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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PN뉴스 2025년 04월 0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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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혁신, 양날을 휘두르며 대한민국을 지휘하다. -대통령 교육문화수석 박범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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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2-07-23 10:08 댓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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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 하나에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리다.-대통령 교육문화수석 박범훈-

인류 최고의 TV시청률은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나온다. 개막식에만 동시대 인류 절반쯤의 시청자수를 기록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했다. 성공적으로 개막식도 치렀다. 전세계 인구의 절반쯤은 노태우대통령의 얼굴을, 또 다른 절반쯤은 김대중대통령의 얼굴을 봤다는 얘기며, 70억 세계인 대부분은 박범훈의 음악을 들었다는 얘기다. 88올림픽과 2002월드컵, 그리고 86아시안게임 개막식 음악은 박범훈이 만들고 박범훈이 지휘봉을 잡았기 때문이다. 애향심을 앞세워 표현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열린 인류 최대이벤트의 음악은 양평사람 박범훈이 싹슬이해버린 것이다.

박범훈은 양평 강상면에서 태어났다. 여기서 중학교까지 나왔는데 고향사람들은 박범훈을 잘 모른다. 중앙대총장 박범훈, 대통령 교육문화수석 박범훈은 들어봤어도 그가 양평출신인지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 예순을 넘겨 일흔을 바라보며, 사재를 털어 ‘뭇소리중앙예술원’을 세운 까닭은 관심 밖이다. ‘대한민국을 지휘하는 작곡가, 박범훈’으로 일컬어지는 연유는 더더욱 알 길이 없다. 

필자 역시 박범훈 선생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인터뷰 전에 대략 어떤 양반인지 훑어볼 작정으로 인터넷 웹서핑을 하다가 꼬박 밤을 새고 말았다. 유심히 살펴봐야할 전력이 하도 많아서이다. 원, 체구도 자그마한 양반이 뭔 일을 이렇게 많이 해놓았는지 보는 사람이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2012년 7월 14일 오후 4시, 강상면 송학리 ‘뭇소리 중앙예술원’을 찾았다. 현직 청와대요직 인사가 땀에 전 작업복차림으로 맞았다. 대담 내내, 피사리 끝내고 논두렁에 걸터앉은 농부와 얘기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대단히 출세하고도, 소탈하고 겸손한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닌가보다. 첫 질문으로, 그 많은 공적을 이룬 비결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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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그간 이루어 오신 성과랄까 업적 또한 대단했지만, 이게 과연 한 사람의 삶으로서 가능할까 싶을 만큼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이 놀라웠습니다. 이렇듯 열심히 살아오신 특별한 동기 혹은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b> 

<b><font color=green>박범훈 :</font> 제 삶의 원동력은 배고픔입니다. 배고픔을 이겨내려면 무언가에 몰두해야 하고, 끼니마다 먹거리 안 놓치려면 남보다 훨씬 노력해야 한다는 걸 사무치게 깨달으며 컸어요. 용문산에서 고사리 뜯어다 보릿고개 넘기고, 이집 저집 먹거리 꾸러 나간 어머니가 언제 돌어오시려나 저녁마다 기다리던 게 엊그제 일 같아요.

무슨 짓을 해서든 내 식구 배곯는 일은 없게 만들겠다, 는 신념이 이제 배곯을 일은 없겠구나, 한 시름 놓을 즈음에는 아예 몸에 배어버렸죠. 무슨 일이든 내게 닥치는 일은 남들 몇 배 공력을 들이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제 스스로 돌아봐도 대견하다싶을 만큼은 됩디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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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선생님의 경력을 크게 삼등분해보면 음악인 박범훈, 교육자 박범훈, 문화교육 정책 수립자 박범훈으로 압축할 수 있겠습니다. 어느 쪽이 제일 흡족한 자화상이신지?</b> 

