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는 날은 소풍가는 날 - 코레일 청룡봉사대 이신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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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하는 날은 소풍가는 날 - 코레일 청룡봉사대 이신교 회장
1899년 4월, 우리나라 최초의 기찻길이 열렸다. 인천에서 노량진까지 33.2km 구간이었는데, 선로에는 누군가 바위나 장애물을 얹어놓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배일감정도 컸지만, 기차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 속 불티가 기찻길 옆 초가삼간을 살라먹는 일이 드물지 않아 크게 공분을 산 때문이라 한다.
1939년 4월, 청량리에서 양평까지 48.9km 구간이 개통한다. 양평출신 팔순 어르신쯤 되셔야, 철마가 처음 양평에서 기적을 울리던 기억을 간직하고 계실 터이다. 모르긴 몰라도, 당시 양평은 전철개통 몇 갑절의 흥분으로 환영하고 이제 곧 엄청난 지역발전이 이어질 거라 설레었으리라. 몇 년 후에는, 지금의 양평처럼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적잖았을 것이며.
기차는 양평의 오랜 벗이다. 1시간에 한 번 떠나고 도착하는 게 고작이지만, 30분이면 청량리에 닿을 수 있어 무척 편리하고 고마운 벗이다. 또 하나의 친숙함은 철로를 보살피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철로를 보살피는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쪼개 양평사회에 그늘을 찾는 풍경 역시 낯설지 않다. 여기 YPN만 하더라도 코레일수도권동부지사 ‘청룡봉사대’ 관련기사가 10건 가까이 실려 있다.
2013년 4월 5일 양평역 시설팀 사무실을 찾았다.
<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조선일보나 KBS-TV를 비롯한 중앙언론매체에 여러 번 보도가 되었습니다만, 간추려서 그간의 활동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b>
<b><font color=green>이신교:</font> 2005년도 봄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주변에 안타까운 일이 있어서, 동료들에게 십시일반 걷어서 좀 도와주면 어떻겠는냐 물었더니 다들 좋다며 없는 주머니 털었던 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몇 년 동안은 그냥 그 정도였어요. 딱히 모임체도 만들지 않았고 회비도 없이, 참 못 본 척하기 힘든 일이 생기면 동료끼리 힘을 보태서 성금을 내곤 했죠.
그게 또 그렇더라구요. 내가 담배 한 갑, 술 한 잔 아낀 돈이 모여서 누군가한테는 큰 힘이 되는구나, 하는 걸 실감하게 되고, 그게 정말 뭐랄까 살아가는 보람, 내가 보탠 돈의 수십 수백 배의 기쁨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이왕이면 좀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해봤죠. 우리는 전부 기술직이니까 다들 전문기술 하나씩은 갖고 있으니 이걸 모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지 않을까 했던 게 ‘청룡봉사대’의 시작입니다.
처음에는 코레일 수도권동부 지역시설관리팀 200여 직원 모임 형식이었다가, 현재는 지역별로 나뉘어서 활동하고 있어요. 그게 더 책임감도 커지고, 주변의 형편도 세세히 들여다볼 수 있거든요. 원주나 춘천 지역은 저희 못잖게 활발하게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어요. 현재 양평지역의 ‘청룡봉사대’는 48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저희가 매년 12가옥의 집수리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매년 20채 정도 됩니다.</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기억에 남을 만한 봉사활동을 꼽는다면?</b>
<b><font color=green>이신교 :</font> 2008년도 용문면 다문리에 화재로 전소된 주택을 새로 지어준 겁니다. 한 달 가량 걸렸는데, 집주인 양반이 먼저 집보다 더 좋다고 아주 기뻐하시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우리 자신들도 우리가 힘을 모으면 못 할 게 없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그래서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나선 큰 계기가 됐죠.
13년 동안 한 번도 집 청소를 안 한 집을 말끔하게 치웠던 일도 기억에 남네요. 군청이나 면사무소, 그리고 주변에서도 여러 번 치워주겠다고 나섰는데 집주인이 끝까지 거절했던 집이었는데, 우리가 가서 30분 만에 설득을 해서 대청소를 했죠. 자유총연맹 양평군지부 회원들과 함께 했는데, 군청에서 지원 받은 대형 쓰레기 차량으로 2대가 넘는 분량이 나왔어요. 그렇게 작은 집에서 웬 쓰레기가 많이 나오던지... 다리를 못 쓰는 분이 혼자 살던 집이었어요.
