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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PN뉴스 2025년 04월 0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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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 보는 기쁨보다 더 기쁜 일이 있나요?” 박태엽 양서면 새마을지도자 · 최순자 부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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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2-07-02 04:43 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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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가 세상에 태어난 빚을 갚는 것 같다는 박태엽 양서면 새마을지도자 · 최순자 부녀회장

지평면 이명희 · 윤태로 부부 인터뷰가 게재된 이후 몇 통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동네에도 그런 부부가 산다는 제보였다. 연락처를 물어 몇몇에게 전화를 넣었지만 수락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 거도 없이 창피하게 뭘 그런 걸 하겠냐는 사유가 대부분이었다. 당사자들이야 겸양의 미덕을 보였지만 새 인터뷰 기사를 써야 할 필자입장에선 속이 탔다. 해서, 비슷한 이유를 들어 거절하려 드는 마지막 대상자를 전화기가 뜨거워질 때까지 통화를 하고나서야 간신히 동의를 얻어 냈다.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쉽게 마음을 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양평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는 사람이 지천인 지역에서 속마음을 털어내기가 쉽지 않음은 누구나 마찬가지 아닌가. 잘난 사람들은 그 사람대로 인터뷰할 가치가 있고, 또 비운을 겪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귀 기울여줘야 할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 중증장애를 지닌 사람의 삶은 어떤지, 소녀가장의 삶은 어떤지, 노래방도우미에 나선 여인네들의 삶은 어떤지 인터뷰하고 싶지만 선뜻 오너라 하는 사람이 없다. 물론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늘어나면 좀 더 나은 양평을 만드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은 필자 혼자의 것인 듯싶어 매번 인터뷰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다. 부디, 인터뷰를 자청하는 독자가 혹은 인터뷰 대상을 제보해주는 독자가 늘기를 고대한다.   
 
2012년 6월 29일 오전 11시, 양서면 복포1리 마을회관을 찾았다. 박태엽 · 최순자 부부,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장 커플을 만나러 갔다. 나이도 동갑(55세)인 데다 생일도 사흘 차이란다. 주변 얘기로는 남 좋은 일에 바쁜 사람들이라는 데 정작 당사자들은 손사래부터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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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박태엽 :</font>  아이구, 정말 봉사하는 사람들이 보면 웃어요. 저희야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제 시간과 재물이 허락하는 수준 정도죠. 제가 뭐 새마을지도자 자격이 있어서 맡은 게 아니라 동네에 젊은 사람이 없다보니까 제 차례가 된 것뿐이에요. 환갑 다돼서도 젊은층이라고 자처하는 게 참 뭣하지만 어쩌겠어요? 동네에선 그래도 저희가 젊은 편이니… 청년회장 맡은 지가 벌써 20년이 넘어요. 청년이 새로 생겨야 회장도 바뀌고 회원들도 바뀔 텐데, 어디 젊은 사람들이 있나요? 하도 어색하길래 몇년 전에 모임이름만 복포리 청장년회로 바꿨어요.</b> 

<b><font color=green>최순자 :</font>  정말 그래요. 제대로 봉사하시는 분들 보면 정말 존경스러워요. 누워서만 지내는 분들,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돌보지 않는 분들을 똥오줌 다 수발하는 분들도 많은 데, 저희야 그냥 딱한 분들에게 잠시잠깐 위로해드리는 정도죠.</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주변 말씀으론 동네일에 제일 열성이고, 딱한 처지는 그냥 넘기지 못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봉사라는 개념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지는 말고, 동네일이든 남 돌봐주는 일이든 먹고사는 일과 무관한 일에 쓰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 거 같으신지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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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박태엽 :</font>  처음에는 공동청소에 빗자루만 들고 나와도 내가 봉사하는 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죠. 사실 봉사는 본인 좋으라고 하는 거예요. 안 해봐서 그렇지 나 아닌 사람, 특히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면 진짜 마음이 개운해져요. 세상에 태어난 빚을 갚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사람 노릇하는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몇년 전에 우연히 ‘천사의 집(사설복지시설 : 양서면 신원리 소재, 원장 방동식 목사)’에 목욕봉사 갔다가 봉사하는 기쁨을 처음 느꼈어요. 새로 태어난 기분이랄까? 목욕을 거들어준 것뿐인 데, 그 어린 것이 사지를 겨우겨우 움직이는 그 어린 것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고맙다 하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잠시 애를 쓴 게 이 아이에게는 이렇게 크게 감사할 일이고 기쁜 일이구나 하는 걸 깨닫고는 좀 더 이런 일에 나서게 되었죠.  나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 보는 기쁨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어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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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최순자 :</font>  다행이 이이 직업이 매장 운영이에요. 숯침대를 판매한 지가 30년 가까이 됐는데 점심 먹고 출근해서 저녁 늦게 끝나는 일이라, 오전 시간이 비어요. 새벽에 밭일 하고 아침 먹고 서너 시간 동네일 챙겨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어요. 
 