<b><font color=green>박범훈 :</font> 두 말할 것 없이 음악인 박범훈이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소리가 좋았어요. 노랫소리 악기소리에 국한된 게 아니라 삼라만상의 모든 소리가 좋았어요. 초여름 벌판에서 들려오는 풀벌레울음소리, 누렇게 벼 익은 논배미에 바람 지나가는 소리, 타닥타닥 장작에서 불꽃 이는 소리까지 귀가 쫑긋해지지 않는 소리가 없었어요.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풍금 소리에 반해서 밤마다 남몰래 교무실을 들락거렸죠. 선생님한테 들켜서 불나게 뺨을 맞고도 그 버릇을 못 고치고, 건반을 더듬어 제 생애 첫 작품을 작곡해서는 ‘생쥐 소나타’라고 명명하기도 했어요. 어느 마을에 풍물을 친다는 소리만 들리면 빠짐없이 찾아다녔고 풍물패가 다 흩어질 때까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너무나 멋있고 너무나 부러워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저희 아버님은 6.25때 포로로 잡혀가서 북한에서 6년이나 감옥생활을 하다 포로교환 때 구사일생으로 귀향하신 분입니다. 사는 일에 정나미가 뚝 떨어지셨는지 매일매일 술이었는데, 하루는 어쩐 일로 저를 양평읍내 국밥집으로 데려 가셨어요. 이제 막 내 앞에 놓일 무럭무럭 김 오르고 기름진 음식에 꼴깍꼴깍 침을 삼키고 있는데 어디선가 황홀한 소리가 들려오질 않겠어요? 양평중학교 밴드부가 거리행진을 하는 참이었는데, 그 귀한 국밥을 까맣게 잊어먹고는 행렬을 따라붙고 말았죠. 그길로 밴드부에 가입해서 트럼펫을 불기 시작했습니다.</b> 

박범훈선생은 또래보다 중학교 입학이 한해 늦다. 1년 동안 제 손으로 나무 해다 양평장에서 입학금을 마련했다. 너무 좋아서 밤마다 껴안고 잤다던 트럼펫을 학교 소유가 아닌 온전한 제 소유로 만든 건, 트럼펫 불 일도 없어진 10년 후의 일이다. 독일유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왕년의 한을 ‘게젠 트럼펫’ 마련으로 풀었는데 지금은 양평중학교 밴드부 소유다. 지금 그 트럼펫을 부는 소년은 박범훈 선생의 10년 소망을 이해할 수 있을는지. 또 본인에게는 꽤 소중할 수밖에 없는 결정체를 선뜻 모교에 기증한 선생의 속내를 짚어볼 수 있을는지.

트럼펫과의 열애는 길지 못했다. 마지막 남사당 꼭두쇠 남운용 선생은 ‘나팔 백날 불어봐야 딴따라밖에 안 된다’와 ‘범훈이는 양평에서 썩기 아깝다’는 두 가지 주장으로 열여섯 박범훈을 서울에 있는 ‘한국 국악예술학교’에 집어넣는다.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고향집을 떠난 박범훈은 그 학교 악기창고에 이부자리를 펴고 전등을 끈다.

훗날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예술인들과 이렇게 저렇게 조우를 하게 되는데, 충정도 옥천 태생 김덕수와 경상도 삼천포 태생 최종실과는 악기창고 동거인 겸 졸병 겸으로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교사숙직실에서 소금을 훔쳐다 반찬을 삼고, 한겨울 얼어붙은 수도꼭지는 번갈아 입으로 빨아 녹여 빨래를 하며 세 사람은 예술을 익혔다. 입술이 쩍쩍 달라붙던 수도꼭지 녹이기 작업을 ‘엄마 젖꼭지 빨기’로 은유하며 이겨냈다. ‘처녀 젖꼭지 빨기’로 명명했으면 좀 더 빨리 수도꼭지가 녹지 않았으려나, 상상의 나래를 편 독자가 있다면 필자처럼 잠시 무릎 꿇어 반성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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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국악을 하시면서 일본에 오래 유학하신 부분도 이채롭고, 또 만학도의 자세로 철학을 전공하신 점도 이채롭고, 일본 중국 한국의 전통음악을 아우르는 일련의 작업들도 매우 이채롭습니다. 이 또한 특별한 목표가 있으셨던 때문이겠습니다.</b> 

<b><font color=green>박범훈 :</font> 고등학교 때는 국악을 했지만 대학교에서는 서양음악을 전공했어요. 맨 소리에 빠져 사니까 지평이 자꾸 넓어지더군요. 밖의 음악은 어떤가 알고 싶은데 멀리 갈 형편은 안 돼서 선택한 게 일본이었어요.

거기서 큰일을 저질렀죠.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한국 중국 일본, 동양의 음악을 하나로 묶는 작업이었습니다. 왜 서양음악만 득세를 하는가, 하는 시샘에서부터 출발했죠. 아시아권의 음악이 역사도 깊고 담긴 뜻도 깊은 데 왜 상대적으로 낮은 대접을 받는가 하는 의문과 불만이 반반쯤 섞인 게 동기였는데, 한국음악 일본음악 중국음악만을 고집해서는 세계를 상대할 수 없다는 제 취지에 많은 음악인이 동참해줘서 큰 수확을 거뒀습니다. 한중일 아시아오케스트라는 3개국의 음악을 하나로 묶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인류 음악사의 새롭고도 광대한 지평을 여는 작업입니다. 