그 뒤에도 비슷한 작업이 몇 번 있었죠. 보통사람들이 볼 때는 도저히 이해 안 되는 행동이겠지만 여러 번 그런 처지에 분들을 겪다보니까 대충 짐작이 가요. 너무나 외로우니까 자기 주변의 물건 하나하나에도 정이 들어서, 아무리 허섭쓰레기라도 내다버리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보기가 딱하죠. 쓸모없고 더러운 물건들을 마치 피붙이처럼 끌어안고 사시는 노인네들 보면 참 마음이 아파요.</b>
TV에서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면 그들의 정신상태만 의심했던 습성이 부끄러워진다. 얼마나 외로움이 사무치면 ‘쓰레기를 피붙이처럼’ 여기게 될까. 얼마나 결핍이 두려웠으면 ‘쓰레기를 피붙이처럼’ 아꼈을까. 얼마나 ‘쓰레기를 피붙이처럼’ 여기는 사람들과 가까이 해야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일까.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직장단위에서 꽤 오랜 기간 동안 흔들림 없이 봉사해 오신 비결이랄까 저력이랄까, 그러한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b>
<b><font color=green>이신교 :</font> 전부 우리 회원들 덕분이죠. 동료애의 발현이기도 하고, 봉사가 주는 기쁨을 직접 느껴보면 누가 말려도 스스로 나서게 되는 거죠.
제일 중요한 건, 욕심 내지 않는 거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정도에서 약간만 더하자 하는 수준? 봉사가 좋은 일이긴 하지만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범위까지 나서기 시작하면 금방 지치지 않을까 염려가 돼요. 내 생활의 여력을 좋은 일에 쓴다고 할까, 내 생활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하게 되면 여럿이 오래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봉사대 조직 내 갹출 이외에는 외부의 물질적 지원은 사양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더 많은 지원을 끌어들여 더 많은 봉사를 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지요?</b>
<b><font color=green>이신교 :</font> 월 1만원씩 회비를 걷고 있는데, 그 돈으로 가옥수리재료비를 충당해왔어요. 얼마 안 되는 돈이긴 하지만 회원 전부가 전문기술자라 꽤 쓰임새가 있는 액수죠. 외부 지원을 받지 않은 건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지 말자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작년부터는 집수리만큼은 양평군자원봉사센터와 같이 하고 있어요. 양평군이나 면사무소를 통해 파악되거나 요청되는 집수리 건수가 제법 되는 데, 그간 타시민단체가 열심히 감당해왔는데 갈수록 힘에 부쳤던 모양이에요. 집수리라는 게 봉사정신 만 갖고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렇다고 전문인력에게 맡길 예산도 안 되고... 양평군자원센터의 지원금은 우리를 거치지 않고 집수리 재료상으로 직접 지불됩니다. 아마 올해 630만원이 책정되었다고 하는데, 이왕이면 가장 필요한 집에 배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나저나 물가가 너무 올라서... 맨 처음 집수리 할 당시보다 지금 재료비가 한 3배는 뛴 거 같아요.</b>
뛰지도 않고 오르지도 않는 건 월급뿐이다. 지난 연말 소줏값이 크게 올랐다. 담뱃값은 거의 곱빼기로 오를 기미이다. 소주나 담배나 없는 사람의 애용품인데, 국민건강의 천적쯤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이니 공개적으로 결사반대하기도 계면쩍다. 없는 사람인데, 소주도 못 끊고 담배도 못 끊는 필자 같은 사람들은 도나 닦아서 삶의 애환을 달래야 하는 시절이다. 이도 저도 싫으면 세금인상 없는 복지증진에 이 한 몸 받쳐 봉이 될 각오를 다져야 할 시절이다.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물을 이웃에 전한 일이 제겐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요즘도 지속되고 있는지?</b>
<b><font color=green>이신교 :</font> 농사짓는 것도 우리 주력사업이에요. 개군면 석장리에 4천평 논이 있어요. 원래는 휴경지였는데 회원들이 아주 옥토로 만들어 놨죠. 지주와 3대 7로 나누는 데, 추수해서 쌀로도 나눠드리고 연탄으로 바꿔서도 나눠 드리고 있습니다. 벌써 6년이네요. 농사짓기 시작한 게.
