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방에 사는 여든 셋 할머니의 회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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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보다 걱정이 앞섰다. 의지가지없는 양반이 어쩌려고 전 재산을 저렇게 툭 내던지나 싶었다. 어르신 이르시길 “장에 나가면 몇천원짜리 옷이 천지고, 나라에서 주는 기초생활비면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고 했다. 덧붙여 “우리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하는 데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희사동기임을 밝히며 “요즘 젊은이들은 아이도 낳지 않으려드니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라는 속마음도 감추지 않았다.
그 말씀 전해듣고 나니, 걱정보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만날 양평군 욕, 정부 욕에 침 마를 새가 없으면서 정작 세상에 도움되는 일은 만날 말로 만이었기에. 할머니의 기탁금을 건네받은 교육발전위 임직원과 양평군 공직자들도 부끄럽기는 매한가지였던 모양이다. 만날 지역발전을 앞세우면서도 실은 내 살길에만 눈이 밝지 않았든가 반성하게 되더라는 후일담이 들려오니 말이다.
메르스가 한참일 때, 세입자 월세 좀 깎아주십사, 부탁하는 칼럼을 게재했었다. 필자의 필력이 시들하다보니 반응도 시들할 밖엔. 어느 건물주도 월세인하에 나서지 않았다. 세입자 역시 여기 양평 어느 건물주가 저 손해날 짓을 하겠느냐 코웃음을 쳤다. 하긴 필자 역시 혹시나 하는 기대 정도였다. 만일 실행에 옮기는 이가 있으면 대서특필할 각오는 투철했지만.
홀로 여관방에서 살고 계신 여든 셋 할머니의 기부는 양평의 종아리를 때리는 회초리와도 같다. 만날 죽겠다면서도 여름 되면 피서가고 겨울 되면 곰국 끓여먹는 처지면, 돈 없어서 기부 못한다는 소리는 아예 입 밖에 내 놀 수 없게 됐다. 회초리 한 대 세게 맞았으니 이참에 양평만의 공동기금기구라도 하나 만들면 어떨까. 가능하면 많이많이 참여하게, 더도 덜도 없이 딱 월 오천원구좌로.
이왕에 시작한 동화이니 아예 끝을 맺어보련다. 우선은 한 기십명 시작해서, 한 사람이 열명씩 끌어들이는, 어찌보면 다단계수법을 차용해서 말이다. 인구 10만이니, 애들 빼고 수입 없는 어르신 빼면 적어도 만명은 모이지 않을는지. 만명이 오천원이면 월 5천만원이다. 일년이면 6억이고, 충분하달 수는 없겠으나 아주 딱한 이웃들에게 잠시나마 온기를 나눌 수는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양평 울타리 안의 비참한 일은 어느 정도 털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할머니의 속내를 더 들여다보니, 두 달 전 이사 온 당신을 환대한 양평에 대한 답례가 드러났다 “늙은이 혼자 산다고 주변에서 정이 넘쳤고, 보건소며 읍사무소며 고맙기 짝이 없게스리 대접해줘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는 말씀이 그렇다.
우리는 양평에 살고 있다. 알게 모르게 양평군 덕본 게 없지 않을 터이다. 덕본 건 하나도 없고 피해만 받았다 여기는 사람들도 양평군은 몰라도 양평군민 덕은 분명 받았을 터이다. 그러니 우리 사는 양평에 대한 답례를 진지하게 한번쯤은 생각해봄직하다.
날씨는 덥고, 경제는 불황이고, 정치는 엉망이다. 사는 게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사는 재미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양평에 사는 재미, 십시일반으로 정을 나누는 것만 한 게 또 있으랴.
안병욱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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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양평사람님의 댓글
양평사람 작성일찬성입니다.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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