철학은 제 음악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지팡이였습니다. 늦게라도 공부했으니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알아야 할 게 있으면 언제든지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게 사람 아니겠어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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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안성의 바우덕이 축제를 만드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역축제의 대표적 성공작이라는 점도 의미가 큽니다만, 맥이 거의 끊어졌던 ‘남사당’을 현대에 되살려낸 부분이 더욱  뜻 깊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b> 

<b><font color=green>박범훈 :</font> 남사당은 외형적으로는 한국판 집시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면적으로는 유럽의 집시보다는 훨씬 격이 높은 예술집단입니다. 예술혼은 넘치고, 붙박이로 살기에는 환경이 허락되지 않는 예인(藝人)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았던 거죠. 돈푼깨나 있는 양반들이 불러들여 판을 벌리게 해서는 온 동네 사람들 구경하게 만드는 게 당시로서는 가진 자의 훌륭한 베풂 가운데 하나였어요.

제 소년기 그러니까 60년대 중후반은 남사당의 몰락기였어요. 연극에 영화에 라디오에 TV까지 구경거리가 지천인 세상에서 더 이상 살아남을 도리가 없었던 거죠. 남사당은 이곳 양평 강상면에서, 콕 집어 얘기하면 저희 집 사랑방에서 최후를 맞았어요. 더 이상 불러주는 양반도 더 이상 목 빠지게 기다리는 관객도 없이 사라져 간 거죠.

돌이켜보면 참 묘한 인연입니다. 남사당의 마지막 꼭두쇠 남운용선생님께서 저를 서울로 이끌어내고 저는 그 인연으로 대학교수가 되어, 남사당의 발생지 청룡사가 있는 안성 소재 중앙대학교예술대학에 부임하고, 그 인연으로 해당지자체와 연을 맺게 하고, 드디어는 남사당 유일의 여성예인 ‘바우덕이’를 테마로 하는 축제를 낳게 만들고… 가끔은 남운용선생님의 혼이 나를 이리 저리 이끄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산나물축제 역시 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양평과 산나물을 한 데 묶은 이유와 올해 치루어진 산나물축제가 애초 선생님의 취지에 어느 정도 부합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b> 

<b><font color=green>박범훈 :</font> 벌써 4,5년 전 일이네요. 군수님이 양평을 대표하는 축제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하시더군요. 저도 한참 고민을 했죠. 그러다가 이거다 했던 게 산나물입니다. 조선말 진상품이었을 만큼 용문산 산나물은 명물인 데다, 경기민요 건드렁타령에 용문산 산나물이 노랫말로 들어 있어 역사성이나 정체성도 갖췄고, 거기다 양평 동부쪽에는 취나물, 더덕, 도라지 등을 재배하는 농민들도 많은 데다 또 시대의 흐름도 자연식을 높이 사고 있으니 여러 가지로 양평에 득이 되겠다 싶었던 거죠.</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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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금 낼 돈이 없어 일 년을 꿇었던 양평소년이 청년시절부터 세계를 누빈다. 중학교 밴드부 행진에 넋을 놓았던 철부지소년이 세계무대에 올라 제가 만든 음악을 지휘한다. 배고픔 타파가 생의 목표였던 애늙은이소년이 대한민국 교육과 문화의 수장이 되었다. 타고난 재능만 갖고 될 일도 아니고, 남보다 몇 갑절의 부지런만으로도 될 일도 아니고, 운이 뻗쳐서만도 될 일이 아니다.

박범훈선생은 대담 사이사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뭇 사람과의 인연 덕분이라 되뇌었다. 소리가 좋아 소리와 연을 맺고, 소리가 가교가 되어 타인과 연이 닿고, 사람이 가교가 되어 새로운 소리와 연을 맺으며 살아왔노라 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자신이 생각해도 믿겨지지 않는 과거를 지나 현재에 이르렀노라 말했다.