청룡봉사대의 농사는 소풍 같아요. 회원 부인네들이 먹을 거도 싸 오고 아이들도 같이 와서 거들고. 돈으로 따지면 해가 갈수록 값어치가 떨어져서 차라리 그 공력을 다른 데 써볼까 하는 의견도 없지 않았는데, 함께 모내고 피사리내고 벼 베는 그 과정 자체가 어찌 보면 정말 소중한 거라서요. 또 우리 손으로 직접 거둔 쌀을 전한다는 의미도 크고 해서 매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발족에서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계십니다. 아무래도 가정에는 그만큼 소홀해지는 부분이 있을 텐데요?</b>
<b><font color=green>이신교 :</font> 집에서야 별로 좋아하지 않죠. 그래서 집사람 눈치 엄청나게 봅니다. 30분만 시간이 나도 텃밭 가꾸고 어지간한 집안일은 제가 알아서 찾아냅니다. 그렇게 살아요. 딸아이만 둘인데, 다 서울 나가 살고 있어요. 내외만 살고 있으니까 살림살이가 조촐한데, 집사람이야 늘 저를 제집일은 제껴두고 남의 일만 참견하는 사람이라고 투정가곤 하죠.</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자녀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가정교육은 어떤 게 있는지요.</b>
<b><font color=green>이신교 :</font> 잘 살아라, 못 살아라, 이런 얘긴 전혀 하지 않습니다. 딱 하나 귀가 닳도록 하는 말이 있긴 하죠. 남들한테 손가락질 받는 사람만큼은 절대 되지 말라, 이 말 한 마디는 자주 합니다. 저, 우리 자식들 부자 되는 거 바라지 않아요. 제가 살아보니까 돈은 다 제 복이 있더라구요. 그리고 꼭 돈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저는 청소년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을 삐뚤어진 요즘 교육열로 보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 봅시다. 요즘 교육열이 예전의 그런 거랑 같은가요, 어디? 다 남들보다 더 잘 살게 만들겠다는 욕심이죠. 잘 산다는 자체가 돈 많은 거라고 바탕에 깔고서 말이죠. 저마다의 능력이나 재주를 잘 갈고 닦아 남들이랑 같이 사이좋게 살 수 있는 사람 됨됨이가 교육목적이 돼야 할 텐데, 이거야 원 남들 이겨야 살길이 생기는 거라고 가르치고 있으니...</b>
몇 시간 전, 8시뉴스를 보다가 기가 탁 막혔다. 기자가 ‘3.1절’을 쓴 종이를 대한민국 중학교 2년생에 읽어보라니까 요 맹랑한 중학생이 소리 내어 읽기를 ‘삼점일절’이란다. 또 다른 중학생에게 ‘이완용’이 누구냐고 물으니까 ‘독립운동가’아니냐고 되묻는다. 육일승천기를 차용한 시안을 보여주니 ‘멋있다’란다. 그 문양의 뜻을 가르쳐줘도 그게 뭐 어떠냐 되묻는다. 일선학교의 교사가 학생의 일탈을 꾸짖으면 단골 대답이 ‘웬 간섭’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만큼 충격이 컸다.
반면, 얼마 전 모 기관의 설문조사 결과는 뭉클했다. 우리나라 청소년이 가장 싫어하는 인간유형에 ‘어른에게 예의 없는 사람’ ‘약자에게 으스대는 사람’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엇나가는 아이들보단 올바르게 크는 아이들이 훨씬 많음에 크게 안도했다. 아마도, 이신교 회장네처럼 ‘사람 노릇’을 제 1가훈으로 삼는 집이 ‘돈’을 가훈 삼는 집보다는 더 많은 때문이겠지.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나눔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나 참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생각하는 최선의 ‘나눔문화’ 혹은 봉사정신은 어떤 모습일는지요?</b>
<b><font color=green>이신교 :</font> 꼭 받아야 할 사람이 받는 게 돼야 합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는 말은 이제 옛날 말이에요. 지금의 공적자금 규모 보세요. 엄청나잖아요? 그 돈만 제대로 쓰면, 그 돈이 가야할 사람들에게 제대로 찾아가기만 하면 정말 비참한 일은 거의 막을 수 있어요.