이이가 어렸을 때부터 꿈이 주위에 봉사하는 거였대요. 저도 비슷했거든요.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서 여태까지 별 탈 없이 이냥저냥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아무래도 가정주부가 시간이 많으니까 제가 먼저 시작했죠. 80년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한 8년 새마을 부녀회장을 했었어요. 근데 이이가 반대를 해서 그만 뒀다가 몇년 전부터 다시 시작한 거죠.</b>

세상인심이 각박하다고는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정 많은 사람들이 참 많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의 고충을 식구처럼 건사해주는, 돈 한 푼 안 생기는 일이지만 모두가 필요로 하는 궂은일에 팔 걷고 나서는,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누구도 나서기 꺼려하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다만, 그 사람 참 오지랖도 넘네 하는 무심한 시선과, 심지어 뭔가 딴 속셈이 있겠지 하는 떠름한 시선으로 봐 넘기는 때문에 잘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을 뿐이다.

생각해보라. 공공예산이 아닌 장학금과 이웃성금은 다 어느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인지. 가족도 찾지 않는 독거노인의 빈 반찬통을 채워 넣는 정성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길가에 잡풀들은 누가 다 뽑고 꽃들은 누가 다 심어 저리 가지런히 다듬어져 있는지. 기백명이 밥 먹어야 할 행사장에서 국 끓이고 설거지하는 아낙네들은 다 무슨 마음으로 복더위에 땀을 흘리고 있는지.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새마을부녀회장 못 하게 만드셨다니, 새마을회원들이 알면 손가락질 하겠네요?</b>

<b><font color=green>박태엽 :</font>  좋은 일 하는 걸 말리려고 제가 반대를 했나요, 어디? 그때 새마을중앙회 하는 짓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랬지. 그때가 88올림픽경인데, 마을단위 새마을조직마다 물품판매를 할당제로 떠넘겼어요. 가격이라도 싸면 말도 안 해요. 샴푸니 비누니 칫솔이니 전화기 따위를 동네사람에게 강매하다시피 팔게 만들고, 참내 그게 말이나 돼요? 봉사하겠다는 사람들을 앞세워서 민폐 끼쳐가며 어느 놈인지도 모를 놈 뱃속 채우는 일을 강요했으니. 하도 지은 죄들이 많고, 또 당시 피해자들이 제 얼굴에 침 뱉는 일이라 조용해서 크게 이슈가 안돼서 그렇지, 피해가 컸어요. 시가보다 비싸게 산 사람도 피해자지만, 맨날 푼돈 챙겨서 흐지부지 없애고 때마다 목돈 올려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살림 파탄 난 사람도 있어요.</b>

<b><font color=green>최순자 :</font>  좋은 일하다보면 마(魔)도 끼고 그런 거지, 뭐. 부녀회장 하지 말라고 해서 부부싸움까지 여러 차례 했다가 부녀회장 안 하면 동네일 못하나 싶어서 관둬 버렸어요. 그래도 저이 바깥일 나가면 낄 데 안 낄 데 다 가서 할 거 다 했어요. 동네일에 빠지거나 주변에 딱한 사람 못 본 척하면 괜히 제발이 저려서 그냥 있질 못 하겠더라구요.

그 땐 저이가 지금보다 훨씬 바빴거든요. 매장도 지금은 저기 송파 ‘가든화이브’에 하나뿐이지만 전에는 서너 군데에 매장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남편 모르게 바깥일하기가 수월했죠. 그래봤자, 남들 할 때 좀 거드는 정도지만.

아까 저이도 말했지만 참된 봉사자는 아직 멀었어요. 누워서만 지낼 수밖에 없는데 돌봐주는 가족도 없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기야 한정 없지만 내가 나서서 똥오줌 치워드리는 건 어쩌다 한두 번이지 매양 하기는 정말 어려워요. 법도 중요하고 자격도 중요하겠지만, 적어도 꼼짝없이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는 분들은 이유를 따지지 말고 국가가 책임져야 해요. 멀쩡한 사람들한테 새는 사회복지예산만 잘 챙겨도 아마 다 수용하고도 남을 거예요.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복지정책이 꾸준히 강화되고는 있습니다만 사회적지원이나 타인의 도움이 절실한 분들이 많이 계실 텐데, 가장 시급한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b>

<b><font color=green>박태엽 :</font>  국가예산체제나 현실을 무시하고 이것도 해줘야 하고 저것도 해줘야 한다는 주장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재의 복지예산만이라도 쓸 데 쓰고, 안 쓸 데 안 쓰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겁니다. 서류나 형식에만 너무 의존할 게 아니라 개개인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제도적 장치가 제일 급해요.