선생이 소리와 또 사람과 연을 맺는 회고 대목은 하나 같이 인상이 깊다. 특히 지리산 쌍계사 말사 국사암에서 만난 ‘땡초’와의 연이 압권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과 함께였는데, 첫 대면에 땡초로 낙인찍은 석상훈(법명이 3자인 경우는 난생 처음 봤다. 그런 스님이 많거나 더러 있다면 필자의 무지를 용서해주시길)스님의 새벽 도량석 (道場釋 : 사찰에서 새벽 예불을 하기 전에 도량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치르는 의식. 새벽에 목탁을 두드리며 경내를 돌면서 찬가나 게,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염하기도 한다) 염불소리에 귀가 번쩍 열리는 대목은 박범훈선생의 예술혼이 ‘소리’에 얼마나 깊이 뿌리 박혀 있는지 잘 일러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 음악인이든 등산객이든 주지스님이든 한 귀로 흘렸을 심심산골 승려의 심상한 염불소리에서 세월의 소리, 겨레의 소리, 깨달음의 소리를 낚아챈 것이다. 선생은 그때 번쩍 열린 귀를 갖고 숱한 불교음악을 창조해냈다. 당시까지 기독교찬송가와 별반 다를 바 없었던 찬불가를 비로소 불교에 귀의하게끔 했다. 까마득 사라졌던 마당극을 국가적 흥행작으로 되살려 냈듯이, 제 나라 음악은 한수 아래로 낮춰보던 이 땅 예술판의 못난 관념을 물리쳤듯이, 변변한 작품 하나 없이 헤매던 한국무용의 무용곡을 정립했듯이, 86아시안게임 개막식 지휘를 맡은 사람을 경비견과 나란히 한 자리에 대기시켜놓던 대한민국의 문화적 후진성을 척결했듯이, 선생은 박범훈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을 해낸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양평의 미래를 물어야지 또 누구에게 묻겠는가.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양평의 문화정책이 가야할 방향과 목적성은 어디에 두어야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b> 

<b><font color=green>박범훈 :</font> 양평은 강제적이긴 하지만 청정지역으로 잘 보전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교통망도 굉장히 좋아져서 이 시대에 가장 이상적인 주거지의 요건을 완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양평만의 것을 더한다면 금상첨화이겠죠. 문화정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양평만의 것, 양평에서만 누릴 수 있는 문화를 찾아내서 육성해야겠죠.

현실적으로는 의료시설이 급선무입니다. 제 주변에도 양평에 와서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막상 실천하자니 겁이 난다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심장마비라도 오면 병원 찾아가다가 꼼짝없이 죽을 우려가 크다는 거죠. 이런 불안을 불식할 규모의 병원은 하루이틀 사이에 조성할 수 없으니 헬리콥터 두어 대 공용으로 운영해서 급한 환자 이송대책이라도 갖춰야 하지 않겠습니까?</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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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사재를 털어 강하면에 ‘뭇소리중앙예술원’을 설립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또 앞으로의 지향점을 듣고 싶습니다.</b>

<b><font color=green>박범훈 :</font> 고향에다 무엇인가 하고 싶었어요. 이 너른 세상에 양평보다 좋은 곳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고향만큼 정이 가고 편안한 곳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 고향에서 제가 못다 이룬 음악을 이루고 싶습니다. 저도 갈고 닦고 제 제자들도 갈고 닦고, 여기 고향의 후배들도 갈고 닦는 음악의 도량을 만드는 게 제 평생의 꿈이자 목표입니다.

강상면 송학리에 지은 뭇소리중앙예술원은 남운용 선생님을 비롯한 제 모든 인연에게 바치는 박범훈의 감사입니다. 그런 인연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죠. 중앙대학교와 중앙국악예술협회에 기증을 해서 합리적 운영의 기틀도 잡아놓았습니다. 인접해있는 초중등학교 학생을 비롯하여 양평군민을 위한 유익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다만 도로개설이 늦어져서 아주 미안해요, 찾아오시는 분들한테. 공연 한 번 하려면 공연준비보다도 관객 수송에 더 공을 들여야 하는 게 지금 실정입니다. 여기가 활성화되면 주변에도 유익할 텐데, 눈앞에 이해타산에만 매달리는 분들이 더러 계셔서…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음악애호가와 음악계 인사들 가운데에서는 선생님께서 ‘음악’ 한 우물만 팠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음악인으로만 살았더라면 개인적으로는 더 행복했으리라하는 소회는 없으신지?</b> 

<b><font color=green>박범훈 :</font> 저 역시 음악만 하면서 살고 싶었죠. 그러나 음악계 특히 국악계통은 아직 정책적 제도적 도움이 절실해요. 원형 그대로의 보존뿐만 아니라 다음세대가 새로이 꽃 피워야 할 우리 전통문화의 미래를 위해서도 말입니다. 누군가는 나서야했습니다. 교육환경과 관련예술인의 활동 개선을 위해서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했던 거죠. 어쩌다보니 제가 그 총대를 메는 데에 적합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탓이죠.

