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서 ‘Better Than New York’을 부르짖는 사람_양평군립미술관장 이 철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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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에서 ‘Better Than New York’을 부르짖는 사람_양평군립미술관장 이 철 순
요즘 해질녘 문화원 삼거리를 지나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눈 덮인 산자락에 어둠이 내리는 고즈넉함을 뒤로 하고 휘황한 불빛을 뿜고 있는, 양평미술관의 야외전시 ‘루미나리에(17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조명을 이용한 건축물 장식 및 조형물)’ 덕분이다. 이 실외전시는 개관 1주년 기념전시 ‘빛의 나라 양평’의 일환이다. 물량으로 압도하는 국내외 여타 ‘루미나리에’ 전시에 비해 조촐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간 변변한 크리스마스트리 하나 보기 어렵던 양평의 연말을 환히 밝혀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양평미술관이 개관한 이후 미술관 외벽 상단에는 개최 중인 전시회 알림 광고가 늘 자리 잡고 있다. 전시명과 간결한 이미지 부착물만으로도 문화원 삼거리의 풍경과 양평전반의 느낌을 크게 변모시켜왔다. 방문객도 줄을 이어 개관 이후 9만여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지난 12월 14일 오후 양평미술관을 찾아 이철순관장을 만났다.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미술관이 지역사회에 조용하지만 의미심장한 문화적 쇼크를 주며 문을 연 지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관장으로서 감회가 남다르실 듯합니다만.</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모든 일이 맨 처음의 어려움이 크지만 보람도 크기 마련입니다. 시설의 기능을 확장하고 아트센터 역할에 적정한 공간확보와 개조, 운영방안 정립 등에 전직원이 나선 덕분에 애초의 목적인 가족미술관 정착에 안착했다는 게 제일 큰 보람입니다.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개관 배경과 1년 동안의 발자취를 간추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6년 전에 김문수도지사께서 양평 미술인의 건의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게 실질적인 출발이지만, 양평군에서도 미술관 건립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예산상의 문제가 국도비 확보로 해결되자, 군단위에는 거의 없는 공립미술관이 문을 열게 된 것이죠.
1년 동안, 앞으로도 제가 있는 동안은 변함이 없겠지만, 양평미술관은 문턱을 낮추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미술관이라고 꼭 고품격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요. 더욱이 소수만 누리는 예술을 공공기관에서 고집한다는 건 횡포에 가깝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통상 예술인구를 전체인구의 1퍼센트 미만으로 추정하는 게 관례인데, 그렇게 보자면 양평인구 10만 가운데 1천명 정도가 미술관 소비자 규모 아니겠어요?
천명을 바라보고 군립미술관을 운영한다? 있을 수 없는 얘기죠. 다른 미술관들은 무엇을 지향하든, 저는 양평군립미술관만큼은 누구나 와서 편히 쉬고 즐겁고 재미있게 놀다가는 공간으로, 그러면서 일상에서도 예술의 기쁨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래서 개관전 이름을 ‘마법의 나라 양평’으로 명명했습니다. 방학이 되도 딱히 갈 곳이 없던 양평의 청소년들이 부모 손잡고 줄을 이어 찾아오는 데 정말 기뻤어요. 관람객 외연을 넓히려는 의도가 적중한 것도 큰 기쁨이었지만, 온 가족이 함께 즐겁게 예술을 만끽하는 모습은 제 일생의 목표이기도 하거든요.
그간 10건 정도의 전시를 치렀는데, 한 전시가 끝나자마자 다음 전시를 준비해야 하는 강행군의 연속이라 직원들도 많이 지쳐 있습니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더욱 보람이 큽니다. </b>
더러 아이들과 양평미술관을 찾았노라 말하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아직은 미술관을 강 건너 등불 같은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툭 깨놓고 말하자면, 먹고살기 바쁜데 거기 갈 시간이 어디 있냐, 와 미술이 또는 예술이 밥 먹여주냐, 가 아직은 지역보편의 인식이다. 필자 역시 미술관 안에 들어가면 그냥 왠지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자동적으로 슬며시 낯이 간지럽고 발걸음이 부자연스러워지고 시선 둘 데가 애매해진다. 사진은 만만한데 왜 그림은 껄쩍지근한 것일까.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미술은 배부른 사람들의 전유물쯤으로 여기는 게 양평군민뿐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시각입니다.
좀 쉽게 미술을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요령이랄까 지혜가 없을는지요? </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관람객이 예술을 두려워하고 대상도 두려워하는 잠재의식은 어느 나라나 보편적인 문화소비행태입니다. 누구나 처음 미술관을 찾거나 오페라 극장을 찾으면 긴장하기 마련이고, 괜한 실수나 해서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모르지만 좀 아는 척해야 하지 않나 등등의 쓸 데 없는 걱정을 하기 마련이죠.