또 행정기관의 관심도 아주 중요하죠. 몸으로 때우는 일이야 개인자격으로 충당할 수 있지만 큰 예산이 필요한 일은 아무래도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야지 않겠어요? 양평은 그런 면에서는 일단 합격점이에요. 여기 면장님이나 군수님이나 복지정책엔 아주 열성이잖아요? 저만해도 행정기관 일에 거의 관심이 없었는데, 몇 번 군수님 말하는 거 행동 하는 거 보고나서는 동네일하고 봉사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됐거든요. 박신선면장은 동네일하는 자리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바쁠 땐, 음료수라도 한 박스 놔두고 가요.

사회복지 강화를 위해서는 필히 일자리창출이 따라야 합니다. 사지 멀쩡한 노동력들이 할일이 없어서 논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금 4,50대 그리고 요즘엔 60대들도 체력들이 좋잖아요? 일자리만 있으면 충분히 일할 수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지금 일하게 하고 뭐라도 비축해두게 해야 팔십, 구십 되었을 때 노년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잖아요? 그냥 내버려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빈곤의 나락으로 바로 추락하는 거죠. 비참한 삶을 살거나 아니면 국가에서 몽땅 짊어져야죠.</b>

최선의 복지는 일자리, 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복지는 그림의 떡이다. 대한민국 그리고 양평의 현실은 어떤가. 일자리 창출은 주구장창 떠들어대지만 일자리 늘었다는 통계는 수치상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내 생업은 하루가 다르게 위태롭고 자식 취직하기는 갈수록 어렵다. 자영업자 폐업은 일상이 되었고, 은퇴자의 재취업은 꿈도 야무지네 수준이다. 

정부예산은 매년 증가한다. 특히 복지분야 농업분야 예산증가율은 다른 분야보다 가파르다. 그럼에도 사회안전망에서 소외되는 최빈곤층은 늘어만 가고, 농업인의 그늘은 짙어만 간다. 이유는 무엇이고 개선책은 무엇일까. 동네일에 관심 많은 사람이니까 저 혼자만 이로운 정책제안보다는 공공에 이로운 정책제안을 기대하며 질문했다. 대한민국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복포1리 새마을지도자의 견해는 어떠신지. 그런데, 기대 이상의 답변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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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박태엽 :</font>  양평 특히 여기 양서면은 시골이 아니에요. 서울에서 콤파스(컴퍼스 : 양각기)를 대면 엄연히 수도권이에요. 좋은 영농아이템만 있으면 일자리창출과 동시에 관광자산으로 활용하기도 아주 좋아요. 요즘 제가 산마늘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건강을 우선하는 도시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적의 특용작물이거든요. ‘모비딕(복포리 소재 요식업소)’ 사장님하고 한 열 사람이 함께 힘을 모아서 농업법인을 하나 만들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근데, 그게 그렇게 어렵네요. 자기 땅 없는 사람은 낄 수가 없게끔 되어 있더란 말이죠. 아니, 땅 없고 가진 거 없는 사람들에게 일자리 주는 게 정부가 할일인데 이건 뭐 법이라는 게 참… 여기 양수리 강변을 축으로 반경 2,3km 땅 가운데 양평사람 땅이 얼마나 돼요? 아마 7,80프로 8,90프로가 서울사람 땅일 거예요. 농사지을 땅 가진 사람도 많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더욱이 드문 데, 자기 땅 없으면 농사도 지을 수 없는 게 무슨 영농지원정책입니까?

그러나 어쩌겠어요? 법이 그렇다면 법을 따라야죠.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기를 썼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모 문중에서 땅 몇 천평을 아주 좋은 조건으로 임대해주기로 했어요. 우리 동네 교수분이 한 분 계신데 그 분이 저희들 취지에 적극 동참해주면서 일이 풀리기 시작한 거죠.