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국악유치원, 국악중학교, 국악대학과 국악교육대학원을 설립했고 전통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제도 등을 신설했어요. 중앙국악관현악단, 국립국악관현악단, 한중일아시아오케스트라 창단 등등 음악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힘닿는 데까지 넓혀냈구요. 이번 임기만 마치고나면 다시 작곡에 나설 겁니다. 곡 안 준다고 아우성치는 연주단체가 하나 둘이 아니거든요.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대중적 인기를 잃은 정권에서 대통령 교육문화 수석이라는 고위직을 수행하고 계신데 고충이 많으시겠습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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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green>박범훈 :</font> 교육과 문화는 국가의 백년대계입니다. 대중적 인기 여부와는 무관한 분야이며 또 무관해야만 하는 분야예요. 대중의 입맛을 쫏다보면 크게 그르치기 십상이구요. 그걸 갖고 소통부재라면 할 말이 없지만요. </b>   

<b><font color=green>안병욱 :</font>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의 과거와 현재를 보면서 저 개인적 인상은 ‘전통과 혁신, 양날을 휘두르며 종횡무진 세상을 누볐던 인물’로 요약됩니다. </b> 

<b><font color=green>박범훈 :</font> 어떤 전통이든 맨 처음 세워진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통은 그 당시의 혁신적 창작에 해당됩니다. 제가 전통과 혁신 양날을 휘두른 것으로 보인다면, 전통을 바탕으로 다음세대의 새로운 전통수립에 일조하기 위해 숱한 부조리와 맞서 싸운 탓이 아닐까 하네요. 저는 제가 해온 일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제 자신과 제 음악을 갈고 닦는 한편으론 우리나라 문화예술정책에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을 작정입니다. </b> 

배 놔라 감 놔라,에도 정도가 있다. 남의 제사상 앞에서는 주접이고, 국가정책이나 지자체정책 앞에서는 민주주의의 실천이다. 감 놔라 하는 사람이 많으면 감을 놓고, 배 놔라 하는 사람이 많으면 배를 놓는 게 위정자의 의무이다. 때에 따라서는 전부 감을 놔라 외칠 때 배를 놓는 뚝심이 위정자가 갖춰야할 필수덕목이 된다. 그 때가 언젠지를 사심 없이 간파해내는 데에 위정자의 안녕이 달려 있다. 이 땅에 위정자들은 모두 무고하신지?

하나마나한 소리 늘어놓느라 잠시 옆길로 샜다. 각설하고, 독자제위께 박범훈선생의 음악을 추천한다. 특히 ‘신모듬’과 ‘새산조’를 강력히 추천한다. 순전히 개인적 취향일 수도 있겠으나, 박범훈의 소리에는 무아경이 살아 있다. 잠시 번잡한 세상을 내려놓고, 돈돈돈 노래만 부르는 나를  밀쳐놓고, 내가 태어난 세상의 의미와 세상에 태어난 나의 의미를 독대해보시길.

더불어, 박범훈 저(著) ‘소리연 : 2004년 경향신문사 발간’ 의 일독을 권한다.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이렇게 살아갈 사람이 이곳 양평사람임을 필자처럼 일견 탄복하고, 일견 부러워하고, 일견 존경해보기를 권한다.

YPN뉴스 (ypnnews@naver.com)

댓글목록

미래상님의 댓글

미래상 작성일

정말 이정도로 훌륭하신분이 우리 양평분이었다니 가슴이 뿌듯해지는군요.... 이런분을 양평군의 자문위원으로 모신다면 그 많은 지식과 지혜를 통해 군이 좀더 좋은 모습으로 발전이 되지않을까요?  인터뷰 잘봤습니다. 한권의 자서전을 읽은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훌륭한 분들의 글을 기대합니다,... ... ..

영원한해병님의 댓글

영원한해병 작성일

형님 정말대단하신분이시죠 양평군에 선배님이란사실에 우린마음흐뭇 합니다 계속되는 불덩이 갈은 날씨에 몸건강하시고 잘지내십시요 아울러ypn에게도 감사글전합니다

군민의한사람님의 댓글

군민의한사람 작성일

아니 이런 분이 좋은일하겠다고 큰돈들여서 좋은 예술원을 만들어났는데 아직 길도 못내준다는개 말이 되남???? 빽좋은 사람네는 혼자 살아도 길만 잘닦아주더만,,, 골프연습장 뒷편무너져내린것도 십억도 넘게 쳐들어서 다 복구해주더만...... 진짜요상한 양평군이여~

사회봉사님의 댓글

사회봉사 작성일

내출세보다는 사회봉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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