보편적인 예술소비 행태가 바뀌기를 바라기보단 미술관이 스스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미술관이 마법의 나라 양평 외에도 신나는 미술, 맛의 나라 양평 등 흔히 사용하는 익숙한 어휘로 전시명을 정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이 아니라 구경하는 마음으로 미술관 문턱을 넘게 하고 싶은 거죠. 예술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의미전달도 불분명한 어려운 전시명을 거는 자체가 미술관 스스로의 장벽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전시명이 쉽다고 전시자체도 허술하게 구성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극사실주위 혹은 미니멀리즘 따위의 말은 한 마디도 쓰지 않고 전시를 홍보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어느 미술관보다 까다롭고 세심하게 그리고 엄중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전시명 속에 숨어 있는 지향성에서부터, 그 지향성을 충족할 수 있는 작가선정 그리고 설치기법에 이르기까지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간 양평미술관 전시 참여작가들은 한국화단의 톱클래스와 지명도는 높지 않지만 실력은 공인 받은, 정말 좋은 작가군이었습니다. 외부에서 많은 비평가와 미술계 인사들이 별 기대 없이 찾아왔다가 깜짝깜짝 놀라고들 갔습니다. 다른 지역 미술관들처럼 반 아마추어 작가가 판을 치겠지 하고 우습게 여겼다가 와서 보니 장난이 아니다, 하는 게 중평입니다.
비슷한 말이겠지만, 우리 양평미술관은 관람객을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람객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관람객들이 낙서처럼 혹은 정성 들여 남겨주신 방문소감이나 그림 등을 늘 유심히 챙겨보고 있습니다. 항상 관람객을 귀한 손님으로 맞는 자세, 이게 양평군립미술관의 모토인 거죠.</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기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양평미술관의 운영기조는 픽스( PICS)입니다. 플랜(plan : 계획) , 인터렉티브(interactive: 상호작용적), 크리에이티브(creative : 창의적), 스페셜(special : 특별한), 이 네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인데, 여기에 우리 미술관뿐 아니라 모든 문화예술 공급자의 지침이 담겨 있다는 게 제 신조입니다.
또 저 혼자서는 ‘뉴욕보다 나은 : better than Newyork’을 늘 상기하고 있어요. 뉴욕보다 더 다양성을 수용하고, 뉴욕보다 더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하고, 뉴욕보다 더 수준이 높은 미술관을 늘 목적하고 또 꿈꾸는 거죠.
우리 미술관은 관람객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관람평을 자유롭게 그림으로 남겨주기를 부탁하고 있어요. 전시마다 최하 1천여명이 그림을 남기는 데, 이거야 말로 진정한 인터렉티브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나고 소중한 정보를 저희들에게 주는 거죠. 우리가 제대로 미술관을 꾸려가고 있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일깨워주는 겁니다.
요즘 해외여행 안 가 본 사람 드뭅니다. 현지에 가면 거의 미술관 관람이 코스에 껴 있는데, 우리는 소도시 미술관이니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론 버틸 수가 없어요. 2류 3류로 연명하려는 자세로 운영하려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지 않겠어?
물론 어려운 점도 많죠. 정통미술관은 수십만점의 자체 보유작품으로 기획하면 되지만, 몇몇 미술관을 빼고 대다수 국내 미술관처럼 우리 미술관도 전시할 때마다 매번 뜻을 같이 하는 작가를 섭외해야하고, 정말 마른 수건 짜내 듯해야 하는 예산으로 준비해야 하고, 거기다 좋은 작가들이 뜻을 모아줄 수 있는 주제설정과 기획, 또 관람객의 반응까지 예견해야 하는, 적은 인원으로 해내기는 참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는 거죠. </b>
이철순 관장을 만난 건 취임 이후이지만, 예전부터 지인들과 오가는 말속에서 더러더러 이름은 들었다. 예술의전당에서 근무한다는 거, 지지지난 대선 때 유력후보의 공약집 문화예술정책 부분을 집필했다는 거 등등의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다. 어떤 행로를 거쳐 양평미술관, 양평의 첫 번 째 번듯한 문화예술공간에 장으로 취임했는지는 여전히 궁금했다.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예술의 전당에서 오래 재직하시다가 관장에 취임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간의 공적 그리고 개인적 문화활동을 간추려 말씀해주시겠습니까?</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직업으로서 해온 일이 있고, 제 나름대로의 사회적 임무를 자임한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예술의전당 공채 1기 창립멤버로서 정말 후회 없이 보람차게 25년을 전당에서 근무했습니다. 평직원으로 입사해서, 홍보 공연 홍보 사업개발 등 예술의전당 전체 영역에서 근무했으며 예술국장을 지냈습니다. 예술국장은 예술의전당의 음악당 미술관 서예관 오페라극장 등 모든 예술기능을 총괄하는 자리이며, 임명제인 사장을 제외하면 전권을 지닌 위치여서 정말 보람이 컸습니다. 특히 예술의전당이 대한민국 전체 예술관의 전범이 되는 데 일조한 거는 두고두고 뿌득한 일이죠.
개인적으로는 95년에 양평으로 이주, 98년 예술인협회 발족에서부터 제 1회 맑은물사랑예술제까지 기획하고 또 나름대로 역할을 다했죠. 특히 99년 중미산 숲속의 음악회가 기억에 뚜렷합니다. 제 본업과 병행하느라 낮에는 팩스를 주고받으며 업무를 봤고, 저녁에는 밤이 늦도록 예총사무실에 머무르곤 했죠.