가서 보면, 현장파악이 제대로 안 돼 있어요. 꼭 닿아야 할 데는 비껴가고, 엄한 데 흘러들어가고 있어요. 정말 쌀이 떨어진 집인데도, 이래서 해당 안 되고 저래서 자격미달이고. 지원금 없이도 배 두드리고 사는 집인데도, 옛다 떡 하나 더 먹어라 하는 식으로 갖다 넣고.
모든 일이 그렇지만, 나눔문화의 실천이나 봉사활동이나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감상적으로 불쑥 내밀고 다시 이어지지 않는 물질적 기부는 차라리 없는 게 나아요. 받는 사람 의타심만 키워줄 뿐입니다.
저희가 집수리를 하거나 쓰레기를 치워줄 때 꼭 10프로 정도의 일거리는 남겨둬요. 집주인한테 이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이라는 걸 넌지시 주입시켜요. 전부 남의 덕으로 이뤄진 건 오래 못 가거든요. 자기 자신의 피와 땀이 더해져야 정말 자신의 것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죠. 전에는 현금으로도 도운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끊어지기 전에 전기세 내라고 준 돈으로 술 먹는 사람이나 그 비슷한 예를 여러 번 봐왔거든요. 특히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난방비에 보태라고 드린 돈도 자식들한테 주는 분들이 많아요.</b>
지극한 자식 사랑이 징그럽고, 엄동설한을 냉방에서 버티는 부모 쌈짓돈 챙겨가는 자식이 징그럽다. 부모자식 간에 못 할 짓을 빚어내는 ‘먹고 사는 일’의 절박함이 참으로 징그럽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일도 이제 왕년의 일이 되고 말았으니 가난의 세습이 더욱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좋은 일 많이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하나 같이 ‘거저 받는 걸 당연시’하는 태도를 걱정한다. 복지정책이든 나눔 문화이든, 자활이 밑바탕에 깔리지 않으면 값싼 동정에 불과하다. 치울 쓰레기의 10분의 1은 당사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청룡봉사대의 원칙은 대한민국 복지정책의 대원칙으로 삼을 만하다. 그래서 관청은 현장을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 언제쯤에야 대한민국 행정은 책상머리를 벗어날 건지, 아득할 뿐이다.
청룡봉사대 정광모 부회장은 인터뷰 내내 침묵 속에 자리를 지켰다. 몇 번이나 권해도 사양만 했다. 이제 마무리할 때이니 강권하다시피 했다. 인터뷰 한 번 하자고 그렇게 꼬드겨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던 회장이랑 완전히 닮은꼴이다.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그 동안 부회장님도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제일 어려운 점이 어떤 건가요?</b>
<b><font color=green>정광모 :</font> 고생이야 다 같이 했죠. 저는 여기 회장님이랑 한 직장에 다니게 된 걸 그 복으로 여깁니다. 봉사의 기쁨을 가르쳐주신 분이거든요. 입에 발린 소리로 듣는 분들이 많겠지만, 정말 해보면 이거처럼 기분 좋고 힘나는 게 없어요. 봉사라는 게 남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도와준다는 건 해보면 다 알게 됩니다.
제일 신경 쓰이는 건 혹시 안전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거죠. 사고 직전까지 가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낡은 지붕 고치다 보면 발이 쑥 빠지고, 전기분야는 늘 조심해도 탈나기가 쉬우니까요. 그간 한 백 채 가까이 집을 수리했는데 별일 안 생겨서 다행이긴 하지만.</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청룡봉사대의 향후 계획이나 바람 같은 거, 이 부분도 부회장님이 말씀해주시겠습니까?</b>
<b><font color=green>정광모 :</font> 아무리 가까운 동료라고 속마음까지 다 장담할 순 없겠으나, 청룡봉사대 대원들은 봉사활동 자체가 다른 회사 동호회의 취미활동이랑 다를 게 없습니다. 봉사활동은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큰 즐거움이라는 말씀입니다. 거창한 계획은 별로 필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그저 지금 이런 마음만 바뀌지 않게 지금처럼만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정년퇴직하고 나서도 대원으로 남아 제각각 지니고 있는 기술을 이웃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입니다.</b>
나눔 문화 확산은 지역언론의 중요한 사명이다. YPN 역시 지역사회의 온정을 담아내는 데에 노력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온정을 만나게 되면 늘 떠오르는 말이 있다.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는 ‘아름다운 재단’의 슬로건이다.
