 조성일 것이다.
2005년에는 양평연꽃단지 1,2차 조성사업을 추진해 양수리 세미원 99,000㎡에 연을 식재하고 연제품 3종을 개발함은 물론 2006년에는 양평연꽃단지 3,4차 조성을 통해 26,112㎡에 연을 식재했다.
2007년부터 하천의 정화작용에 탁월한 연의 품종개량종자육성 및 주변환경조성사업을 적극 추진, 수질이 악화된 수도권 2300만 시민의 상수원 보호에도 일조해 왔다.
또 이로 인해 물의 중요성을 오감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물 환경 교육단지를 조성해 우리민족의 자연사랑 역량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생태하전 구축 생태도시를 조성하는데 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1982년 농업직 공무원으로 임용 후 26년 7개월 동안 공직에 몸담아 온 故 창현배 담당.
그는 양평군의 지역을 위해 고민하고 경제발전을 몸으로 실천해준 자랑스런 양평의 공무원이다.
그가 이뤄낸 친환경농업의 보급과 발전, 친환경농업특구 지정의 성과 등은 물론 타 공무원들과는 달리 남다른 사명감과 국가관으로 근면성실한 공무원의 모범을 보여줘 왔다.
양평군 친환경농업 선두주자 창현배!! 그는 민병채 전 군수와 함께 양평군 농업의 틀과 기반을 획기적으로 바꾼 개척자로 기억될 것이다.
/조한민. 김송희기자
YPN뉴스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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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최고의 공무원님의 댓글
최고의 공무원 작성일훌륭한 공무원 한분을 잃은 느낌입니다
앞으로 공직사회는 고 창계장님을 본받아야 할 겁니다
진정으로 군민을 위한 공무를 행하고 돌아가신
창현배계장의 명복을 빕니다
아휴님의 댓글
아휴 작성일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기자님 고인의 이름으로 엉뚱한 인간들까지 거론하여 부각시키지 말것을 당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