그러다가 제가 살고 있는 서종면에 주력하게 됐습니다. 서종초등학교에서 미술특강을 시작으로 여러 분야의 예술교육에 나섰고, 동지자적 입장에 있던 분들과 주민모임 ‘서종사람들’을 발족해서 지역문화운동에 꾸준히 정성을 기울였어요. 대표적인 게 ‘우리 동네 음악회’인데 벌써 127회를 맞았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에 찬사를 받았는데 정작 어설픈 지역문화공연은 장관상을 받고 저희 음악회는 아무런 공식적인 예우를 받지 못했어요. 좀 씁쓸하긴 하죠. 그게 행정기관의 추천으로 문광부 심사목록에 오르는 성격이라 더 마음이 편치 않아요. 그간 같이 고생해오신 분들에게 면목도 없고.</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미술관 운영에서 양평군과의 갈등이 없지 않았겠네요?</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얼마 전에 영국의 바티칸 센터와 섹스피어 극단 간의 충돌이 많이 회자되었는데요. 둘 다 내놓아라하는 세계적 예술집단인데, 극단 측에서는 저 따위 행정조직과는 도저히 같이 공연 못 하겠다 또 센터 쪽에서는 저 따위 공연단체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하고 싸움이 대단했죠. 그만큼 예술행위자와 집행조직과의 간극은 국경이 따로 없습니다.
양평군과는 중간에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충분히 논의하고 공감대를 이끌어내서 미술관 공간구성 확보 등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운영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집행과정이나 추진동력 등 주변 시스템 자체가 한 마디로 중앙부처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중앙부처에 있는 공직자들을 만나면 ‘선배님, 제가 도와줄 게 뭐 없나요?’하는 식의 반응으로 시작되거든요. 지원처에서 성과가 나면 다 자기 업적이니 이게 당연한 자세일 텐데, 양평군은 전혀 달라요.
양평군 공무원들은 민간인들을 너무 안 믿어줍니다. 제 자랑 같아서 좀 그렇지만 제가 그래도 이 분야에서는 공인해주는, 공공기관에서의 예술행정의 첫 세대, 예술경영의 1세대인데 전혀 존중해주질 않습니다. 전문가의 의견인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묵살하기 일쑤인데 이걸 매번 극복해내기가 지독하게 고통스럽습니다.
사람 귀한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어요. 관장이든 큐레이터든 우선은 생활인 아닙니까? 그에 준하는 대우는 고사하고 전문인에 대한 예우 따위도 찾아보기 힘들어요. 아직도 관청 그리고 공무원이 일반주민이나 전문가를 휘하에 두려고 하고, 자기들 눈높이에서 매사를 처리하려고 들어서야 예술분야는 물론이고 어찌 지역발전이 이뤄지겠습니까? </b>
말로는 만날 지역주민이 주인이라고 떠받들고 있는데 정작 양평군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고 있는 군민 대다수는 아직도 양평군 공무원의 처신에 불만이 많다. 특히 양평군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입장의 군민, 즉 사업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예산을 지원 받아야 하는 사람 등등은 치사해서 더러워서 등등의 소감을 밝히기 예사이다. 말단공무원까지 죄다 투표로 뽑을 수도 없고 좀체 해결방안이 나오지 않는 구석이다. 차분히 자신의 견해를 밝히다가 돌연 흥분하는 이철순관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서둘러 다음 질문을 던졌다.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구상중인 앞으로의 전시를 소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1년이 지났으니까 시즌제를 안착을 시키고, 기본 프레임과 콘텐츠를 업그레이드하고, 여태까지는 국내중심으로 해왔지만 좀 더 대상범위를 국제적으로 확대해서 질적 상승을 꾀하려고 계획 중입니다.</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특히 지역사회청소년과 미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쓰고 계신데, 미술이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얼마 전에, 지인들과 어렸을 적 얘기를 하다가 ‘나는 어렸을 때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을 보고 무서워서 잠을 못 잤다.’는 소리를 하니까 의외로 비슷한 경험을 겪은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 동화책의 문자 부분보다도 삽화가 더욱 무섭게 각인되었다는 점도 비슷하더라구요. 이렇듯 그림 자체는 강하게 받아지고 흡수되는 겁니다. 오감 중에서 제일 쉽게 반응하는 게 음악 같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시각적인 게 가장 쉽게 받아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색감이라는 거, 즉 아름답고 추하게 보여지는 건 거의 본능적인 요소가 아니겠습니까?
수학은 논리보다도 상상력이 원천입니다. 논리만 외워서는 어느 단계에서 멈춰버리는 거죠. 거기에 상상력이 더해져야지만 무수한 과학적 발전이 이뤄지는 겁니다. 밤에도 대낮처럼 밝았으면 좋겠다는 상상이 없었다면 전기 자체도 발명되지 않았겠죠. 미술은 상상력을 키우는 촉진제입니다. 더불어 모든 예술을 무리 없이 접촉하게 만드는 훌륭한 교사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은 어느 과목의 연마보다 중요합니다. 어떤 학문이든 상상력이 배제되면 그건 그야말로 죽어버린 박제된 능력에 불과하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상상력, 이거야 말로 이 시대 최고의 경쟁력입니다.</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에서 가장 시급한 문화예술 분야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여기십니까?</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더 많은 군민이 문화예술을 즐기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 분야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역예술인들이 더 좋은 공연과 작품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양평군이 크게 각성해야 합니다.