청룡봉사대는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를 슬로건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봉을 쪼개고 고된 일을 더해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있다. 참된 복지국가는 국가예산 만으로 세워질 수 없다. 제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씩 덜어내 빈 그릇 하나 채우는 마음가짐이 예산보다 앞서야 할 것이다.
1939년 4월, 청량리에서 양평까지 48.9km 구간이 개통한다. 양평출신 팔순 어르신쯤 되셔야, 철마가 처음 양평에서 기적을 울리던 기억을 간직하고 계실 터이다. 모르긴 몰라도, 당시 양평은 전철개통 몇 갑절의 흥분으로 환영하고 이제 곧 엄청난 지역발전이 이어질 거라 설레었으리라. 몇 년 후에는, 지금의 양평처럼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적잖았을 것이며.
기차는 양평의 오랜 벗이다. 1시간에 한 번 떠나고 도착하는 게 고작이지만, 30분이면 청량리에 닿을 수 있어 무척 편리하고 고마운 벗이다. 또 하나의 친숙함은 철로를 보살피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철로를 보살피는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쪼개 양평사회에 그늘을 찾는 풍경 역시 낯설지 않다. 여기 YPN만 하더라도 코레일수도권동부지사 ‘청룡봉사대’ 관련기사가 10건 가까이 실려 있다.
2013년 4월 5일 양평역 시설팀 사무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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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font> 조선일보나 KBS-TV를 비롯한 중앙언론매체에 여러 번 보도가 되었습니다만, 간추려서 그간의 활동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b>
<b><font color=green>이신교:</font> 2005년도 봄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주변에 안타까운 일이 있어서, 동료들에게 십시일반 걷어서 좀 도와주면 어떻겠는냐 물었더니 다들 좋다며 없는 주머니 털었던 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몇 년 동안은 그냥 그 정도였어요. 딱히 모임체도 만들지 않았고 회비도 없이, 참 못 본 척하기 힘든 일이 생기면 동료끼리 힘을 보태서 성금을 내곤 했죠.
그게 또 그렇더라구요. 내가 담배 한 갑, 술 한 잔 아낀 돈이 모여서 누군가한테는 큰 힘이 되는구나, 하는 걸 실감하게 되고, 그게 정말 뭐랄까 살아가는 보람, 내가 보탠 돈의 수십 수백 배의 기쁨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이왕이면 좀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해봤죠. 우리는 전부 기술직이니까 다들 전문기술 하나씩은 갖고 있으니 이걸 모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지 않을까 했던 게 ‘청룡봉사대’의 시작입니다.
처음에는 코레일 수도권동부 지역시설관리팀 200여 직원 모임 형식이었다가, 현재는 지역별로 나뉘어서 활동하고 있어요. 그게 더 책임감도 커지고, 주변의 형편도 세세히 들여다볼 수 있거든요. 원주나 춘천 지역은 저희 못잖게 활발하게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어요. 현재 양평지역의 ‘청룡봉사대’는 48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저희가 매년 12가옥의 집수리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매년 20채 정도 됩니다.</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기억에 남을 만한 봉사활동을 꼽는다면?</b>
<b><font color=green>이신교 :</font> 2008년도 용문면 다문리에 화재로 전소된 주택을 새로 지어준 겁니다. 한 달 가량 걸렸는데, 집주인 양반이 먼저 집보다 더 좋다고 아주 기뻐하시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우리 자신들도 우리가 힘을 모으면 못 할 게 없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그래서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나선 큰 계기가 됐죠.
13년 동안 한 번도 집 청소를 안 한 집을 말끔하게 치웠던 일도 기억에 남네요. 군청이나 면사무소, 그리고 주변에서도 여러 번 치워주겠다고 나섰는데 집주인이 끝까지 거절했던 집이었는데, 우리가 가서 30분 만에 설득을 해서 대청소를 했죠. 자유총연맹 양평군지부 회원들과 함께 했는데, 군청에서 지원 받은 대형 쓰레기 차량으로 2대가 넘는 분량이 나왔어요. 그렇게 작은 집에서 웬 쓰레기가 많이 나오던지... 다리를 못 쓰는 분이 혼자 살던 집이었어요.