또 하나, 답답한 게 있어요. 공공장소의 빈터에는 왜 그렇게 잔디를 못 심어서 안달이에요. 공원이나 수변지역 그 넓은 땅에 먹지도 못하고, 손으로 일일이 잡풀 뽑지 않으면 제초제 뿌리기 십상인 잔디를 못 심어서 난리에요? 전 정말 이해가 안돼요. 싸리나무 같은 식물 좀 좋아요? 지력(地力)이 단단해지니 수해도 막아주고, 병충해 없으니 손도 안 가고, 어느 정도 자라면 베어다 쓸모도 좀 많아요? 싸리빗자루만 만들어도 양평 노인회관 노인들 전부 용돈벌이는 하겠네요. 제발 폼만 나는 일에 예산 쓰지 말고 실제 영양가 있는 일, 천만원 투자하면 최소 천오백만원은 벌어들일 수 있는 일에 공공예산이 쓰였으면 좋겠어요. </b> 

<b><font color=green>최순자 :</font>  지금 저희들 농사는 그냥 집에서 먹을 거 거두는 정돈데요, 저이가 요즘 큰 소리를 뻥뻥 쳐서 어떤 땐 겁도 나요. 농업이 절대 사양산업이 아니라는 거예요. 연봉 1억, 농업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소리를 자주 해요. 혼자서 해보겠다면야 누가 말리겠어요? 근데, 여러 사람들이랑 같이 도전해보겠다는 게 좀 걱정이 돼요. 저이가 원래 남한테 잘 당하는 사람이거든요. 돈도 빌려주고는 떼어먹히기 일쑤고, 기껏 좋은 일 해주고는 욕먹기가 다반사고 그렇거든요.

저이 말로는 알아볼 거 다 알아보고 공부할 거 다 했노라고 장담하지만 어디 세상일이 그렇게 만만한가요?
저야 저이 능력이랑 마음보를 잘 알죠. 빈손으로 시작해서 자리 잡았고, 결혼하면서 자기 고향에서 살래 저희 고향에서 살래 묻길래 내 고향에서 살고 싶다고 했더니 두말 않고 처가살이 들어온 사람이거든요. 장인장모를 끔찍히 모셨고, 빈손으로 시작해서 애들 다 키우고 나름대로 자리 잡고 사는 사람이니까 나야 그 속을 다 알지만 남들이 그 속을 어떻게 다 알겠어요?</b>

최순자 부녀회장의 말을 박태엽 새마을지도자가 반박한다. 염려 붙들어 매라는 소리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소리가 교차한다. 점차 말 뱉는 속도가 분주해지고 옥타브가 높아진다. 과거의 허물들도 하나 둘 등장한다. 여느 부부싸움의 개장과 마찬가지로. 접시를 집어 던지나 안 던지나 기다려볼까 하다가 다음 일정이 바빠 중간에 껴들었다. 요럴 때 껴들어야 진짜 속마음을 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 남편이랑 결혼하실 생각이신지? 말 떨어지기 무섭게 답변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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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최순자 :</font>  그럼요. 우리 남편 말고 누구한테 시집을 가요? 골백번을 다시 태어나도 다시 살 거예요. 어디 숨어 있어도 꼭 찾아내서 다시 부부가 될 거예요. 제가요, 스무 살 때 저이 만나서 바로 결혼해서 여태 저 남자만 바라보고 살았어요. 아무리 잘 생긴 남자, 돈 많은 남자, 출세한 남자를 봐도 다 우리 남편보다 못해요. 저이야 딴 마음 먹을지도 모르겠지만.</b>

<b><font color=green>박태엽 :</font>  다음 세상에 어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고, 지금 매일매일을 잘해주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집사람은 내가 꽃 사들고 오면, 금방 시들어서 내다버릴 걸 뭣하러 비싼 돈 주고 사왔냐고 지청구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사는 낙이 뭐가 있겠어요? 아내에게 꽃다발 안겨야 할 때는 안겨주고, 맛있는 거 같이 먹어야 할 때는 돈 생각 접어두고 맛있게 먹는 게 충실한 삶이 아니겠어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동년이시니까 스무 살에 결혼하셨으면 아이들도 다 성장했겠네요? 부럽습니다.</b>

<b><font color=green>최순자 :</font>  딸 하나 아들 하나에요. 딸아이가 서른여섯인데 딸만 둘 뒀구요, 셋째를 가졌어요. 이제 두 달 됐다는데 이번엔 아들이었으면 싶네요. 아들내미는 서른둘인데 여태 장가 갈 생각을 않네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복포리가 처가동네면 남편 분은 여기 출신이 아니시겠네요?</b>

<b><font color=green>박태엽 :</font>  네, 전남 순천입니다. 바닷가랑 여기랑 많이 다를 거 같지만 제 눈엔 비슷해요. 사람들도 순박하고 정도 많고, 또 물가의 풍경도 사는 모습도 비슷하고. 그물을 깁느냐 호미를 가느냐 하는 차이는 있겠지만요.</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그럼 복포리에서 37년이니 이제 양평사람이라고 해야겠네요?</b>

<b><font color=green>박태엽 :</font>  그 말씀은 좀 서운한 면이 없지 않네요. 어제 이사 왔어도 양평에 살면 양평사람이지, 양평사람 되는 데 무슨 정해놓은 세월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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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싶었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지역사회의 폐쇄성을 짚어왔으니 더 민망하다. 이미 뱉은 말을 어쩔꼬. 이참에 지역의 폐쇄성을 얼마나 감지하고 있는지 묻는 것으로 말빚을 갚는다.