말뿐인 문화예술 진흥이 아니라 실체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죠. 적절한 예산수립, 냉정한 평가, 전문가의 의견 수렴 등이 선결과제입니다. 주민자치시대에서 군민의 지지 혹은 동의 없이 어떻게 문화예술분야가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군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문화예술이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체험하고 체득하고 일상화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또 제도적으로 보장해줘야 하는 것이죠. 지금처럼 전시적인 성격에 안주하고, 아마추어와 예술가도 구분하지 못하는 안목으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양평군이 정말 심각하게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b>
양평에서, 예술한다는 사람 만나기는 여의도에서, 정치한다는 사람만나기보다 쉽다. 그렇게 양평에 흔한 게 예술가라면 양평은 예술적인 분위기가 철철 넘쳐야할 터인데 별로 그렇지는 않은 듯싶다. 초청장이 와서, 이런저런 알음알음으로 찾아간 관내 공연장에서 저런 것도 공연에 속하는 건지 아리송할 때가 적잖다. 하긴, 정치하는 사람 많다고 정치가 잘 돌아가는 것도 아니니까.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은 미술인 인구분포가 국내 최고이며 국제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치라는 데, 미술인과 지역사회와의 바람직한 교류 즉 미술인과 지역사회가 사이좋게 발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평소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아직도 일반주민 입장에서는 예술인들이 빈둥빈둥 놀고먹는 사람 정도로 취급하기 딱 좋은 정도입니다. 예술가의 속성 자체가 그렇게 보일 소지가 많아서이겠죠. 예술가라는 게 원래 남의 간섭이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특성이 있지 않습니까? 또 나보다 나은 작가가 어디 있냐, 하는 식의 오만이라면 오만이랄까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보니 일반주민과의 관계가 그다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는 부분이 있죠.
물론 예술가들도 주변 분들과 잘 지내려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주민들께서도 예술가를 이해하고 또 포용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솔직히 요즘 양평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진 데에는 예술가들의 공이 크지 않습니까? 예술가들에게 봉사만 기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처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줘야 하고, 예술인도 생활인이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춥고 배고프면 예술가의 창의성도 빈약해지는 겁니다. 예술가의 삶의 방식이나 예술작업을 일반적인 시각, 그리고 행정의 경직성과 합리성만 갖고 재단해서는 해답이 없는 거죠.</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개관 1주년을 맞아 양평군민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미술관 사랑해주시고, 양평의 자랑으로 여겨주십시오.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친인척들이 양평에 와서, 어디 갈 데 없어, 하고 물어보면 꼭 양평미술관을 추천해주십시오.
현재 양평미술관에는 춘천 속초 대천 화성 강남구 서초구 안산 인천 등 전국에서 오신 분들이 남겨놓은 관람평이나 방명록이 엄청납니다. 양평만이 아니라 전국미술관으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들이죠. 애초에 양평미술관 방문 목적으로 오셔서 콘도나 펜션에 묵고 또 양평을 여행하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군민 여러분께 꼭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시면 양평미술관은 양평의 문화예술 발전을 넘어 지역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걸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관내 작가분들에도 전할 말씀이 있을 것 같으신데?</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양평군민 범주의 관람은 기본 미션입니다.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저는 양평미술관을 전국구미술관으로 성장시키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시자체가 다양하고 일정수준을 지켜야 하며, 미술시장의 트랜드를 다 담아내어야 하며, 소비자 만족도를 높여야만 합니다. 관내작가만을 위한 전시로는 불가능한 계획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다보니 관내작가의 발표기회가 상대적으로 제한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죄송스럽습니다만 이해를 구할 뿐입니다. 제가 관장으로 있는 동안은 제 소신과 비전을 펼치고 싶습니다. 제 딴에는 전시성격에 맞는 관내작가들을 우선 선정하는 데 노력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내작가 모두가 적합한 공간에서 전시하실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거로 예상하고 있음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b>
양평군립미술관과 유사한 규모의 미술관들은 연평군 적게는 1만명 턱걸이, 많게는 3만명 약간 웃도는 관람객이 찾는다고 한다. 양평미술관은 개관 1년 동안 관람객 9만명을 넘겼다. 물론 머릿수만 갖고 미술관의 성패를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은 예산만 잡아먹는 시설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미술관은 미술인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술관은 미술인의 공간이 아니라 관람객의 공간이다. 양평군립미술관은 말 그래도 양평군민의 공간인 것이다.
<b>- 2012. 1. 30 YPN칼럼 ‘미술도 양평의 특산품이다’에서 발췌-
양평에서 미술인은 아직 이방인이다. 이사 온 지 10년이든 20년이든 여전히 양평군민이 아니라 서울사람 대접을 받는다. 양평의 배타성에 절반의 책임이, 미술인의 사회성에 절반의 책임이 있다. 양평에서 태어나야 양평군민이라는 옹졸한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애향심을 지녀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지녀야 할 것이다.