그 뒤에도 비슷한 작업이 몇 번 있었죠. 보통사람들이 볼 때는 도저히 이해 안 되는 행동이겠지만 여러 번 그런 처지에 분들을 겪다보니까 대충 짐작이 가요. 너무나 외로우니까 자기 주변의 물건 하나하나에도 정이 들어서, 아무리 허섭쓰레기라도 내다버리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보기가 딱하죠. 쓸모없고 더러운 물건들을 마치 피붙이처럼 끌어안고 사시는 노인네들 보면 참 마음이 아파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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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면 그들의 정신상태만 의심했던 습성이 부끄러워진다. 얼마나 외로움이 사무치면 ‘쓰레기를 피붙이처럼’ 여기게 될까. 얼마나 결핍이 두려웠으면 ‘쓰레기를 피붙이처럼’ 아꼈을까. 얼마나 ‘쓰레기를 피붙이처럼’ 여기는 사람들과 가까이 해야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일까.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직장단위에서 꽤 오랜 기간 동안 흔들림 없이 봉사해 오신 비결이랄까 저력이랄까, 그러한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b>
<b><font color=green>이신교 :</font> 전부 우리 회원들 덕분이죠. 동료애의 발현이기도 하고, 봉사가 주는 기쁨을 직접 느껴보면 누가 말려도 스스로 나서게 되는 거죠.
제일 중요한 건, 욕심 내지 않는 거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정도에서 약간만 더하자 하는 수준? 봉사가 좋은 일이긴 하지만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범위까지 나서기 시작하면 금방 지치지 않을까 염려가 돼요. 내 생활의 여력을 좋은 일에 쓴다고 할까, 내 생활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하게 되면 여럿이 오래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봉사대 조직 내 갹출 이외에는 외부의 물질적 지원은 사양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더 많은 지원을 끌어들여 더 많은 봉사를 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지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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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년부터는 집수리만큼은 양평군자원봉사센터와 같이 하고 있어요. 양평군이나 면사무소를 통해 파악되거나 요청되는 집수리 건수가 제법 되는 데, 그간 타시민단체가 열심히 감당해왔는데 갈수록 힘에 부쳤던 모양이에요. 집수리라는 게 봉사정신 만 갖고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렇다고 전문인력에게 맡길 예산도 안 되고... 양평군자원센터의 지원금은 우리를 거치지 않고 집수리 재료상으로 직접 지불됩니다. 아마 올해 630만원이 책정되었다고 하는데, 이왕이면 가장 필요한 집에 배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나저나 물가가 너무 올라서... 맨 처음 집수리 할 당시보다 지금 재료비가 한 3배는 뛴 거 같아요.</b>
뛰지도 않고 오르지도 않는 건 월급뿐이다. 지난 연말 소줏값이 크게 올랐다. 담뱃값은 거의 곱빼기로 오를 기미이다. 소주나 담배나 없는 사람의 애용품인데, 국민건강의 천적쯤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이니 공개적으로 결사반대하기도 계면쩍다. 없는 사람인데, 소주도 못 끊고 담배도 못 끊는 필자 같은 사람들은 도나 닦아서 삶의 애환을 달래야 하는 시절이다. 이도 저도 싫으면 세금인상 없는 복지증진에 이 한 몸 받쳐 봉이 될 각오를 다져야 할 시절이다.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물을 이웃에 전한 일이 제겐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요즘도 지속되고 있는지?</b>
<b><font color=green>이신교 :</font> 농사짓는 것도 우리 주력사업이에요. 개군면 석장리에 4천평 논이 있어요. 원래는 휴경지였는데 회원들이 아주 옥토로 만들어 놨죠. 지주와 3대 7로 나누는 데, 추수해서 쌀로도 나눠드리고 연탄으로 바꿔서도 나눠 드리고 있습니다. 벌써 6년이네요. 농사짓기 시작한 게.
