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 시민포럼> 언어의 늪에 빠진 ‘평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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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면 조현리 조현초등학교 이중현 교장 |
그리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위원회의 이주호 간사의 평소 지론을 볼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주호 간사가 약 5년전, KDI 국제정책 대학원 교수 시절 모 월간지에 고교 평준화 정책의 개선 방안에 대해 기고한 글을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이 간사는 ‘평준화 정책의 개선은 학교 선택권의 확대를 넘어서서, 학교 차이의 인정, 학교 정보의 공개, 학교 자율의 확대, 학력부진학생에 대한 정부지원 강화 등 다면적으로 접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평준화 반대론자들도 대체로 이 방향에 동의를 하고 있다고 본다.
평준화 찬성론자나 반대론자 모두 공통점이라면 우리 교육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지만 평준화 정책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아주 극명한 대립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는 ‘평준화’라는 말 자체에 그 대립의 씨앗을 품고 있다. 평준화 정책은 정확하게 말하면 ‘고교 무시험 추첨 전형’으로 불러야 한다.
1974년 고교 무시험 추첨 전형의 실시 배경에는 지나친 입시 위주교육으로 암기식 획일적인 교육,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과외 열풍, 일류학교나 삼류학교 학생 등으로 시험 성적에 의해 학생들의 삶이 결정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된 정책이다.
그렇다면 무시험 추첨 전형 이후 정책의 방향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 사교육이 없어도 되는 교육, 시험 성적이 아니라 개인의 다양한 진로적성에 따른 수월성 교육 등으로 추진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무시험 추첨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에 의해 ‘평준화’는 곧 ‘다양성과 창의성’이나 ‘수월성’의 반대 개념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고 이젠 ‘평준화’라는 언어의 늪에서 우리 중등 학교정책이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본다.
무시험 추첨, 곧 평준화는 다양성과 창의성 교육, 시험 점수가 아닌 학생들의 진로 적성에 따른 수월성 교육을 위해 도입된 것임을 분명히 할 때 이명박 정부에서 중등 교육정책도 올바른 가닥을 잡을 수 있다고 본다.
이 정책이 어떻게 가야할 지 구체적 인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어느 가정에서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3학년, 5학년 형제를 캐나다로 유학을 보냈다. 그 아이들은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닐 때와 달리 대단한 성취 욕구를 갖고 공부를 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시험 점수는 나쁘지만 자기가 잘 하는 과학 분야에서 학교 내에서 대단한 인정을 받고 있어 그 자신감이 다른 공부도 열심히 하게 한다는 것이다.
두 해전에 어느 좌담회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고등학교를 다니는 자기 아들은 대학을 제대로 갈 수 없을 거라고 학교에서 걱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일로 미국을 가게 되었는데, 미국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는 180도 다른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것은 사회 분야에 뛰어난 그 학생의 능력을 학교에서 인정을 하고, 그 능력으로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대학을 진학했다는 것이다. 그 학생의 아버지는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아이한테 그런 기회가 왔을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해 진다고 했다.
지금 내 이야기는 유학을 정당화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육이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일을 아직까지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가슴 아픈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의 개성을 살리고, 누구에게나 성취 기회를 주는 것, 그리고 폭넓은 기회를 주기 위해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데 고교추첨제(평준화)가 문제인지, 학교를 다양성, 창의성으로 유도하는 정책 방향이나 내용의 잘못인지 반드시 검토하여 언어의 늪에 빠져있는 우리 학교교육을 건져내야 할 것이다.
이 중 현 양평 조현초교 교장 <시인·동화작가>
/출처. 경기일보 시민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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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명환님의 댓글
김명환 작성일이 글에서 보여준 사례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외국의 사례이죠. 창의성과 다양성 교육은 그 출발선에서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다양한 기회가 열려 있는 서구의 아이들과 소수를 위한 열린 교육을 하고자 하는 우리교육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였으면 합니다. 언어의 늪이 아니라 현실의 늪을 분명하게 아는 게 더욱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