양평군립 미술관은 양평에 사는 미술인을 양평군민으로 받아들이는 공간이며, 양평에 사는 미술인이 자신의 창작터전이 이곳 양평임을 되새기는 공간이다. 미술의 문외한이든, 미술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든 양평에 사는 사람 모두가 오가는 길에 한 번쯤은 들려야 할 곳이다. 수준급의 미술관 관람이 청소년 인성교육에 대단히 좋다니까 자녀가 있는 사람에겐 더욱 필수코스다. 저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이 내 이웃임을 기뻐하고, 자신의 작품에 찬탄하는 사람이 내 이웃임을 기뻐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양평에서 사는 즐거움도 커지지 않겠는가.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이왕이면 더 즐거운 양평’으로 이어지면 참 좋지 않겠는가. </b>
양평미술관이 개관한 이후 미술관 외벽 상단에는 개최 중인 전시회 알림 광고가 늘 자리 잡고 있다. 전시명과 간결한 이미지 부착물만으로도 문화원 삼거리의 풍경과 양평전반의 느낌을 크게 변모시켜왔다. 방문객도 줄을 이어 개관 이후 9만여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지난 12월 14일 오후 양평미술관을 찾아 이철순관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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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미술관이 지역사회에 조용하지만 의미심장한 문화적 쇼크를 주며 문을 연 지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관장으로서 감회가 남다르실 듯합니다만.</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모든 일이 맨 처음의 어려움이 크지만 보람도 크기 마련입니다. 시설의 기능을 확장하고 아트센터 역할에 적정한 공간확보와 개조, 운영방안 정립 등에 전직원이 나선 덕분에 애초의 목적인 가족미술관 정착에 안착했다는 게 제일 큰 보람입니다.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개관 배경과 1년 동안의 발자취를 간추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6년 전에 김문수도지사께서 양평 미술인의 건의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게 실질적인 출발이지만, 양평군에서도 미술관 건립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예산상의 문제가 국도비 확보로 해결되자, 군단위에는 거의 없는 공립미술관이 문을 열게 된 것이죠.
1년 동안, 앞으로도 제가 있는 동안은 변함이 없겠지만, 양평미술관은 문턱을 낮추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미술관이라고 꼭 고품격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요. 더욱이 소수만 누리는 예술을 공공기관에서 고집한다는 건 횡포에 가깝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통상 예술인구를 전체인구의 1퍼센트 미만으로 추정하는 게 관례인데, 그렇게 보자면 양평인구 10만 가운데 1천명 정도가 미술관 소비자 규모 아니겠어요?
천명을 바라보고 군립미술관을 운영한다? 있을 수 없는 얘기죠. 다른 미술관들은 무엇을 지향하든, 저는 양평군립미술관만큼은 누구나 와서 편히 쉬고 즐겁고 재미있게 놀다가는 공간으로, 그러면서 일상에서도 예술의 기쁨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래서 개관전 이름을 ‘마법의 나라 양평’으로 명명했습니다. 방학이 되도 딱히 갈 곳이 없던 양평의 청소년들이 부모 손잡고 줄을 이어 찾아오는 데 정말 기뻤어요. 관람객 외연을 넓히려는 의도가 적중한 것도 큰 기쁨이었지만, 온 가족이 함께 즐겁게 예술을 만끽하는 모습은 제 일생의 목표이기도 하거든요.
그간 10건 정도의 전시를 치렀는데, 한 전시가 끝나자마자 다음 전시를 준비해야 하는 강행군의 연속이라 직원들도 많이 지쳐 있습니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더욱 보람이 큽니다. </b>
더러 아이들과 양평미술관을 찾았노라 말하는 사람이 없지 않지만, 아직은 미술관을 강 건너 등불 같은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툭 깨놓고 말하자면, 먹고살기 바쁜데 거기 갈 시간이 어디 있냐, 와 미술이 또는 예술이 밥 먹여주냐, 가 아직은 지역보편의 인식이다. 필자 역시 미술관 안에 들어가면 그냥 왠지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자동적으로 슬며시 낯이 간지럽고 발걸음이 부자연스러워지고 시선 둘 데가 애매해진다. 사진은 만만한데 왜 그림은 껄쩍지근한 것일까.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미술은 배부른 사람들의 전유물쯤으로 여기는 게 양평군민뿐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시각입니다.
좀 쉽게 미술을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요령이랄까 지혜가 없을는지요?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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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관람객이 예술을 두려워하고 대상도 두려워하는 잠재의식은 어느 나라나 보편적인 문화소비행태입니다. 누구나 처음 미술관을 찾거나 오페라 극장을 찾으면 긴장하기 마련이고, 괜한 실수나 해서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모르지만 좀 아는 척해야 하지 않나 등등의 쓸 데 없는 걱정을 하기 마련이죠.
보편적인 예술소비 행태가 바뀌기를 바라기보단 미술관이 스스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미술관이 마법의 나라 양평 외에도 신나는 미술, 맛의 나라 양평 등 흔히 사용하는 익숙한 어휘로 전시명을 정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이 아니라 구경하는 마음으로 미술관 문턱을 넘게 하고 싶은 거죠. 예술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의미전달도 불분명한 어려운 전시명을 거는 자체가 미술관 스스로의 장벽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전시명이 쉽다고 전시자체도 허술하게 구성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극사실주위 혹은 미니멀리즘 따위의 말은 한 마디도 쓰지 않고 전시를 홍보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어느 미술관보다 까다롭고 세심하게 그리고 엄중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전시명 속에 숨어 있는 지향성에서부터, 그 지향성을 충족할 수 있는 작가선정 그리고 설치기법에 이르기까지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간 양평미술관 전시 참여작가들은 한국화단의 톱클래스와 지명도는 높지 않지만 실력은 공인 받은, 정말 좋은 작가군이었습니다. 외부에서 많은 비평가와 미술계 인사들이 별 기대 없이 찾아왔다가 깜짝깜짝 놀라고들 갔습니다. 다른 지역 미술관들처럼 반 아마추어 작가가 판을 치겠지 하고 우습게 여겼다가 와서 보니 장난이 아니다, 하는 게 중평입니다.