청룡봉사대의 농사는 소풍 같아요. 회원 부인네들이 먹을 거도 싸 오고 아이들도 같이 와서 거들고. 돈으로 따지면 해가 갈수록 값어치가 떨어져서 차라리 그 공력을 다른 데 써볼까 하는 의견도 없지 않았는데, 함께 모내고 피사리내고 벼 베는 그 과정 자체가 어찌 보면 정말 소중한 거라서요. 또 우리 손으로 직접 거둔 쌀을 전한다는 의미도 크고 해서 매년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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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발족에서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계십니다. 아무래도 가정에는 그만큼 소홀해지는 부분이 있을 텐데요?</b>
<b><font color=green>이신교 :</font> 집에서야 별로 좋아하지 않죠. 그래서 집사람 눈치 엄청나게 봅니다. 30분만 시간이 나도 텃밭 가꾸고 어지간한 집안일은 제가 알아서 찾아냅니다. 그렇게 살아요. 딸아이만 둘인데, 다 서울 나가 살고 있어요. 내외만 살고 있으니까 살림살이가 조촐한데, 집사람이야 늘 저를 제집일은 제껴두고 남의 일만 참견하는 사람이라고 투정가곤 하죠.</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자녀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가정교육은 어떤 게 있는지요.</b>
<b><font color=green>이신교 :</font> 잘 살아라, 못 살아라, 이런 얘긴 전혀 하지 않습니다. 딱 하나 귀가 닳도록 하는 말이 있긴 하죠. 남들한테 손가락질 받는 사람만큼은 절대 되지 말라, 이 말 한 마디는 자주 합니다. 저, 우리 자식들 부자 되는 거 바라지 않아요. 제가 살아보니까 돈은 다 제 복이 있더라구요. 그리고 꼭 돈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저는 청소년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을 삐뚤어진 요즘 교육열로 보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 봅시다. 요즘 교육열이 예전의 그런 거랑 같은가요, 어디? 다 남들보다 더 잘 살게 만들겠다는 욕심이죠. 잘 산다는 자체가 돈 많은 거라고 바탕에 깔고서 말이죠. 저마다의 능력이나 재주를 잘 갈고 닦아 남들이랑 같이 사이좋게 살 수 있는 사람 됨됨이가 교육목적이 돼야 할 텐데, 이거야 원 남들 이겨야 살길이 생기는 거라고 가르치고 있으니...</b>
몇 시간 전, 8시뉴스를 보다가 기가 탁 막혔다. 기자가 ‘3.1절’을 쓴 종이를 대한민국 중학교 2년생에 읽어보라니까 요 맹랑한 중학생이 소리 내어 읽기를 ‘삼점일절’이란다. 또 다른 중학생에게 ‘이완용’이 누구냐고 물으니까 ‘독립운동가’아니냐고 되묻는다. 육일승천기를 차용한 시안을 보여주니 ‘멋있다’란다. 그 문양의 뜻을 가르쳐줘도 그게 뭐 어떠냐 되묻는다. 일선학교의 교사가 학생의 일탈을 꾸짖으면 단골 대답이 ‘웬 간섭’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만큼 충격이 컸다.
반면, 얼마 전 모 기관의 설문조사 결과는 뭉클했다. 우리나라 청소년이 가장 싫어하는 인간유형에 ‘어른에게 예의 없는 사람’ ‘약자에게 으스대는 사람’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엇나가는 아이들보단 올바르게 크는 아이들이 훨씬 많음에 크게 안도했다. 아마도, 이신교 회장네처럼 ‘사람 노릇’을 제 1가훈으로 삼는 집이 ‘돈’을 가훈 삼는 집보다는 더 많은 때문이겠지.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나눔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나 참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생각하는 최선의 ‘나눔문화’ 혹은 봉사정신은 어떤 모습일는지요?</b>
<b><font color=green>이신교 :</font> 꼭 받아야 할 사람이 받는 게 돼야 합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는 말은 이제 옛날 말이에요. 지금의 공적자금 규모 보세요. 엄청나잖아요? 그 돈만 제대로 쓰면, 그 돈이 가야할 사람들에게 제대로 찾아가기만 하면 정말 비참한 일은 거의 막을 수 있어요.
가서 보면, 현장파악이 제대로 안 돼 있어요. 꼭 닿아야 할 데는 비껴가고, 엄한 데 흘러들어가고 있어요. 정말 쌀이 떨어진 집인데도, 이래서 해당 안 되고 저래서 자격미달이고. 지원금 없이도 배 두드리고 사는 집인데도, 옛다 떡 하나 더 먹어라 하는 식으로 갖다 넣고.