<b><font color=green>박태엽 :</font>  제가 57년생인데, 57년 모임에 끼질 못합니다. 양평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니 자격이 없다는 거죠. 37년을 복포리에서 살았는데도 아직도 양평사람으로 쳐주지 않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해요. 제가 사업 때문에 여기저기 터를 잡고 다녔는데, 어디에서도 그런 예가 없어요.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의정부도 그렇고 평택도 그렇고, 양평 같은 도농지역 어디에서도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그저 몇 년 얼굴 보면 같은 지역사람으로 서로 인정하고 그렇게 지내는데, 양평은 그런 점에서 아주 특출나요. 자주 만나는 친구들도 많고 그 가운데 57년생도 여럿인데 57년생 정식모임에는 아직도 이방인인 거죠.</b>

필자 역시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대대로 살고, 학교도 다녔는데 젊은 시절 한 10여년 고향을 떠났다 돌아왔다고 절반쯤의 양평군민으로 치부됐다. 도대체 누가 또 어떤 집단심리가 이런 폐쇄성을 키우고 수면하에서 작동시키는 걸까.

이곳 양평에는 지역사회에 크게 유익한 능력과 인성을 겸비하고 또 검증된 경력까지 갖춘 타지역 출신들이 많이 살고 있다. 오직 하나의 이유 때문에 지역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양평에 태를 묻지 않은 게 그렇게 큰 결격사유일까. 지구촌이 실감나는 정도를 넘어 웬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직접 체험해보는 2012년 현재에 말이다. 쥐꼬리 만한 기득권에 혹시라도 손상을 입을까 싶은 집단이기심의 발로가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다. 쓸 만한 타지역 인사들을 배척하고 끼리끼리 자리를 나눠먹느라 지역사회야 골병이 들거나 말거나 언제까지 지켜만 봐야하는지 참 갑갑해진다.

박태엽 · 최순자 부부는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 인터뷰하기 전, 그러니까 당일 오전 11시 이전에 일과를 물었더니,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오토바이 타고 밭에 나갔다가 매일 들여다보는 이웃 몇 집 순례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인터뷰 끝나고 나면 점심 먹고 나서 새마을회원들이랑 도로변에 잡풀 뽑고 코스모스 심으러 간단다. 그일 끝나면 남편은 서울 송파 매장으로, 부인은 다 못한 밭일과 동네일을 챙길 거란다. 그렇게 남 좋은 일에 팔 걷고, 제 사는 일에 열심인 부부가 어디 박태엽 · 최순자씨 뿐일까. 그런 부부가 우리 눈에 잘 띄진 않아도 양평 곳곳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으니, 세상이 양평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는 거겠지.

이 땅에 살아가는, 오지랖 넓고 남 궂은일 잘 챙기고 남 좋은일 앞장서며 바지런히 살아가는 부부 모두에게, 우리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양평 어디에선가 사람 구실 제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부부 모두에게 곱절의 박수를 보낸다. 혼자보다는 내외가 붙어 다니면서 좋은 일하면 효과도 곱절이고 그림도 곱절로 좋지 아니한가.

YPN뉴스 (ypnnews@naver.com)

댓글목록

박수운님의 댓글

박수운 작성일

다시 태어나도 이 남편을 ..
부부 궁합이 정말 잘맞네요
그만큼 믿고 산다는게 부럽습니다

객지생활 성공하고 다시 부인 친정으로 와서 양평을 위해서  봉사활동 하는것
타의 모범입니다
저도 양평 개군면 석장리 947 사는 사람으로써 본 받고 싶네요   

최상옥님의 댓글

최상옥 작성일

함께하시는 그 울타리의 든든함 행복하심을 엿보고 갑니다^.^
봉사자로 살아간다는 것... 내 가슴이 따뜻해져야 하는 것이기에
그 맛은 아는 사람만 알게되는거죠^.^ 두분의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강금숙님의 댓글

강금숙 작성일

따뜻한 사랑 나눔 두 부부에게 찬사을 보냅니다
봉사하는 마음은 자신의 삶의 행복을 가질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궁합이 잘맞는 부부라  더욱  좋아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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