비슷한 말이겠지만, 우리 양평미술관은 관람객을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람객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관람객들이 낙서처럼 혹은 정성 들여 남겨주신 방문소감이나 그림 등을 늘 유심히 챙겨보고 있습니다. 항상 관람객을 귀한 손님으로 맞는 자세, 이게 양평군립미술관의 모토인 거죠.</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기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양평미술관의 운영기조는 픽스( PICS)입니다. 플랜(plan : 계획) , 인터렉티브(interactive: 상호작용적), 크리에이티브(creative : 창의적), 스페셜(special : 특별한), 이 네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인데, 여기에 우리 미술관뿐 아니라 모든 문화예술 공급자의 지침이 담겨 있다는 게 제 신조입니다.
또 저 혼자서는 ‘뉴욕보다 나은 : better than Newyork’을 늘 상기하고 있어요. 뉴욕보다 더 다양성을 수용하고, 뉴욕보다 더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하고, 뉴욕보다 더 수준이 높은 미술관을 늘 목적하고 또 꿈꾸는 거죠.
우리 미술관은 관람객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관람평을 자유롭게 그림으로 남겨주기를 부탁하고 있어요. 전시마다 최하 1천여명이 그림을 남기는 데, 이거야 말로 진정한 인터렉티브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나고 소중한 정보를 저희들에게 주는 거죠. 우리가 제대로 미술관을 꾸려가고 있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일깨워주는 겁니다.
요즘 해외여행 안 가 본 사람 드뭅니다. 현지에 가면 거의 미술관 관람이 코스에 껴 있는데, 우리는 소도시 미술관이니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론 버틸 수가 없어요. 2류 3류로 연명하려는 자세로 운영하려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지 않겠어?
물론 어려운 점도 많죠. 정통미술관은 수십만점의 자체 보유작품으로 기획하면 되지만, 몇몇 미술관을 빼고 대다수 국내 미술관처럼 우리 미술관도 전시할 때마다 매번 뜻을 같이 하는 작가를 섭외해야하고, 정말 마른 수건 짜내 듯해야 하는 예산으로 준비해야 하고, 거기다 좋은 작가들이 뜻을 모아줄 수 있는 주제설정과 기획, 또 관람객의 반응까지 예견해야 하는, 적은 인원으로 해내기는 참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는 거죠. </b>
이철순 관장을 만난 건 취임 이후이지만, 예전부터 지인들과 오가는 말속에서 더러더러 이름은 들었다. 예술의전당에서 근무한다는 거, 지지지난 대선 때 유력후보의 공약집 문화예술정책 부분을 집필했다는 거 등등의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다. 어떤 행로를 거쳐 양평미술관, 양평의 첫 번 째 번듯한 문화예술공간에 장으로 취임했는지는 여전히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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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예술의 전당에서 오래 재직하시다가 관장에 취임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간의 공적 그리고 개인적 문화활동을 간추려 말씀해주시겠습니까?</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직업으로서 해온 일이 있고, 제 나름대로의 사회적 임무를 자임한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예술의전당 공채 1기 창립멤버로서 정말 후회 없이 보람차게 25년을 전당에서 근무했습니다. 평직원으로 입사해서, 홍보 공연 홍보 사업개발 등 예술의전당 전체 영역에서 근무했으며 예술국장을 지냈습니다. 예술국장은 예술의전당의 음악당 미술관 서예관 오페라극장 등 모든 예술기능을 총괄하는 자리이며, 임명제인 사장을 제외하면 전권을 지닌 위치여서 정말 보람이 컸습니다. 특히 예술의전당이 대한민국 전체 예술관의 전범이 되는 데 일조한 거는 두고두고 뿌득한 일이죠.
개인적으로는 95년에 양평으로 이주, 98년 예술인협회 발족에서부터 제 1회 맑은물사랑예술제까지 기획하고 또 나름대로 역할을 다했죠. 특히 99년 중미산 숲속의 음악회가 기억에 뚜렷합니다. 제 본업과 병행하느라 낮에는 팩스를 주고받으며 업무를 봤고, 저녁에는 밤이 늦도록 예총사무실에 머무르곤 했죠.