모든 일이 그렇지만, 나눔문화의 실천이나 봉사활동이나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감상적으로 불쑥 내밀고 다시 이어지지 않는 물질적 기부는 차라리 없는 게 나아요. 받는 사람 의타심만 키워줄 뿐입니다.
저희가 집수리를 하거나 쓰레기를 치워줄 때 꼭 10프로 정도의 일거리는 남겨둬요. 집주인한테 이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이라는 걸 넌지시 주입시켜요. 전부 남의 덕으로 이뤄진 건 오래 못 가거든요. 자기 자신의 피와 땀이 더해져야 정말 자신의 것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죠. 전에는 현금으로도 도운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끊어지기 전에 전기세 내라고 준 돈으로 술 먹는 사람이나 그 비슷한 예를 여러 번 봐왔거든요. 특히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난방비에 보태라고 드린 돈도 자식들한테 주는 분들이 많아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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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자식 사랑이 징그럽고, 엄동설한을 냉방에서 버티는 부모 쌈짓돈 챙겨가는 자식이 징그럽다. 부모자식 간에 못 할 짓을 빚어내는 ‘먹고 사는 일’의 절박함이 참으로 징그럽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일도 이제 왕년의 일이 되고 말았으니 가난의 세습이 더욱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좋은 일 많이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하나 같이 ‘거저 받는 걸 당연시’하는 태도를 걱정한다. 복지정책이든 나눔 문화이든, 자활이 밑바탕에 깔리지 않으면 값싼 동정에 불과하다. 치울 쓰레기의 10분의 1은 당사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청룡봉사대의 원칙은 대한민국 복지정책의 대원칙으로 삼을 만하다. 그래서 관청은 현장을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 언제쯤에야 대한민국 행정은 책상머리를 벗어날 건지, 아득할 뿐이다.
청룡봉사대 정광모 부회장은 인터뷰 내내 침묵 속에 자리를 지켰다. 몇 번이나 권해도 사양만 했다. 이제 마무리할 때이니 강권하다시피 했다. 인터뷰 한 번 하자고 그렇게 꼬드겨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던 회장이랑 완전히 닮은꼴이다.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그 동안 부회장님도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제일 어려운 점이 어떤 건가요?</b>
<b><font color=green>정광모 :</font> 고생이야 다 같이 했죠. 저는 여기 회장님이랑 한 직장에 다니게 된 걸 그 복으로 여깁니다. 봉사의 기쁨을 가르쳐주신 분이거든요. 입에 발린 소리로 듣는 분들이 많겠지만, 정말 해보면 이거처럼 기분 좋고 힘나는 게 없어요. 봉사라는 게 남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도와준다는 건 해보면 다 알게 됩니다.
제일 신경 쓰이는 건 혹시 안전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거죠. 사고 직전까지 가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낡은 지붕 고치다 보면 발이 쑥 빠지고, 전기분야는 늘 조심해도 탈나기가 쉬우니까요. 그간 한 백 채 가까이 집을 수리했는데 별일 안 생겨서 다행이긴 하지만.</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청룡봉사대의 향후 계획이나 바람 같은 거, 이 부분도 부회장님이 말씀해주시겠습니까?</b>
<b><font color=green>정광모 :</font> 아무리 가까운 동료라고 속마음까지 다 장담할 순 없겠으나, 청룡봉사대 대원들은 봉사활동 자체가 다른 회사 동호회의 취미활동이랑 다를 게 없습니다. 봉사활동은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큰 즐거움이라는 말씀입니다. 거창한 계획은 별로 필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그저 지금 이런 마음만 바뀌지 않게 지금처럼만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정년퇴직하고 나서도 대원으로 남아 제각각 지니고 있는 기술을 이웃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입니다.</b>
나눔 문화 확산은 지역언론의 중요한 사명이다. YPN 역시 지역사회의 온정을 담아내는 데에 노력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온정을 만나게 되면 늘 떠오르는 말이 있다.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는 ‘아름다운 재단’의 슬로건이다.
청룡봉사대는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를 슬로건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봉을 쪼개고 고된 일을 더해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있다. 참된 복지국가는 국가예산 만으로 세워질 수 없다. 제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씩 덜어내 빈 그릇 하나 채우는 마음가짐이 예산보다 앞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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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PN뉴스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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