그러다가 제가 살고 있는 서종면에 주력하게 됐습니다. 서종초등학교에서 미술특강을 시작으로 여러 분야의 예술교육에 나섰고, 동지자적 입장에 있던 분들과 주민모임 ‘서종사람들’을 발족해서 지역문화운동에 꾸준히 정성을 기울였어요. 대표적인 게 ‘우리 동네 음악회’인데 벌써 127회를 맞았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에 찬사를 받았는데 정작 어설픈 지역문화공연은 장관상을 받고 저희 음악회는 아무런 공식적인 예우를 받지 못했어요. 좀 씁쓸하긴 하죠. 그게 행정기관의 추천으로 문광부 심사목록에 오르는 성격이라 더 마음이 편치 않아요. 그간 같이 고생해오신 분들에게 면목도 없고.</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미술관 운영에서 양평군과의 갈등이 없지 않았겠네요?</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얼마 전에 영국의 바티칸 센터와 섹스피어 극단 간의 충돌이 많이 회자되었는데요. 둘 다 내놓아라하는 세계적 예술집단인데, 극단 측에서는 저 따위 행정조직과는 도저히 같이 공연 못 하겠다 또 센터 쪽에서는 저 따위 공연단체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하고 싸움이 대단했죠. 그만큼 예술행위자와 집행조직과의 간극은 국경이 따로 없습니다.
양평군과는 중간에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충분히 논의하고 공감대를 이끌어내서 미술관 공간구성 확보 등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운영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집행과정이나 추진동력 등 주변 시스템 자체가 한 마디로 중앙부처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중앙부처에 있는 공직자들을 만나면 ‘선배님, 제가 도와줄 게 뭐 없나요?’하는 식의 반응으로 시작되거든요. 지원처에서 성과가 나면 다 자기 업적이니 이게 당연한 자세일 텐데, 양평군은 전혀 달라요.
양평군 공무원들은 민간인들을 너무 안 믿어줍니다. 제 자랑 같아서 좀 그렇지만 제가 그래도 이 분야에서는 공인해주는, 공공기관에서의 예술행정의 첫 세대, 예술경영의 1세대인데 전혀 존중해주질 않습니다. 전문가의 의견인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묵살하기 일쑤인데 이걸 매번 극복해내기가 지독하게 고통스럽습니다.
사람 귀한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어요. 관장이든 큐레이터든 우선은 생활인 아닙니까? 그에 준하는 대우는 고사하고 전문인에 대한 예우 따위도 찾아보기 힘들어요. 아직도 관청 그리고 공무원이 일반주민이나 전문가를 휘하에 두려고 하고, 자기들 눈높이에서 매사를 처리하려고 들어서야 예술분야는 물론이고 어찌 지역발전이 이뤄지겠습니까? </b>
말로는 만날 지역주민이 주인이라고 떠받들고 있는데 정작 양평군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고 있는 군민 대다수는 아직도 양평군 공무원의 처신에 불만이 많다. 특히 양평군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입장의 군민, 즉 사업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예산을 지원 받아야 하는 사람 등등은 치사해서 더러워서 등등의 소감을 밝히기 예사이다. 말단공무원까지 죄다 투표로 뽑을 수도 없고 좀체 해결방안이 나오지 않는 구석이다. 차분히 자신의 견해를 밝히다가 돌연 흥분하는 이철순관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서둘러 다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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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구상중인 앞으로의 전시를 소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1년이 지났으니까 시즌제를 안착을 시키고, 기본 프레임과 콘텐츠를 업그레이드하고, 여태까지는 국내중심으로 해왔지만 좀 더 대상범위를 국제적으로 확대해서 질적 상승을 꾀하려고 계획 중입니다.</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특히 지역사회청소년과 미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쓰고 계신데, 미술이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얼마 전에, 지인들과 어렸을 적 얘기를 하다가 ‘나는 어렸을 때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을 보고 무서워서 잠을 못 잤다.’는 소리를 하니까 의외로 비슷한 경험을 겪은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 동화책의 문자 부분보다도 삽화가 더욱 무섭게 각인되었다는 점도 비슷하더라구요. 이렇듯 그림 자체는 강하게 받아지고 흡수되는 겁니다. 오감 중에서 제일 쉽게 반응하는 게 음악 같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시각적인 게 가장 쉽게 받아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색감이라는 거, 즉 아름답고 추하게 보여지는 건 거의 본능적인 요소가 아니겠습니까?
수학은 논리보다도 상상력이 원천입니다. 논리만 외워서는 어느 단계에서 멈춰버리는 거죠. 거기에 상상력이 더해져야지만 무수한 과학적 발전이 이뤄지는 겁니다. 밤에도 대낮처럼 밝았으면 좋겠다는 상상이 없었다면 전기 자체도 발명되지 않았겠죠. 미술은 상상력을 키우는 촉진제입니다. 더불어 모든 예술을 무리 없이 접촉하게 만드는 훌륭한 교사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은 어느 과목의 연마보다 중요합니다. 어떤 학문이든 상상력이 배제되면 그건 그야말로 죽어버린 박제된 능력에 불과하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상상력, 이거야 말로 이 시대 최고의 경쟁력입니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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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에서 가장 시급한 문화예술 분야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여기십니까?</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더 많은 군민이 문화예술을 즐기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 분야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지역예술인들이 더 좋은 공연과 작품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양평군이 크게 각성해야 합니다.
말뿐인 문화예술 진흥이 아니라 실체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죠. 적절한 예산수립, 냉정한 평가, 전문가의 의견 수렴 등이 선결과제입니다. 주민자치시대에서 군민의 지지 혹은 동의 없이 어떻게 문화예술분야가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군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문화예술이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체험하고 체득하고 일상화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또 제도적으로 보장해줘야 하는 것이죠. 지금처럼 전시적인 성격에 안주하고, 아마추어와 예술가도 구분하지 못하는 안목으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양평군이 정말 심각하게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b>
양평에서, 예술한다는 사람 만나기는 여의도에서, 정치한다는 사람만나기보다 쉽다. 그렇게 양평에 흔한 게 예술가라면 양평은 예술적인 분위기가 철철 넘쳐야할 터인데 별로 그렇지는 않은 듯싶다. 초청장이 와서, 이런저런 알음알음으로 찾아간 관내 공연장에서 저런 것도 공연에 속하는 건지 아리송할 때가 적잖다. 하긴, 정치하는 사람 많다고 정치가 잘 돌아가는 것도 아니니까.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은 미술인 인구분포가 국내 최고이며 국제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치라는 데, 미술인과 지역사회와의 바람직한 교류 즉 미술인과 지역사회가 사이좋게 발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평소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아직도 일반주민 입장에서는 예술인들이 빈둥빈둥 놀고먹는 사람 정도로 취급하기 딱 좋은 정도입니다. 예술가의 속성 자체가 그렇게 보일 소지가 많아서이겠죠. 예술가라는 게 원래 남의 간섭이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특성이 있지 않습니까? 또 나보다 나은 작가가 어디 있냐, 하는 식의 오만이라면 오만이랄까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보니 일반주민과의 관계가 그다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는 부분이 있죠.
물론 예술가들도 주변 분들과 잘 지내려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주민들께서도 예술가를 이해하고 또 포용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솔직히 요즘 양평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진 데에는 예술가들의 공이 크지 않습니까? 예술가들에게 봉사만 기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처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줘야 하고, 예술인도 생활인이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춥고 배고프면 예술가의 창의성도 빈약해지는 겁니다. 예술가의 삶의 방식이나 예술작업을 일반적인 시각, 그리고 행정의 경직성과 합리성만 갖고 재단해서는 해답이 없는 거죠.</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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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개관 1주년을 맞아 양평군민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미술관 사랑해주시고, 양평의 자랑으로 여겨주십시오.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친인척들이 양평에 와서, 어디 갈 데 없어, 하고 물어보면 꼭 양평미술관을 추천해주십시오.
현재 양평미술관에는 춘천 속초 대천 화성 강남구 서초구 안산 인천 등 전국에서 오신 분들이 남겨놓은 관람평이나 방명록이 엄청납니다. 양평만이 아니라 전국미술관으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들이죠. 애초에 양평미술관 방문 목적으로 오셔서 콘도나 펜션에 묵고 또 양평을 여행하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군민 여러분께 꼭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시면 양평미술관은 양평의 문화예술 발전을 넘어 지역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걸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관내 작가분들에도 전할 말씀이 있을 것 같으신데?</b>
<b><font color=green>이철순 :</font> 양평군민 범주의 관람은 기본 미션입니다.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저는 양평미술관을 전국구미술관으로 성장시키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시자체가 다양하고 일정수준을 지켜야 하며, 미술시장의 트랜드를 다 담아내어야 하며, 소비자 만족도를 높여야만 합니다. 관내작가만을 위한 전시로는 불가능한 계획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다보니 관내작가의 발표기회가 상대적으로 제한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죄송스럽습니다만 이해를 구할 뿐입니다. 제가 관장으로 있는 동안은 제 소신과 비전을 펼치고 싶습니다. 제 딴에는 전시성격에 맞는 관내작가들을 우선 선정하는 데 노력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내작가 모두가 적합한 공간에서 전시하실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거로 예상하고 있음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b>
양평군립미술관과 유사한 규모의 미술관들은 연평군 적게는 1만명 턱걸이, 많게는 3만명 약간 웃도는 관람객이 찾는다고 한다. 양평미술관은 개관 1년 동안 관람객 9만명을 넘겼다. 물론 머릿수만 갖고 미술관의 성패를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은 예산만 잡아먹는 시설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미술관은 미술인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술관은 미술인의 공간이 아니라 관람객의 공간이다. 양평군립미술관은 말 그래도 양평군민의 공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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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2012. 1. 30 YPN칼럼 ‘미술도 양평의 특산품이다’에서 발췌-
양평에서 미술인은 아직 이방인이다. 이사 온 지 10년이든 20년이든 여전히 양평군민이 아니라 서울사람 대접을 받는다. 양평의 배타성에 절반의 책임이, 미술인의 사회성에 절반의 책임이 있다. 양평에서 태어나야 양평군민이라는 옹졸한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애향심을 지녀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지녀야 할 것이다.
양평군립 미술관은 양평에 사는 미술인을 양평군민으로 받아들이는 공간이며, 양평에 사는 미술인이 자신의 창작터전이 이곳 양평임을 되새기는 공간이다. 미술의 문외한이든, 미술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든 양평에 사는 사람 모두가 오가는 길에 한 번쯤은 들려야 할 곳이다. 수준급의 미술관 관람이 청소년 인성교육에 대단히 좋다니까 자녀가 있는 사람에겐 더욱 필수코스다. 저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이 내 이웃임을 기뻐하고, 자신의 작품에 찬탄하는 사람이 내 이웃임을 기뻐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양평에서 사는 즐거움도 커지지 않겠는가.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이왕이면 더 즐거운 양평’으로 이어지면 참 좋지 않겠는가. </b>
YPN뉴스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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